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尹 증오에 눈멀어 절호의 기회 놓치다
● 특유의 나르시시즘이 영민함 뒤덮는 치명적 단점
● 집권여당의 1호당원을 엄석대로 등치시켜
● 논리적·합리적 ‘정치인 이준석’의 실종
● 실책 남발하는 尹과 복수욕에 불타는 이준석
● 보수 정치권의 망조라 해도 좋을 희한한 진풍경
[영상] 여의도 고수
"골대를 들어 옮기는 것으로 안 되니 이제 자기 팀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선수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2023년 1월 9일 이준석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당권 장악을 위한 친윤계와 대통령실의 거친 행보에 대해 한 말이다. '한겨레'가 인용한 한 초선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금 하고 있는 건 선거 개입이다. 자신들의 지지 기반을 만들려고 김기현 의원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말했다.
친윤계와 대통령실의 행보는 거친 정도를 넘어서, 사실상 자기 무덤을 파는 꼴이었다. 미련해도 그렇게까지 미련할 수가 있을까. 그런 시대착오적 작태로 인해 민심이 등을 돌리면 당권 장악이 무슨 소용인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윤 정권 핵심부의 어리석음 못지않게 놀라운 건 윤석열의 확고한 자기부정이었다. '공정'을 팔아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자신이 앞장서서 '공정'을 유린하면 어쩌자는 건가.
이준석은 바로 그 점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누가 진정 국민의힘을 살리고 지키려는 수호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어야 했다. 국민의힘 구성원의 전부는 아닐망정 적어도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와 더불어 태도를 보여줬어야 했다. 윤석열을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대할 필요는 없었다. 친윤 정치인들을 싸잡아 모욕할 필요도 없었다. 대통령 눈치를 보느라 침묵할망정 어느 시점에 이르러 "윤석열이 국민의힘과 보수를 망치겠구나"라는 판단이 들면 권력의 대세는 윤석열과 대립각을 확실하게 세워온 이준석으로 기울게 돼 있었다.
3·8 전당대회는 이준석의 그런 면모를 보여주고 과시할 절호의 기회였건만, 이준석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윤석열에 대한 증오와 혐오에 눈이 멀어 판단을 그르친 나머지 정권을 넘겨줬듯이, 그 역시 증오와 혐오에 눈이 멀었던 것 같다.
이준석의 축소지향적 탈레반 자세
지난해 2월 3일 국민의힘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이던 천하람이 "과거로 퇴행하는, 뒷걸음질 치는 국민의힘을 다시 앞으로, 미래로 이끄는 당대표가 되겠다"며 3·8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천하람은 자신을 통해 "자신의 당내 지분을 확인해 보고 싶었던"(진중권) 이준석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천하람의 출마 일성은 "‘윤심팔이 간신배들'이 국민의힘에 발을 못 붙이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허세도 문제지만 너무 거칠었다.2월 6일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정진석은 당 단합을 해치는 악의적 표현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하고 나섰다. 당대표 후보인 안철수의 '윤핵관' 발언과 천하람의 "간신배들 발 못붙이게 하겠다"라는 발언을 동시에 겨냥한 것이었다. 이에 이준석은 SNS를 통해 "‘윤핵관'은 고유명사 비슷하지만 간신배는 보통명사로 '사기꾼' '도둑'이라는 말과 같다"면서 "‘사기꾼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 '도둑 잡겠다' 이런 말이 문제 될 것이 아니라면 보통명사(간신배)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준석은 "간신배 잡겠다고 했을 때 화나야 될 사람은 간신배밖에 없다"며 "간신배 표현을 잡겠다는 건 간신배들의 역정을 들고 간신배 편을 들겠다는 이야기다"라고 주장했다.
