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수본 가동한 정부 “파업에 엄중 대응” vs 비대위 구성한 의협 “대정부 투쟁 돌입”

2024. 2. 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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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직후 의사단체 가시적 움직임 예상
양측 입장차 격화에 여론 향배가 관건이 될 전망

[헤럴드경제=이태형 기자]정부가 2025학년도 입시에서 의과대학 정원을 파격적인 수준인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하면서 의사단체가 집단행동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부는 의사단체가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불법 행위를 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으로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결국 국민 여론의 향배가 이번 의대 정원 문제를 푸는 관건이 될 전망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6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를 열고 2025학년도부터 매년 의대 정원을 2000명씩 늘려 2035년까지 최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의협 임시대의원총회 개최, 비대위 전환

대한의사협회(의협) 대의원회 운영위원회는 지난 7일 임시대의원총회를 열어 의대 증원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설치를 의결했다.

애초 임시대의원총회는 설 연휴 이후가 유력했으나, 전날 이필수 의협 회장이 사퇴하는 등 상황이 긴급하게 돌아가고 있어 신속한 비대위 체제 전환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앞당겼다고 의협 관계자는 전했다.

의협 대의원회는 결의문에서“즉각적이며 실효적인 투쟁을 위해 가장 강력한 형태의 증원 저지를 위한 비대위를 구성해 투쟁의 전권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박성민 의협 대의원회 의장은 “비대위 구성과 비대위원장 선출 등의 절차가 남아있다”며 “(집단행동 계획은) 비대위가 구성된 후에야 가능하므로 다음 주는 돼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협이 비대위에서 집단 휴진 등 집단행동에 관한 절차를 밟겠다고 구상한 만큼 비대위 구성과 비대위원장 선출이 마무리된 후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될 것으로 보인다.

개원의 중심의 의협이 집단 휴진에 돌입하면 대학병원과 같은 상급종합병원서 근무하는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의 참여 여부가 파급력을 좌우할 전망이다.

앞서 2020년 의대 증원을 추진했을 당시에도 일부 병원에서는 ‘집단 사직’하면서 의협이 주도하는 집단 휴진에 대거 동참하면서 의료현장에 혼란이 빚어졌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은 오는 12일 온라인으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어 의대 증원 등 의료현안 대응 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박단 대전협 회장은 이날 SNS에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 발표, 보건복지부의 (집단행동 금지)명령 등 작금의 사태에 유감”이라고 밝혔다.

박성민 대한의사협회 대의원 의장이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긴급 임시 대의원 총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연합]
정부 ‘집단행동 및 교사·집단사직서 수리 금지명령’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8일 의료계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회의를 마친 뒤 관련 브리핑을 열고 의협이나 대전협의 집단행동에 대비해 업무 개시 명령 등 법률 검토를 마쳤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파업(집단 휴진)을 시행 중인 의료기관은 없고, 진료도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만일 집단행동이 일어날 경우 업무 개시 명령을 송달하기 위해 전공의들의 연락처를 확보할 계획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공의들이 명령을 받지 않으려고 전화기를 꺼놓을 수도 있다는 말이 있는데, 전화기를 꺼도 문자를 보내면 송달 효과가 있다”고 부연했다.

박 차관은 “법에 규정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범정부 대응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전공의들을 교육하는 수련병원에도 집단행동 자제를 위해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브리핑에 배석한 정경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간담회를 통해 진료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하고 필수의료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수련병원에 요청했다”며 “전공의를 잘 관리하고, 환자를 진료할 의무가 있는 만큼 그 의무가 지켜지지 않으면 수련병원 해제 같은 행정조치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이미 정부는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과 집단사직서 수리 금지명령을 내린 상태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
양측 입장차 격화 예상…여론 향배가 관건

의협은 ‘총파업’이라고 표현하지만, 의료법에 저촉되는 ‘진료 거부’이기 때문에 정부는 의료법 59조에 따라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다.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한 의료인은 1년 이하의 자격정지, 3년 이하의 징역,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지난 2020년 의료계가 단체행동을 벌였을 때 정부는 수도권 전공의 일부에 업무개시 명령을 내린 적이 있다.

복지부가 이같은 법적 검토까지 마치고 엄정 대응 기조를 세운 가운데 의사단체의 반대 명분이 희석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동안 의협은 의대 증원에 앞서 필수의료 분야 수가를 올리고, 의사들의 법적 부담을 완화하는 대책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해왔다.

이에 복지부는 이달 1일 공개한 ‘필수의료 4대 정책패키지’에서 필수의료 수가를 인상하는 데 10조원을 투자하고, 의료사고 시 의사의 형사 기소를 면제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하는 등 의료계의 요구를 대폭 반영했다.

전공의의 연속 근무 시간을 줄이고, 의료기관을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대책도 내놓았다.

이에 더해 복지부는 그동안 의료계와 소비자·환자단체 등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듣는 한편, 대학들을 상대로 의대 증원 수요조사를 진행하는 등 차근차근 의대 증원의 명분을 쌓아 왔다.

의대 증원에 대한 지지 여론도 의료계로서는 부담이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국민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 89.3%가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85.6%는 ‘의협이 진료 거부 또는 집단 휴업에 나서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2020년 당시 의대 증원을 추진했다가 의료계의 총파업으로 정부가 물러났을 때는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 국민 건강과 생명 확보가 우선시됐던 터라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다.

박 차관은 8일 브리핑에서 “제 때 치료받지 못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는 현 상황을 엄중하게 생각하며, 과감한 개혁을 통해 지역과 필수의료를 반드시 살리겠다”며 “정부를 믿고 끝까지 지지․성원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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