설 연휴에 뭐 보지?…“이성애·남성 서사 벗어나보자”
이번 설 연휴에 뭘 볼까? 명절을 맞으면 자동차, 기차, 비행기의 긴 이동 중에, 가족·친구들과 거실에 모여, 그것도 아니라면 “내일 출근 안 하니까” 혼자라도 밤 늦게까지 영화, 드라마를 보기도 한다. 이번 설 연휴에는 특별히 여성·성소수자 혐오가 없고, 이성애와 남성 중심 서사에서 벗어난 ‘한 줄기 빛’같은 콘텐츠를 골라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여성민우회가 지난달 26일부터 7일까지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추천 받은 ‘설 연휴에 볼 콘텐츠’ 몇 개를 소개한다. 100% 완벽한 페미니즘 콘텐츠는 아니더라도, 기존 콘텐츠를 지배해 온 여성·소수자 혐오, 이성애·남성 중심적 서사를 깨부수거나 여성주연·여성감독이 빚어낸 콘텐츠들이다. 추천된 50여개 콘텐츠 중 몇 작품을 엄선했다.
1. 낄낄대면서 보는 여성 예능-티브이엔(tvN) ‘뿅뿅 지구오락실’
‘뿅뿅 지구오락실’은 개그우먼 이은지, 래퍼 이영지, 걸그룹 오마이걸과 아이브의 미미와 안유진 등 출연진 4명 모두 여성인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이다. ‘무한도전’ ‘1박2일’ 등 남성 연예인들만 출연하던 유명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의 공식을 깼다. 1박2일과 ‘꽃보다 할배’ 시리즈 등으로 유명한 나영석 피디(PD)가 연출했다. 2022년 시즌1, 2023년 시즌2가 방송됐다. ‘지구오락실2’는 여성 예능 최초로 한국갤럽 방송 선호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이 국외에서 게임을 풀며 진행된다. 지구오락실의 마스코트인 토롱이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출연진 4명과 이를 방해하는 제작진 사이에 두뇌싸움이 흥미롭다. 이 과정에서 미미가 엉뚱한 말을 내뱉고, 이영지·안유진 등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텐션이 올라가는데, 이를 보며 웃다가 진이 빠질 수도 있다. 누군가와 함께 봐도 좋고, 혼자 보기도 좋다. 혼자 볼땐 폭소를 터뜨릴 때 두드릴 베개를 옆에 두는 걸 추천한다. 지구오락실을 추천한 이는 “여고생들 엠티가서 깔깔거리는 거 훔쳐보는 기분이다. 온통 다 여자라 편안하다”고 말했다.
티브이엔 서브 채널을 돌리다 보면 지구오락실 재방송편을 만날 수도 있지만, 방송시간을 기다릴 수 없다면 티빙(Tving)에서 보는 게 가장 빠르다.
2. 여성이 주인공인 무협 웹소설 ‘사천당가의 시비로 살아남기’
복수의 추천을 받은 웹소설 ‘사천당가의 시비로 살아남기’는 작가 모래가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하고 있는 무협 판타지 소설이다. 평범한 여성 직장인이 무협 소설 세계 속 인물에 빙의해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판타지 로맨스’로 장르가 분류돼 있지만, 무협 ‘덕후’들도 인정할 정도로 세계관, 무공에 대한 묘사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정통 무협 세계에서 젊은 여성 주인공이 성장하는 모습이 신선하다. 추천인은 “무협지는 성차별적이라, 차라리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 게 보기 편할 정도로 장르에서 여성을 다루는 방식이 잘못되어 있다. 그런 무협물에서 여성 원톱 주연인 정통 무협! 장르팬이라면 완전 추천한다”고 말했다.
3.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
애니메이션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도 추천한다. 넷플릭스가 지난해 공개한 10화 분량의 애니메이션으로, 외계 소행성 이 지구에 충돌하기까지 7개월을 앞둔 여성 주인공 캐럴의 일상을 그렸다. 다른 이들은 대체로 자유를 만끽하고 쾌락에 빠지지만, 캐럴은 카드 대금을 납부하고, 출근하는 일상을 택한다. 추천인은 “만화판 돈룩업. 종말이 다가오는 지구에서 삶을 지속하고 관계를 보듬는 주인공 캐럴 너무 멋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남성 중심 서사를 깬 넷플릭스 영화 ‘페어플레이’(‘유리천장 스릴러물’이라 부르고 싶네요), 웹 시트콤 ‘으랏파파’ (‘퀴어 가족 시트콤’ 소개만으로 너무 궁금하지 않나요? ‘정상 가족’ 뿌셔뿌셔.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이야기해서 다음편이 제작되었으면 좋겠어요!!), 영화 ‘델마’(초자연적 미스터리 스릴러인데 퀴어 영화), 문화방송(MBC)충북의 다큐멘터리 ‘아이 엠 비너스’(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등의 콘텐츠도 추천한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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