그냥 "뭐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자"고 반론을 펴면 될 일이었다. "그러는 너도 간신배다"라는 식의 궤변으로까지 나아갈 필요가 있었을까. 아니 그건 궤변이 아니라 상대 정당과 싸울 때 쓰던 화법의 전형이었겠지만, 당내 행사에서 왜 자기편의 저변을 더 넓혀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그렇게 축소지향적 탈레반 자세를 보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보수 진영 전반에 걸쳐 윤석열의 권위주의적 행태에 대해 강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당시 동아일보 부국장 이승헌의 2월 8일자 칼럼을 보자. 그는 "친윤이 들어선 뒤 그야말로 칼춤이 벌어지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같은 편이었다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쳐낸 사람만 이준석을 시작으로 김종인, 나경원, 안철수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쳐진 사람도 잘못이 있지만, 군사정권 이후 정치권에서 이렇게 집단 린치가 집중적으로 자행된 건 본 적이 없다. (…) 이걸 방치하면, 설령 김기현 의원이 대표가 되더라도 그 후폭풍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이런 환경에서 몸과 머리가 얼어붙어 친윤 외 어느 누가 제대로 움직이겠나. 21세기 한국 정치에서 처음 보는 이 비정상을 윤 대통령은 바로잡아야 한다."
이승헌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이 돋보인다. "김기현 의원이 대표가 되더라도 그 후폭풍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말은 나중에 한 치의 오차 없이 실현됐으니 말이다. '집단 린치'의 경우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노하는 일에 대해선 점잖게 말할수록 설득력과 울림도 커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준석은 그런 메시지 차별화에 별 관심이 없었다. 시종일관 돌직구나 독설 일변도였다.
2월 9일 이준석은 김기현이 당대표에 당선되지 못할 경우 "당장 용산(대통령실) 참모 전원을 해고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에 이번에 이 많은 걸 한 다음에, 용산이 원하는 대로 김기현 대표를 못 만든다? 그러면 어떻게 새로 선출된 대표랑 얘기를 하겠나?"라며 "‘대통령이 당신을 죽이고 싶었는데 못 죽였다. 그렇지만 풀자' 이게 되나? 그러니까 지금 대통령보다 참모진이 더 달아올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석열=엄석대'라고 외쳐야만 했나
이날 윤핵관 4인방 일원으로 꼽히던 이철규는 기자들의 천하람 발언 관련 질문에 "정치를 시작하시는 분이 더 잘해서 당원의 마음을 사고 국민의 마음을 사셔야지 그런 식으로 갈라치기를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을 견제하겠다거나 대통령의 발목을 잡겠다는 건 여당의 당직을 맡겠다는 사람의 기본적인 자세가 아니다"며 "그건 야당의 몫"이라고 했다. 그러자 다음 날 이준석은 페이스북으로 "도둑 잡는다 그러면 도둑은 싫어할 텐데, 간신배 척결한다고 할 때 싫어하는 건 어떤 분일까"라고 다시 그 레퍼토리를 꺼내 들었다.
2월 18일 이준석은 천하람 등 '천아용인' 후보 4인(허은아·김용태 최고위원 후보, 이기인 청년최고위원 후보)과 함께 당원 모임 '국민의힘 바로 세우기' 대구 행사를 찾은 자리에서 2월 28일 열리는 대구 합동연설회를 겨냥해 "열흘 뒤에 대구 정치권을 천지개벽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지난 3~4일 사이 안 보이던 사람들이 등장해 말하기 시작했다"며 "이번에 저희 개혁 세력의 덩어리를 과소평가한 많은 사람들이 놀라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이준석이 천하람을 통해 자신의 당내 지분을 확인해 보고 싶어 하는 심정은 이해할망정 지나치게 나서는 바람에 역효과를 내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정치학자 안병진은 중앙일보 2월 18일자 칼럼에서 "향후 전당대회 최종 성적표와는 무관하게 이준석 정파는 이 싸움에서 이미 주도권을 거머쥔 모양새"라고 호의적 평가를 내리면서도 이런 조언을 했다. "다만 특유의 나르시시즘이 영민함을 뒤덮는 이 전 대표의 치명적 단점은 여전해 보인다. 이번에도 당대표 TV 토론 때 천 후보가 던져야 하는 질문들을 미리 방송에서 자랑하듯 떠드는 모습은 그리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이 전 대표가 아닌 천하람과 최고위원 후보들의 시간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준석에겐 그럴 뜻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 3월 3일 이준석은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이문열 작가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통해 그려냈던 시골 학급 모습은 최근 국민의힘 모습과 닿아 있다"며 "엄석대는 형식적으로는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선출된 반장이었지만, 아이들의 물건을 빼앗고 자체적으로 규정을 만들어 징벌한다. 엄석대가 만들어내는 질서가 과연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가 원하는 형태의 질서인지 냉정하게 판단해 주시라"고 호소했다. 그는 "새로 온 담임선생님은 엄석대도 나쁘다고 꾸짖지만 엄석대 측 핵심 관계자였던 아이들도 5대씩 때린다. 지금의 국민의힘에서 엄석대는 누구인가. 엄석대 측 핵심 관계자는 어떤 사람들인가"라며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하지만 명확한 것은 담임선생님은 바로 국민"이라고 했다.
