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 결단’ 이재명, 전당원 투표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5일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고 통합형 비례정당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선거제 결정 권한을 이 대표에게 위임한 지 사흘만이다. 이로써 다수당인 민주당의 선택을 두고 벌어진 당 안팎의 숱한 전망도 끝을 맺었다. 민주당은 선거제 결정을 전 당원 투표에 부칠 것으로 알려졌으나 거센 비판이 일었고 결국 이 대표가 제동을 걸었다. 이 대표는 왜 전 당원 투표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앞서 민주당은 병립형 비례제로의 회귀와 준연동형 비례제 유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병립형 비례제 회귀를 택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던 가운데 민주당이 선거제 결정을 위한 전 당원 투표를 추진하기로 한 사실이 알려졌다. 당 지도부가 당심을 앞세워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의 전 당원 투표 흑역사도 소환됐다. 민주당은 2020년 3월 전 당원 투표를 통해 범여권의 비례대표용 연합정당 즉 위성정당에 참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2020년 11월에는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의 성비위로 생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공천 여부를 전 당원 투표에 맡겼다. 설 명절을 앞두고 민주당의 뼈아픈 과거가 다시 입길에 오르는 것이 이 대표에게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전 당원 투표는 지도부의 말 뒤집기 수단으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왔다. 민주당 지도부는 ‘당원의 선택’이라며 명분을 마련했다. 2020년 총선에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의 비례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창당을 비판하던 민주당은 비례용 정당 더불어시민당을 만들었다. 2020년 3월 위성정당 참여 여부 투표는 전체 권리당원 78만9868명 중 24만1559명(30%)이 투표에 참여했고 투표자 중 74.1%(17만9096명)가 찬성했다. 이해찬 당시 대표는 “미래통합당은 페이퍼 위성정당이라는 탈법으로 국회 의석을 도둑질하는 만행을 저질렀다”면서 “이런 탈법과 반칙을 미리 막지 못하고 부끄러운 정치의 모습을 보이게 돼 매우 참담하고 송구하다”고 밝혔다. 이낙연 대표 시절이던 2020년 11월에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5년 당 대표 시절 책임정치 차원에서 만든 당헌이 선거를 위해 폐기됐다. 전 당원 투표 결과 86.64%가 당헌 개정과 공천에 찬성했다. 최인호 당시 수석대변인은 “재·보선에 후보를 공천해 시민의 선택을 받는 것이 책임정치에 더 부합한다는 지도부 결단에 대한 전폭적 지지”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 체제에선 당심을 앞세워 비명계를 제압하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범친이재명계인 안민석 의원은 지난해 3월 CBS 라디오에서 “당 대표 사퇴 여부는 당원들에게 물어보는 게 마땅한 것”이라며 이 대표 거취를 전 당원 투표로 결정하자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당 대표는 당원들이 뽑은 당 대표”라며 “국회의원들이 당의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오산”이라고 말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지난해 8월 김은경 혁신위원회가 제안한 혁신안에 대해 “의총에서 혁신안을 폐기하자고들 하시는데 의원총회에서 정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당 전체의 진로에 관한 중요한 사항은 전 당원 투표로 결정해야 한다”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적었다.
선거제 결정을 전 당원 투표에 맡긴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당내 불만의 목소리도 커졌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전 당원 투표에 기대어 결정하는 것은 책임을 전가하겠다는 것으로 무책임한 행동”이라며 “어떤 결정을 하든 어딘가에 기대려 하기보다는 국민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책임지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수도권 의원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전 당원 투표로 가는 것은 지도부가 너무 무책임한 행위라고 많은 비판이 있었다”며 “(전 당원 투표가) 자칫하면 팬덤 현상으로 몇몇 지도부가 주장하면 그냥 그걸 추인해주는 이런 식이 돼서 당원이 한명 한명이 주체적인 자기 판단을 하고 당의 방향과 미래에 대해 고민해서 투표하는 게 아니라 어떤 한 방향으로 쏠리는, 어떤 운동을 벌이듯 되는 결과가 기존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그야말로 당의 운명을 걸고 중요한 사안을 놓고 찬반을 토론한다 이거면 모르겠는데, 이건 방향을 정해놓고 하려고 한 거 아닌가. ‘병립형 (비례제로) 갈 텐데 당신들이 찬성을 좀 해서 우리 부담을 덜어주시오’ 이거였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 대표는 “어떤 결정도 모두 저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며 준연동형 비례제 유지 결단을 내렸다. 이 대표는 지난 5일 기자들과 만나 “당의 주인인 당원들의 의견도 수렴해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그것이 꼭 100% 당원투표 이런 형식을 취할 것인지는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위성정당을 만든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으나 당내 반발은 잠재운 분위기다. 한 비명계 의원은 “어쨌든 선택을 해야 하지 않나. 선택을 안 하는 것보다 나쁜 일은 없다”며 “결정은 지고지순한 게 있을 수가 없지 않나. 장단점이 다 있는 거다. 결정하고 단점이 생길 수 있는 걸 어떻게 보완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주영 기자 j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문기의 추석 선물’ ‘딸에게 보낸 동영상’···이재명 ‘선거법 위반’ 판결문
- 조국 “민주주의 논쟁에 허위 있을 수도···정치생명 끊을 일인가”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트럼프 반대한 ‘반도체 보조금’···바이든 정부, TSMC에 최대 9조2000억원 확정
- [사설] 이재명 선거법 1심 ‘당선 무효형’, 현실이 된 야당의 사법리스크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뉴진스 “민희진 미복귀 시 전속계약 해지”…어도어 “내용증명 수령, 지혜롭게 해결 최선”
- 이재명 “희생제물 된 아내···미안하다, 사랑한다”
- ‘거제 교제폭력 사망’ 가해자 징역 12년…유족 “감옥 갔다 와도 30대, 우리 딸은 세상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