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도시를 브랜딩하는가
저자에게 듣는 경제와 책 ㅣ <도시×리브랜딩>
박상희·이한기·이광호 지음 | 오마이북 |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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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세월과 함께 만들어낸 도시도 흥망성쇠(興亡盛衰)의 과정을 겪는다. ‘흥망’과 ‘성쇠’의 변곡점은 무엇일까. 그 교차점의 의미를 제대로 짚어낸다면, 우리가 사는 도시의 미래를 더 밝고 희망차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브랜드 전문가인 교수, PR 컨설턴트, 30년차 기자가 함께 풀어나간 <도시×리브랜딩>은 이 물음에서 시작됐다. 처음부터 줄곧 낙후되고 쇠락한 도시는 없다. 매번 승승장구하며 끝없이 발전하는 도시도 없다. 어느 도시나 굴곡이 있고 장단점이 공존한다. 산업의 흥망과 함께 희비가 교차하는 도시도 있고, 지리·환경적 요소가 상황에 따라 득이 되기도 하고 실이 되기도 한다.
도시 브랜드 슬로건의 상징 ‘I♥NY’
1975년 탄생한 ‘I♥NY’은 미국 뉴욕 시민은 물론 전세계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사랑받는 도시 브랜드 슬로건이다. 역설적으로 ‘I♥NY’ 캠페인은 장기적인 실업과 범죄로 그늘진 뉴욕의 어두운 이미지를 지우려는 고민에서 비롯했다. ‘I♥NY’의 성공은 뉴욕의 이미지 개선은 물론 ‘황금알 낳는 거위’까지 선물했다.
2001년 9·11 테러로 뉴욕은 큰 충격과 슬픔에 잠겼다. ‘I♥NY’ 로고타이프를 만든 밀턴 글레이저는 ‘I♥NY More Than’(그 어느 때보다 뉴욕을 사랑한다)이라는 포스터를 제작했다. 빨간색 하트 왼쪽에는 검게 그을린 자국을 남겼다. 언론을 통해 널리 퍼진 이 포스터는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민주주의 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
독일 수도 베를린은 냉전이 끝난 뒤 경제·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베를린 하면 여전히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렸다. ‘전범국가’ 독일의 수도라는 꼬리표를 떼려고 시작한 게 2008년 ‘be Berlin’(나는 베를린 사람이다) 캠페인이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연설문에서 따온 ‘be Berlin’은 베를리너와 독일인의 자존감 회복에 크게 이바지했다.
2016년 ‘유럽 환경수도’로 선정된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는 유럽연합(EU) 국가의 수도 가운데 첫 번째로 ‘쓰레기 제로’(Zero Waste)를 실천하기로 약속한 도시다. 2023년 유럽 전역에서 생물성 폐기물 분리배출이 의무화된 것과 비교하면, 류블랴나는 아주 빨리 진보적 환경정책을 펴서 앞서가는 ‘친환경 도시’라는 평가와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줬다.
바다와 맞닿은 해항(海港)도시는 공통점이 있다. 산업구조 재편이 활발하고, 성장과 쇠퇴 사이의 골이 깊다. 성공과 번영도 강렬하지만, 침체와 쇠퇴도 극심하다. 이런 해항도시 리브랜딩은 기존 가치를 재구성하기보다는 새 가치를 창출해야 성공 가능성이 크다. 유니크한 라이프스타일로 도시 스토리텔링을 써내려간 포틀랜드(미국), 엑스포와 문화관광 요충지로 도시의 역할을 재설정한 요코하마(일본)가 그렇다.
해항도시 인천은 음악의 관문도시이기도 하다. 인천은 역사·문화적 특성을 살려 펜타포트 록페스티벌, 주섬주섬 음악회 등 일상에서 함께하는 음악, 음악산업 생태계 조성, 음악을 연계한 도시재생 전략을 바탕으로 음악도시로 발돋움하려 노력한다. 부산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은 부산국제영화제(BIFF)도 문화도시 부산에 큰 보탬을 주고 있다.
도시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
역발상으로 ‘애물단지’를 ‘보물단지’로 바꿔놓은 사례도 있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문화비축기지’가 대표적이다. 국가 1급 보안시설이자 위험시설이던 석유비축기지는 계륵 같은 존재였다. 다양한 시도 끝에 2018년 10월 ‘문화비축기지’라는 서울의 대표적인 도시공원으로 탈바꿈했다. 폐쇄된 지 18년 만에 생태친화적인 커뮤니티 파크로 재탄생했다.
도시 브랜드의 핵심 키워드는 ‘차별성’과 ‘경쟁력’이다. 랭킹을 매기는 ‘베스트 원’이 아니라 각자의 매력으로 평가받는 ‘온리 원’을 추구한다. ‘온리 원’ 도시들의 경쟁력은 곧 국가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도시 리브랜딩은 정체성, 끊임없는 변화, 지속가능성을 변주하며 그 도시의 미래를 그려나가는 일이다. 그래서 미래지향적인 현재진행형이다.
“‘도시를 도시답게’라는 일반적인 말이 브랜딩을 거치면 ‘그 도시를 그 도시답게’라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말로 바뀐다. ‘차별’이란 말이 일상에서는 부정적 요소로 비치지만, ‘차별적 가치’라는 도시 브랜딩의 언어로 보자면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다가온다. 도시 리브랜딩의 최고 가치는 인간다운 삶을 지향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 있다.”
이한기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hanki2@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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