이준석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시작된 이 전당대회가 무엇으로 결말이 날지는 모르겠다"며 "적어도 저는 그 결말이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숭이 임금님'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벌거숭이 임금님'의 엔딩은 어떤 꼬마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외치자 임금님이 부끄러워하지만, 체통을 생각해서 행진을 끝까지 감행한다는 결말"이라며 "왕이 백성의 소리를 잘 듣기 위해 귀를 덮고 있던 모자를 벗어던지고 성군이 되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결말이 됐으면 좋겠다"며 천아용인 지지를 당부했다.
우호적인 사람들마저 적으로 만들다
이준석이 윤석열을 엄석대에 비유한 건 잘한 일이었을까. 자신의 개인적 원한을 푸는 데엔 아주 좋은 독설이었겠지만, 그게 과연 그 시점에서 천아용인의 당선에 도움이 될 일이었느냐는 것이다. 이준석에 대해 호의적인 자세를 유지해 온 대구시장 홍준표는 "어찌 우리 당 대통령을 무뢰배 엄석대에 비유하나? 지난번에는 개고기에 비유하더니 이번에는 무뢰배에 비교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탄핵 때 박근혜를 팔아먹은 사람들이 무뢰배 아닌가"라며 "당대표까지 지낸 사람이 민주당보다 더한 짓을 하는 건 예의도 아니고 도리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음이 급한 줄 알지만 이제 그만 자중하라"고 했다.마찬가지로 이준석에게 우호적이던 국민의힘 서울 송파병당협위원장 김근식도 "집권여당의 1호당원을 엄석대로 등치시키는 것은 나가도 너무 나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전 대표가) 천하람 후보를 도우려면 윤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해야 하는 게 기본인데 권력을 박탈당하는 엄석대로 윤대통령을 묘사하는 건 건전한 비판이 아니라 막 나가는 적대감일 뿐이다"라고 했다. 그는 "도움이 되는 쓴소리를 하려면 엄석대를 '핵관'으로 비유하고, 오히려 엄석대의 횡포를 혼내주고 바로잡는 담임선생님이 바로 대통령임을 지적했어야 한다"며 "이준석 대표는 항상 지나친 게 문제, 과유불급이다"라고 꼬집었다.
이준석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는 책 이야기만 했는데 홍 시장님도 '엄석대'에서 누군가를 연상하셨다"며 "그렇다면 누군가가 홍 시장님에게서 체육부장을 떠올리는 것도 존중받아야 될 자유"라고 쓰며 홍준표를 겨냥했다. 그러자 홍준표는 3월 5일 페이스북에 "착각에 휩싸인 어린애의 치기에는 대꾸 안 한다. 아무나 대고 욕질해 본들 그건 고스란히 본인에게 돌아간다"고 썼다. 그는 "바른당 시절에도 그렇게 욕질만 일삼더니 그 버릇이 또 도졌나 보다"며 "얄팎한 지식과 잔재주로 하는 정치는 오래 못 간다. 내년에 어찌되나 함 보자"고 했다.
