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왜 여성의 죽음으로 완성되어야 하는가[책과 삶]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죽은 여자다
윤단우 지음 | 허사이트 | 334쪽 | 18500원
‘냉장고 속의 여자.’ 1990년대 후반 만화 작가 게일 시몬이 고안한 용어로, 1994년 발행된 DC코믹스 <그린랜턴> 54편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집 냉장고에서 악당의 손에 잔인하게 토막살해당한 여자친구의 시체를 발견하고 분노해 악당을 물리치는 히어로로 각성한 데서 유래했다. 여성 캐릭터의 죽음이 남성 주인공의 성장과 불멸의 사랑을 위한 플롯상 도구로 이용되는 것을 비판하며 쓰인 말이다. 저자는 그렇다면 “사랑은 왜 여성의 죽음으로 완성되어야 하는가?”라고 질문한다. 답을 위해 고전 열다섯 편을 여성, 죽음, 사랑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읽어낸다.
고전 속 여성들의 죽음에 따라 4개 장으로 나눴다. 1부는 <햄릿>의 오펠리어나 <춘희>의 마르그리트처럼 미치거나 병들어 죽는 여자, 2부는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처럼 스스로를 살해하는 여자, 3부는 <카르멘>의 카르멘처럼 남자에게 살해당하는 여자, 4부는 <물의 요정 운디네>의 운디네처럼 남자를 죽이는 여자다.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춘희>에서 마르그리트는 사랑을 잃고 쓸쓸히 죽는다. 뒤마는 실제 자신의 연인이었으며, 상류층을 상대로 했던 매춘부인 코르티잔 ‘마리 뒤플레시’를 소설 주인공의 모델로 삼았다. 뒤플레시는 소설 속 마르그리트와 달리 뒤마와 이별한 후에도 부유한 귀족의 구애를 받아 코르티잔으로서는 드물게 정식 결혼까지 한다. 저자는 뒤마가 “그 같은 소설을 쓴 마음 한편에 열등감이나 복수심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말한다.
저자는 허위로 가득 찬 삶보다 죽음과 함께하는 사랑을 선택한 고전 속 주인공들을 바라보며 “삶 없는 사랑을 택한 것은 그토록 숭고한 일이었을까”라고 묻는다. 그리고 지금도 혹시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랑에 괴로워하는 이에겐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사랑보다 귀한 존재다. 기억해야 할 사실은 오직 그것 하나뿐이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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