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매정하지 못한 대통령 부부… 국민에게는 왜 그리 매정한가
매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의혹 사건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인식이다. 대통령은 7일 녹화 방송된 KBS 특별대담에서 “제가 보기에는 좀 그거를 매정하게 좀 끊지 못한 것이 좀 어떤 문제라면 문제고 좀 아쉽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조선제일의 사랑꾼으로 소문난 이가 프로포즈를 하면서 선물을 내민다면 상대방의 기댓값에 0을 하나 더 붙여줘야 감동 이벤트가 된다. 짠돌이 선물이면 안 하는 것만 못하다. 하물며 두어 달간 나라를 들었다 놨다 했던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에 대한 대통령의 최초 언급 아닌가. 밤 10시부터 TV대담을 보며 이제나 저제나 목 빼고 기다린 국민을 생각한다면, 대통령은 듣는 이의 마음을 좀더 배려했어야 옳았다.
● “박절하기 어렵다”세 번이나 언급
그럼에도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이렇게 박절하게 대하기는 참 어렵다”는 전제부터 깔고 윤 대통령은 시작했다. 박절(迫切)하게. 국어사전에 따르면 ‘인정이 없고 쌀쌀하게’라는 요즘 듣기 쉽지 않은 단어를 세 번이나 언급한 것도 특이하다. 1시간 34분 진행된 대담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기다린지 무려 53분이 지난 다음이었다.
“제 아내가 중학교 때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셔가지고 아버지와의 동향이고 뭐 친분을 이렇게 얘기를 하면서” (앵커 “방문을 접근했던”) “네 그래서 제가 볼 때는 거기에다가 또 저도 마찬가지고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이렇게 박절하게 대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마 그 관저에 있지 않고 이렇게 사저에 있으면서 또 지하 사무실도 있고 하다 보니까 자꾸 오겠다고 하고 해서 제가 보기에는 좀 그거를 매정하게 좀 끊지 못한 것이 좀 어떤 문제라면 문제고 좀 아쉽지 않았나…”
재발 방지를 위해 특별감찰관과 제2부속실 설치 계획을 묻는 질문에도 윤 대통령은 또 ‘박절’을 언급했다. “제2부속실이 있었더라도 제 아내가 내치지 못해 가지고 자꾸 오겠다고 하니까 사실상 통보하고 밀고 들어오는 건데 그거를 박절하게 막지 못한다면 제2부속실이 있어도 만날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 뇌물 거절한 공직자는 매정한가
그래서 드는 생각이 이거다. 아, 윤 대통령과 부인은 박절하지 못한, 참 인정 많고 다정한 사람들이구나. 대통령은 “그 이슈 가지고서 부부싸움을 했느냐”는 질문에도 “전혀 안 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 김 여사는 복도 많은 사람이구나. 보통의 공직자 부부라면 김영란법(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법률) 위반 같은 문제가 터지면 부부싸움이 일어나는 게 정상이다. 설령 부부싸움을 안 했더라도 그 밤중에 TV를 지켜보는 국민을 생각한다면 대통령은 “국민이 걱정할(실은 매우 실망할) 일이 벌어져 아내에게 싫은 소리 좀 했다” 정도는 말해야 마땅하다.
결국 김 여사는 사적 친분으로 만남을 요청한 친북 성향의 목사 최모 씨를 박절하게 거절하지 못했고, 그가 놓고 간 ‘이른바 파우치 외국 회사 그 조그마한 백’을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게 문제일 뿐이다. 박절하게 말한다면, 사적 인연으로 밀고 들어오는 불투명한 방문자를 거절하거나 자그만한 파우치든 큰 명품백이든 뇌물 절대 안 받는 공직자와 그 부인만 매정한 사람인 셈이다.
● 김 여사에게는 누구도 박절할 수 없다
대통령실 참모진이 마련한 예상 질문과 답변지를 참고했다면, 윤 대통령이 절대 이렇게는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메모 한 장 없이 대담에 임한 대통령은, 즉 누구의 조언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냈기에 더욱 걱정스럽다(앗, 김 여사 빼고). 심지어 윤 대통령은 “개고기식용금지법안 말고도 김 여사와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많이 논의하느냐”는 질문에 “그래도 비교적 아내하고 뭐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늦게 들어와 일찍부터 일하고 하다 보니 대화를 많이는 못 합니다마는”하면서도 굳이 아내와 국정을 많이 논의한다는 사실을 털어놓다니, 이 또한 제2부속실 설치 요구 여론에 신경쓰지 않는 매정한 답변이다.
윤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어린이를 많이 아낀 따뜻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답했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의 대통령 모습은 과히 따뜻하지 않다. 어린이들은 많이 아끼는지 모르겠으나 야당에는 물론 윤핵관이 아닌 여당 사람들, 참사 희생자들의 가족, 심지어 언론사 기자들에게도 매정하기 그지 없다. 신년회견 대신 미루고 미루다 마련된 이번 특별대담은 모처럼 대통령의 통 큰 모습을 보여줄 기회였다. 그걸 아쉽게도 윤 대통령은 박절하게 넘겨버렸다.
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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