답답한 일이었다. 이준석은 왜 자신에게 우호적인 사람들마저 적으로 만들 정도로 전방위적 싸움에 임한 걸까. 이준석의 과유불급은 그의 신간 '이준석의 거부할 수 없는 미래'에도 나타난 것처럼 보였다. 3월 5일 경향신문이 공식 출간 직전 미리 입수해 보도한 '이준석, 윤 대통령 겨냥 "아첨하는 패거리 멀리할 가능성 없어 보여"'라는 제목의 기사에 따르면, 이준석은 중국 한나라 말기의 학자 유향이 분류한 나쁜 신하 '육사신(六邪臣)'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육사신은 여섯 가지의 해로운 신하를 뜻한다"며 시체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머릿수만 채우는 꿔다놓은 보릿자루들을 뜻하는 '구신', 비위 맞추는 데 특화된 아첨꾼 '유신', 잔머리를 굴려서 남을 음해하는 사람을 뜻하는 '간신', 자신의 영달을 위해 참소를 일삼는 사람 '참신', 이익을 앞세우고 사적인 패거리를 만드는 사람 '적신', 모든 것을 겸비한, 나라를 망하게 할 신하 '망국신' 등이라고 했다.
이준석은 "꿔다놓은 보릿자루들이 누군가를 해하고 참소하면서 아첨할 뿐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고 사적인 패거리를 만든다고 했을 때 지금 시대에 떠오르는 하나의 집단이 있다"며 '윤핵관'을 비난했다. 그는 "그들은 애초에 권력욕밖에 없었기에 정당을 어떻게 경영하고 선거를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군주가 이들을 멀리해야 하는데 사실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며 윤석열도 겨냥했다.
"최고위원도 친윤 일색… 이준석계 모두 탈락"
"최고위원도 친윤 일색… 이준석계 모두 탈락"이라는 경향신문 기사 제목이 말해 주듯이, '천하람 돌풍'은 없었다. 김기현이 52.93%로 과반 득표해 대표에 당선됐으며, 안철수가 23.37%, 천하람이 14.98%, 황교안이 8.72%로 뒤를 이었다. 최고위원 후보 허은아·김용태, 청년최고위원 후보 이기인도 모두 10%대 벽을 넘지 못한 채 지도부 입성에 실패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한겨레는 이번 전대는 당원투표 70%에 일반 여론조사 30%를 반영한 지난 전대와 달리 100% 책임당원 투표로 치러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준석은 당시 당원 선거인단 투표에서 나경원에게 37.4% 대 40.9%로 뒤졌지만, 여론조사에서 58.8%대 28.3%로 압도하며 당선됐다는 것이다. 이 신문이 인용한 한 당 관계자는 "이준석 전 대표도 민심(일반 여론조사) 덕을 본 것일 뿐 당원들은 2년 전에도, 지금도 변함없이 보수색이 짙은 후보를 선택해 왔다"며 "당원투표 100%로 제도가 바뀌어 당연히 이준석계가 힘을 쓰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제도의 변화가 미칠 영향을 몰랐을 리 없는 이준석은 왜 그럼에도 승리를 낙관했던 걸까. '월간조선'은 이준석이 당대표가 된 후 당원이 50만 명 가까이 증가했는데, 이준석은 그들 중 상당수가 자신을 보고 국민의힘의 당원이 됐다고 착각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준석의 대표 시절 전국에서 쏟아진 입당원서 다수를 받아본 당직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 6·1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당원 모집 경쟁 때문에 당원이 늘어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는 것이다.
