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윤석열 대통령은 왜 이토록 감세에 집착할까
“외국의 자본가들도 국내 투자를 할 수 있게 하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를 줄여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규제, 특히 그중에서도 조세 제도에 의한 규제적 측면들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방영된 한국방송(KBS) ‘특별대담―대통령실을 가다’에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의지를 재차 확인하며 한 말이다. 감세에 대한 윤 대통령의 태도는 일관적이다 못해 집착에 가깝다는 인상마저 풍긴다. 세수 부족과 ‘포퓰리즘’ 비판에도 잊을 만 하면 새로운 감세안을 발표했고, ‘여소야대’라는 불리한 형세에도 각종 우회로를 찾아내곤 했다. 윤 대통령은 대체 왜 이렇게나 감세에 매달리는 것일까.
WHY①“태초에 문재인이 있었으니…”
감세 기조는 일관됐지만 감세를 뒷받침하는 ‘논리’는 시기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여왔다. 임기 첫해 정부가 주요하게 추진했던 감세는 주택 양도소득세나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 세금이 주로 대상이었다. 정부는 출범일인 2022년 5월9일 ‘1호 정책’으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한시 배제를 발표했고 뒤이어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 인하, 공시가격 조정, 공시가 현실화율 조정 등 임기 첫해 부동산 세제 완화에 주력했다.
이를 추진하며 정부가 내세웠던 과세 논리는 ‘과세 정상화’였다.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된 고가 주택과 다주택자 과세 강화는 ‘비정상’이며, 새롭게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부동산 세제를 정상으로 돌려놓겠단 것이었다. 정부는 부동산 감세를 ‘안정적 주거를 위한 세제 정상화’(110대 국정과제 발표 당시 사용된 표현)라고 설명하기도 했는데, ‘안정적 주거’는 포장지일 뿐이고 실제 정책 추진 배경은 ‘문재인 그림자 밟기’였다는 시선이 있다. 부동산 책임론으로 대선에 패배했다는 평가를 받는 문재인 정부를 끊임없이 소환해 집권 명분을 강화하고 임기 초반 지지율 상승을 끌어내려는 전략이었단 해석이다.
WHY②“세금 깎아 경제 성장”…여전한 낙수효과 신화
부동산 감세와 함께 임기 첫해 감세 ‘드라이브’를 건 또 하나의 세금은 법인세였다. 정부는 2022년 6월16일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25%→22%)와 과세표준 구간 조정(4단계→2∼3단계)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법인세 최고세율 하향 조정은 곧바로 야당의 ‘부자감세 반대’에 부딪쳤다. 이 때문에 그해 정기국회에서 정부 안대로 법인세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자, 정부가 다시 들고나온 방안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 강화다. 2023년 12월30일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다수 의석을 앞세운 야당의 발목잡기로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와 투자 확대를 위한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가 온전히 반영되지 못했다”며 “반도체 등 국가 전략산업에 대한 세제지원을 추가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임기 2년 차인 지난해엔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가 대상 산업 범위를 넓히고 세액공제율을 거듭 상향하는 방식으로 몸집을 키워왔다. ‘국가전략기술’이란 정의가 모호하고, 대기업에만 집중적으로 혜택이 돌아가는 법인세 감면은 부적절하단 지적이 있었지만 정부는 밀어붙였다. 이때 정부가 내세운 감세 논리는 ‘낙수효과’다. 추경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10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삼성전자는 국민연금이 최대 주주에 가깝다”라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과세 정상화’란 포장지가 입혀졌던 감세 명분이, 임기 2년 차에는 이론만 있고 전 세계적으로 실증은 없는 ‘낙수효과’로 옮겨간 것이다.
WHY③코리아 디스카운트?…“경제 운영 철학 빈곤”
과세 정상화와 낙수효과를 지나, 임기 3년 차에 접어든 윤 대통령이 최근 내세우는 감세 명분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지난 7일 한국방송과 대담에서 윤 대통령은 “국민의 자산 형성을 위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조세 제도에 의한 규제적 측면들을 제거해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5년 시행을 앞둔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추가적인 주식시장 관련 세제 개편을 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난데없이 등장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논리에 전문가들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애초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는 주주 친화적이지 않은 후진적인 기업 지배구조, 기업의 성장세 약화, 남북 대치를 비롯한 지정학적 문제가 주요하게 꼽혀왔기 때문이다. 워낙에 앞뒤가 잘 맞지 않다 보니 윤 대통령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감세는 총선을 앞둔 포퓰리즘이란 해석도 무성하다. 한 정부 관계자는 “통상 선거를 앞두면 돈 풀기로 환심을 샀는데, 이번 정부는 지출 카드를 쓸 수 없으니 세금 카드를 쓰며 이런저런 이유를 가져다 붙이는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지난해 56조원이 넘는 세수 결손에 ‘건전재정’이란 표어로 스스로 손발을 묶어버린 상황에서 감세로 표몰이를 하는 것이란 얘기다.
이런 윤 대통령의 감세 집착은 ‘경제운영 철학의 빈곤’의 결과물이라는 따끔한 지적도 있다.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부)는 지난달 자신의 누리집에 올린 글에서 “윤석열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최우선 순위로 두어 경제정책을 운영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감세정책이 마치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거의 종교처럼 신봉하는 태도는 철학의 결핍을 오직 감세정책의 신화 하나로 만회하려는 태도인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내세울 게 하나도 없으니 감세정책이라도 내걸어 보자는 심산”이란 지적이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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