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언급 피하는 이재명, 이재명만 이야기하는 한동훈…왜?
기자 “한동훈 위원장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필연적 근거가 없다고 했는데,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재명 대표 “‘다른 누군가’의 지적이라는 말씀 내용을 들어보니까 답할 가치를 못 느끼겠다.”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 광주 현장최고위 기자간담회 중)
기자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재명 대표 “‘그 사람’에 대해 내가 평가하고 싶지 않다. 그…아니다, 말 안 하겠다”
(지난달 18일, 비공개 기자단 차담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입에서 절대로 나오지 않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한동훈’이다.
제1야당 대표인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카운터파트너는 여당 대표인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언급 빈도수를 따지면, 한동훈 위원장 쪽이 일방적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한 위원장은 끊임없이 ‘이재명’을 입에 올리는 반면, 이 대표가 공식 석상에서 한 위원장을 언급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이재명 대표의 집요한 ‘한동훈 언급 피하기’
한 위원장을 ‘언급하지 않기 위한’ 이 대표의 노력은 의도적이고, 집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한동훈 위원장 사퇴 요구 소식과 함께 ‘당무개입’ 논란이 뜨거웠던 지난달 22일, 민주당 정치인이라면 한 위원장의 이름을 말하지 않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날 최고위원회의 머리 발언에서도 이재명 대표는 “정부·여당은 윤심·한심 나뉘어서 싸울 것이 아니라 민생부터 챙겨야 한다”고만 말했다. ‘한동훈’이라는 이름을 피하고 ‘한심’이라는 말을 택한 것이다. 이 대표는 발언 말미에 “정부·여당에 미안한 말씀입니다만 한심합니다”라며 ‘한심’을 다른 의미로 한 번 더 반복했다.
이 대표가 한 위원장이 취임한 뒤, ‘한동훈’이라는 이름을 온전히 언급한 경우는 지난해 12월29일 한 위원장과의 상견례 자리가 ‘유이’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님의 취임과 방문을 환영하고 축하드린다”, “우리 한동훈 비대위원장도 일국의 집권 여당을 대표하는 비대위원장으로 큰 포부가 있을 것”. 그나마도 의례적인 인사치레 차원에서 꺼낸 말이다.
입만 열면 ‘이재명’ 꺼내는 한동훈 위원장
거꾸로 한동훈 위원장은 사안마다 ‘이재명’ 이름을 끌어들이고 있다. 한 위원장은 지난 7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1시간40여분간 ‘이재명’이라는 이름을 수차례에 걸쳐 언급했다.
“검사 독재였으면 이재명 대표는 감옥에 있을 것이다.”
“검사 독재한다면 이재명 대표는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겠냐.”
“이재명 대표의 총선 목표는 자기 생존, 자기의 당권 유지가 아닌가 싶다.”
“지금 민주당이 우리가 알던 민주당과 다른 가장 큰 이유는 이재명 대표께 있다.”
“(저는) 이재명 대표나 다른 정치인과 달리 어떤 질문이라도 피하지 않고...”
법무부 장관 시절부터 부처 장관으로는 이례적으로 야당 대표에 대한 언급을 즐기던 한동훈 위원장은 ‘정치인’으로 공식 데뷔한 뒤에는 본격적으로 빈도를 높였다. “민주당은 검사를 그렇게 싫어하면서, 왜 검사를 사칭한 분을 절대 존엄으로 모시는지 묻고 싶다”(지난해 12월27일 첫 출근), “(‘칼로 죽이려 하지만 죽지 않는다’는 이 대표 발언은) 그 정도면 망상”(1월17일),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가) 다섯가지 범죄나 파렴치한 행위를 컷오프 기준으로 삼겠다는데, 그 조건 어디에도 이재명 대표가 해당하지 않는다” (1월25일), “(출생기본소득)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겠다는 건가. 과거 본인(이 대표)이 했던 것처럼 법인카드 돌리겠다는 건가”(1월31일).
이 대표쪽 “우리 상대는 윤석열 정권” 한동훈 위원장, ‘정치적 체급 키우기’ 경계
이렇듯 일방적인 난타를 당하면서도 이 대표는 왜 ‘한드모트(한동훈+볼드모트)’ 취급을 멈추지 않고 있을까.
우선 아직은 ‘정치 신인’인 한 위원장의 ‘정치적 체급’을 키워줄 필요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탓으로 보인다. 이 대표 쪽 관계자는 “민주당 대선주자까지 지낸 이 대표의 상대는 한동훈 위원장이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과 정권이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 수하에 있는 사람인데 굳이 의도적인 도발에 반응할 필요 없다”며 “정권을 상대로 싸워야 할 때, 지엽적인 말싸움에 휘말리는 건 한 위원장만 돕는 꼴”이라고 말했다.
굳이 본인이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한 위원장 공격’을 도맡아 해주는 대리인이 당내에 여럿 존재한다는 점도 이유로 볼 수 있다. 이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차원의 문제를 거론하고, 친명계 지도부 의원들이 한동훈 위원장을 상대로 ‘진흙탕 싸움’을 하는 일종의 역할분담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대표가 ‘한동훈’이라는 이름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지난달 22일 당 최고위원회의의 경우, 다른 지도부 의원들의 입에서는 총 43번 ‘한동훈’이라는 이름이 언급됐다. 그중 절반가량(20번)은 ‘친명계’를 자처하는 정청래 수석최고위원의 발언에서 나왔다.
한 위원장, ‘안티 이재명 마케팅’ 효과 톡톡?…“정면대결 피하기 어려울 것”
국민의힘은 이 대표에 대한 질문 자체가 많기 때문에 언급이 잦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기자들이 한동훈 위원장에게 이재명 대표 관련 질문을 많이 한다. 한 위원장 입장에선, 이 대표가 자신과 대통령에 대해 수위 넘는 발언을 하는 만큼 팩트가 잘못된 건 바로잡겠다는 취지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한 위원장의 이름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 배경에 대해선 “한 위원장을 섣불리 공격했다가 자신에게 ‘화살’이 돌아올 것을 우려해 아예 언급하지 않기로 한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이재명 말하기’가 정치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계산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비토’ 정서가 강한 보수 유권자들이 이재명 대표를 향한 통쾌한 공격을 선호하는 데다, 각종 수사를 받는 이 대표의 처지를 거론할수록 특수부 검사 출신인 한 위원장의 입지가 돋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이 대표에 대한 한 위원장의 발언(‘검사 사칭·법인카드’)을 모아보면, 주제는 다양하지만 모두 이 대표가 ‘범죄자’라는 인식을 심는 말들이라는 점에서 엇비슷하다. 이재명 대표는 ‘범죄자’로, 민주당은 ‘범죄 비호 집단’으로 묶어 비호감도를 높이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것이다.
‘안티 이재명 마케팅’이 유효한 탓인지, 최근 차기 대선후보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동훈 위원장의 지지도는 이재명 대표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높아졌다. 한국갤럽이 지난 2일 공개한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 여론조사(1월30일∼2월1일, 전국 성인 1000명 대상 전화조사원 인터뷰,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응답률 12.7%,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를 보면, 한 위원장에 대한 지지도는 23%로 이재명 대표의 지지도(26%)와 불과 3%포인트 차이였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한동훈’ 이름조차 꺼내지 않는 것은 거꾸로 보면 이재명 대표가 한동훈 위원장을 대단히 신경 쓴다는 의미”라며 “총선 결과를 두고 봐야겠지만, 한 위원장의 정치적 위치가 부상할 경우 정면대결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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