2022년 '이준석 징계' 당시 '이준석 수호 집회'를 주최하는 등 '준빠'(이준석의 극성 지지자)였다가 나중에 '반(反)이준석'으로 돌아선 최우성은 '월간조선' 기자 박희석과 인터뷰하면서 이런 견해를 제시했다. "그때 '천아용인'을 최고위원으로 당선시키기 위해서는 안철수 지지표를 흡수해야 했고, 최소한 자극은 하지 않았어야 해요. 그런데 자기감정에 치우쳐서 대실수를 하는 그 모습을 보고, 내가 지지했던 논리적·합리적인 '정치인 이준석'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죠."
당시 이준석은 안철수를 조롱하는 듯한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의 약점을 파악해 윤석열 대통령과 정권교체를 이뤘다"고 자평한 안철수 관련 기사를 첨부하고, 그 위에 "이봐 톰, 당신은 선거 열흘 전에 우리 쪽에 왔어"라고 적었다. "그 모습이 왜 충격적인 거죠?"라는 박희석의 질문에 최우성은 "온라인 속에서 그냥 글만 쓰는 지지자들한테 빠진 모습을 보니까 화가 안 날 수가 없었어요"라고 답했다. 이후 이루어진 문답을 좀 더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박희석: 온라인 커뮤니티에 빠져 사는 '키보드 워리어(온라인에서 욕이나 인격 모독성 글을 쓰면서 희열을 느끼고, 자신을 과시하는 부류)'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까.
최우성: 예, 맞습니다. 딱 그 모습이었어요. 많이 지지했는데, 그 마음이 한순간에 식었어요.
박희석: 이준석 씨가 "여러분, 세상은 키보드 밖에 있어요"란 '명언'을 남겼잖아요. 온라인에 취하지 말고 '현실'을 보라는 주문이었는데요.
최우성: 그게 일베(일베저장소란 온라인 커뮤니티) 애들보고 한 말이었어요. 일베 애들한테는 세상이 키보드 밖에 있다고 했으면서, 정작 자기는 펨붕이(에펨코리아 회원을 가리키는 온라인 은어)들한테 빠져서 키보드 속 세상에 사는 걸 보고, 너무 어이가 없었어요.
물론 최우성의 모든 주장에 다 동의할 필요는 없다. 3·8 전당대회에서 천아용인을 위한 선거운동을 '키보드 워리어' 방식으로 밀어붙인 것이 옳았느냐 하는 강한 문제의식을 갖는 것만으로 족하다. 원한과 복수에 집착하다 보면 이성적 판단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옳건 그르건 유권자인 국민의힘 당원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을까.
생산적 비판 막아버린 이준석의 거친 입
따라서 경선 개입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는 수준에서 윤석열에 대한 생산적 비판은 필요하지만 "넌 안 돼"라는 식의 거친 공격은 금기였다. 이준석이 혐오하는 윤핵관과 대통령실의 행태를 비판하더라도 윤석열과 분리해 "누가 더 윤석열의 성공에 기여할 수 있는가"라는 점을 중심으로 비판했어야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준석은 윤석열에 대한 증오·혐오의 감정을 드러내는 식의 공격을 택했다. 윤석열을 희대의 악당 엄석대에 비유했으며, '유튜브 보는 할아버지'로 폄하하기도 했다.
이준석이 일단 천아용인을 띄우는 데 성공했을 때, 그의 소임은 거기서 끝났어야 했다. 이후엔 침묵하면서 천아용인 스스로 설 수 있게끔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윤석열의 취임 100일 성적에 겨우 25점을 준 데다 '양두구육(羊頭狗肉)'에 이어 녹슨 수도꼭지를 금 수도꼭지라며 팔아먹은 사기 혐의를 제기했던 지난여름의 복수혈전을 다시 벌이는 길을 택하고 말았다.
그렇게 하는 게 천아용인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본 그의 어이없는 오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준석이 아니었다면 다른 목소리가 분출해 친윤 일색의 지도부 구성에 다양성을 살리는 동시에 대통령실의 오만한 구태를 교정하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었다. 그는 그 기회를 날려버렸을 뿐만 아니라 천아용인 동지들의 처지도 매우 어렵게 만들고 말았다.
