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클린스만 논란, 누가 책임져야 하나
[서울=뉴시스]안경남 기자 =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과 대한축구협회가 64년 만에 찾아온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우승 희망을 앗아갔다.
클린스만 감독이 지휘한 한국 축구대표팀은 지난 7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르단과의 2023 AFC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0-2로 져 탈락했다.
무의미한 점유율은 67%대 33%로 앞섰지만, 슈팅 숫자에선 5대 12로 크게 밀렸다. 유효슈팅은 0대 7이었다. 한 차례 골대를 맞췄지만, 상대 골문 안으로 향한 슈팅은 제로였단 얘기다.
한국 축구가 아시안컵 도중 탈락한 게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 1960년 제2회 대회 이후 64년 동안 아시안컵 정상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 출신인 '캡틴' 손흥민(토트넘)을 비롯해 이강인(파리생제르맹), 황희찬(울버햄튼),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등 유럽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대거 보유한 역대 최강 전력이란 평가를 고려하면 참사 수준의 결과다.
실제로 손흥민, 이강인 등의 개인 능력이 받쳐주질 않았다면, 조별리그 통과도 쉽지 않을 만큼 졸전의 연속이었다.
이강인은 조별리그에서 가장 많은 3골을 책임졌고, 손흥민은 호주와의 8강전에서 0-1로 끌려가던 후반 막판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연장전에는 환상적인 프리킥 골로 역전극을 연출했다.
그런데도 수장인 클린스만 감독을 향한 평가는 대회 기간 내내 물음표가 따라다녔다. 감독의 지략이 아닌 선수 개인 능력에 의존한 승리가 대부분이었다. 팬들 사이에서 '해줘 축구'라는 비아냥 섞인 비판이 쏟아진 이유다.
실제로 똑같은 포메이션과 베스트11으로 일관한 클린스만 감독의 전술은 상대팀에게 쉽게 읽혔다. 사우디아라비아와 16강전에서 처음 스리백(3명의 중앙 수비수를 두는 전술) 카드를 꺼내 승부차기 혈투 끝에 승리했지만, 스리백을 사용하는 동안 경기력은 오히려 더 엉망이었다.
상대 팀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됐는지도 의문이다. 4강 상대였던 요르단은 앞서 조별리그 2차전(2-2 무)에서 한 번 붙은 적이 있는 팀이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당시 요르단의 전방 압박과 빠른 역습에 당하고도 '리턴매치'인 준결승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한 명만 뒀다. 심지어 핵심 수비수 김민재도 경고 누적으로 빠진 경기였다.
손흥민을 최전방으로 올리고 이재성(마인츠)을 추가했지만, 그보다는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 자원인 이순민(대전)이나 멀티 수비수인 박진섭(전북)을 박용우(알아인)와 함께 세우는 게 더 안정적인 선택이었다.
경기 후 태도도 논란이었다. 팬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에도 '싱글벙글' 미소로 일관했다. 요르단과 4강전 참패에도 상대 감독과 웃으며 악수했다.
아시안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잦은 외유와 원격 근무로 비판받을 때 '아시안컵 결과로 평가해 달라'고 했던 클린스만 감독은 결승 진출에 실패한 뒤 자신의 거취를 묻는 말에 "한국으로 돌아가 대회를 분석하겠다. 그리고 보완해서 다음 대회를 준비하겠다"며 잔류 의사를 시사했다.
클린스만 경질론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그를 데려온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022 카타르월드컵 16강을 이끈 파울루 벤투 전 감독과의 재계약을 거부하고 클린스만 감독을 영입한 정 회장은 당시 "최신 트렌드를 잘 파악하고 있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선임 절차에도 문제가 없다고 자신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독일과 미국 대표팀에서 실패를 거듭해 온 '클린스만 리스크'는 한국에 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카타르월드컵 때 국제축구연맹(FIFA) 기술연구그룹으로 일했지만, 성적 부진으로 독일 분데스리가 헤르타 베를린을 3개월 만에 떠난 2020년 2월 이후 어떠한 팀도 그를 원하지 않았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무능한 클린스만을 데려온 사람이 책임지라고 한 개그맨 이경규의 외침처럼 이제는 정 회장과 축구협회가 답을 내놓아야 한다.
아시안컵 우승 실패가 누구보다 가슴 아픈 건 클린스만과 협회의 헛발질에도 대회 기간 죽을 힘을 다해 뛴 선수들일 것이다.
주장 손흥민은 두 번의 연장전을 포함해 6경기 모두 풀타임으로 뛰었다. 김승규(알샤밥)의 부상 이탈 후 골문을 지킨 조현우(울산) 골키퍼는 얼굴로 요르단의 폭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태극전사들과 온 국민의 염원이었던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도전은 책임감 없는 윗선들의 선택으로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이번 아시안컵을 앞두고 클린스만호의 우승에 반대했던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씨의 발언은 그래서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손 씨는 "한국의 우승을 바라지만, 이렇게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우승해버리면 그 결과만 가지고 (변화 없이) 얼마나 또 우려먹겠느냐. 그러다가 한국 축구가 병들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말 이대로 가다간, 겨우 쌓은 탑마저 모두 무너져 버릴지 모른다.
☞공감언론 뉴시스 knan9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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