전당대회 결과에 대해 "오늘로서 국민의힘의 정당민주주의는 완전히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민주당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준석은 정의롭고 용감한 의인(義人)이었을 게다. 그러나 그는 민주당의 사랑을 받는 보수 정치인이 되기 위해 정치판에 뛰어든 게 아니었다. 누구보다 더 프로 정신을 강조해 온 투철한 현실 정치인답게 일단 국민의힘 내부에서 지지를 얻어 자신의 튼튼한 발판을 만드는 게 우선이었다. 윤 정권의 극우화를 촉진해 무얼 한 방에 크게 얻고자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3·8 전당대회에서 그렇게 패배했으면 윤석열과 벌인 싸움에서 한 번쯤 기존 전략·전술에 대한 재평가를 해보는 게 좋았겠건만, 이준석은 세상은 키보드 안에 있다는 기존의 믿음을 계속 가져가기로 한 것처럼 보였다. 동아일보 기자 황형준은 4월 6일자 기사에서 이준석을 가리켜 "매력적이지만 치명적이어서 멀리하고 싶은 '옴파탈' 같다"고 했지만, 미디어는 이준석의 바로 그런 점을 사랑했다. 실은 이게 그에겐 독(毒)이었다. 그는 자기 성찰을 해볼 시간 여유조차 없이 자신을 모시고 싶어 하는 미디어의 부름에 응해 윤석열의 치부를 폭로하거나 그에 대한 독설을 난사하는 일을 계속 해댔으니 말이다.
이준석은 4월 7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윤 대통령이) 뭔가를 협상을 할 때 공통점이 뭐냐 하면 마지막에 술을 마시고 뭉개는 방향으로 가는 게 있다"며 "안철수 대표와 그때(단일화 협상할 때)도 종이 쪼가리가 뭐가 중요하냐고 했고, 저도 울산회동 때 대화 그냥 간단하게 3개 조항을 합의하고 바로 술 마시기 회식을 했다"고 말했다.
5월 2일 국민의힘 의원 박성중이 공영방송인 KBS, MBC, YTN 라디오에 대해 "좌파 패널들에게 점령당했다"고 비판하자, 이준석은 "애초 보수 진영 패널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은 도망 다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6월 15일 국민의힘 공정미디어위원회가 "KBS 더 라이브는 이준석-송영길 전 대표 섭외를 취소하라. 섭외 자체가 편파 방송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하자, 이준석은 이렇게 말했다. "방송 좀 하자고 연락 와도 거의 안 하고 지역 방송국에나 가끔 나가고 있었는데 이따위 성명 내는 거 보고 모든 방송 섭외에 예외 없이 응하기로 했다."
보수 정치권의 亡兆
그랬다. 그는 이후 방송 출연을 더욱 왕성하게 하면서 윤석열 공격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윤 정권은 그런 공격에 날개를 달아주겠다는 듯 계속 독선과 오만, 그리고 무능한 모습을 보이면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리석은 실책들을 남발했다. 정권 자체가, 계속되는 '김건희 리스크'를 방치하면서 키우는 윤석열의 엽기적인 둔감을 닮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준석은 국가를 염려하는 차원의 새로운 비전이나 타개책보다는 오직 '윤석열 죽이기'라는 복수욕에만 불타오르고 있었으니, 보수 정치권의 망조(亡兆)라 해도 좋을 희한한 진풍경이었다.자우림의 김윤아는 '증오는 나의 힘'에서 "매일 내일은 당신을 죽이리라"고 마음에 마음을 새겼지만, 결국엔 증오는 결코 나의 힘이 될 수 없다는 걸 고백한다. "증오는 증오를 낳고/검은 증오의 불길이 언젠가는/날 삼키고 난 멸하고 말겠지." 윤석열과 이준석은 과연 그런 공동 자멸의 길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다음 호에 계속)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現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外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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