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아시안컵 우승 무산…3년 뒤 기약해야[亞컵결산①]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패하면서 64년 만의 우승 꿈이 물거품이 됐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지난 7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르단과의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0-2로 패배했다.
힘들게 4강까지 오른 과정이 무색할 만큼 허무하게 지면서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클린스만호는 이번 대회를 통해 지난 1960년 제2회 대회 우승 이후 64년 만의 우승을 노렸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황희찬(울버햄튼), 황인범(즈베즈다) 등 세계적인 선수들에, 설영우, 김영권, 조현우(이상 울산HD), 박진섭, 김태환, 김진수(이상 전북현대) 등 아시아 최고 수준의 프로축구 K리그 주축 선수들까지 보유해 목표를 달성할 적기란 평가가 따랐다.
16강에서 사우디아라비아, 8강에서 호주를 따돌리며 우승 희망을 부풀렸지만 4강에서 중동의 복병 요르단에 패하며 귀국길에 올랐다.
이로써 64년 만의 우승 도전은 좌절됐다.
한국 축구가 출전한 첫 아시안컵은 6·25전쟁이 끝나고 3년 뒤인 1956년 홍콩에서 '제1회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당시 대한축구협회는 직원이 3명에 그칠 만큼 재정 등 모든 면에서 열악했다. 경기 중 다치면 상대 의무팀이 와서 치료를 해줘야 할 정도였다. 그래도 선수단 기량은 뛰어났다. '아시아의 황금 다리'로 불린 최정민을 비롯해 함흥철, 차태성, 손명섭, 김지성, 우상권, 성낙운 등이 포진했다.
1956년 9월 홍콩에서 열린 본선에는 한국과 홍콩, 이스라엘, 베트남 4개 팀이 참가했다. 대만을 떠난 한국 대표팀은 9월6일 경기 당일 새벽 가까스로 홍콩에 당도했다.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경기장으로 갔다. 지친 한국은 초반 2골을 내줬지만 2골을 만회해 2-2로 비겼다. 당시 프로리그를 운영하며 강팀으로 군림하던 홍콩과의 무승부는 우승에 큰 힘이 됐다. 한국은 2차전에서 서부 지역 대표인 이스라엘(당시 아시아축구연맹 소속)을 2-1, 베트남을 5-3으로 누르고 2승1무 승점 5점으로 초대 우승국이 됐다.
초대 챔피언에 등극한 한국은 제2회 아시안컵을 개최하기 위해 서울 효창운동장을 지었다. 1959년 6월 대회 유치가 확정되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효창공원에 축구경기장을 지으라고 지시했다. 대회 개최 직전인 1960년 10월12일 효창운동장이 완공됐지만 4·19혁명으로 하야한 이 대통령은 개장 기념 경평 OB전에 참석하지 못했다.
국내 첫 아시안컵은 4대 윤보선 대통령의 개막 선언으로 열렸다. 본선 참가국은 1차 대회와 같은 한국과 이스라엘, 대만, 베트남 등 4개국이었다. 한국은 '드리블의 마술사'로 불렸던 조윤옥(4골)과 '강철 심장'으로 불린 우상권(2골)의 활약 속에 3전 전승으로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2만 명을 수용하는 효창운동장에는 한국과 베트남 간 개막전을 보기 위해 10만여 명이 몰렸다. 관중석에서 밀려난 관중들이 운동장까지 내려와 관전하는 가운데 한국은 베트남을 5-1로 대파했다. 2차전에서는 이스라엘을 3-0으로 이겼고 3차전에서는 대만을 1-0으로 꺾었다.
조윤옥은 베트남과의 1차전, 이스라엘과의 2차전에서 2골씩을 넣어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1960년대 아시아 최고 공격수였던 최정민과 수비수 김홍복은 2회 연속 우승을 경험했다.
2번째 우승 이후 유명한 '가짜 금메달의 저주' 사건이 발생했다. 대한축구협회는 2회 아시안컵 우승 후 아시아축구연맹에서 받은 지원 비용으로 도금 금메달을 만들어 선수 23명에게 나눠줬다. 적은 제작비 탓에 메달에 씌운 금은 금세 벗겨져 나갔다. 중간에 누가 금값을 빼돌린 것이라는 소문이 났을 정도였다. 이에 최정민 등이 나서 항의했고 결국 선수 전원이 메달을 반납했다.
선수들을 분노케 한 이 사건 이후 한국 축구는 64년 동안 아시안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준우승은 4번(1972년, 1980년, 1988년, 2015년), 3등도 4번(1964년, 2000년, 2007년, 2011년) 했지만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3회 대회였던 1964년 대회(이스라엘)에서는 도쿄올림픽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2진급 선수들을 내보낸 끝에 3위에 그쳐 대회 3연패에 실패했다. 1968년 대회(이란)에서는 예선에서 일본과 대만에 져 아예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차범근과 이회택, 김호, 김호곤 등 스타들을 총출동시킨 1972년 대회(태국)에서는 1960년 이후 처음으로 결승전에 올랐지만 이란에 1-2로 져 준우승에 그쳤다. 후반 19분 박이천의 득점으로 승부를 연장전까지 끌고 갔지만 연장 후반에서 칼라니에 실점했다.
1976년 대회(이란)를 앞두고는 상비군을 구성한 뒤 최종 명단을 추리는 등 신경을 썼지만 예선에서 말레이시아, 태국에 패하면서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1980년 대회(쿠웨이트)에서는 최순호의 득점포를 앞세웠지만 결승전에서 개최국 쿠웨이트에 3골을 내주며 0-3으로 완패했다. 1984년 대회(싱가포르)에서는 조별리그에서 2무2패에 그쳐 4강에 오르지 못했다.
1988년 대회(사우디아라비아)에는 이태호와 정해원, 김주성, 황선홍, 변병주 등 스타들이 출전했다. 결승전까지 올랐지만 개최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연장 120분 혈투를 벌인 뒤 승부차기에 나섰지만 조민국과 조윤환의 실축으로 졌다.
1992년 대회(일본)에서는 지역예선 상대국인 태국,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등을 얕보며 실업 선발팀을 내보냈다가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1996년 대회(아랍에미리트)에는 김병지, 홍명보, 하석주, 고정운, 김도훈, 황선홍 등 호화 멤버가 출전했지만 8강전에서 이란에 2-6으로 참패했다. 이란 골잡이 알리 다에이에 후반에만 4골을 내주며 패했고 그 충격으로 대표팀 사령탑이었던 박종환 감독이 경질됐다.
레바논에서 열린 2000년 대회에는 박지성, 하석주, 이영표, 윤정환, 유상철 등 월드컵 4강을 이끈 선수들이 나섰지만 사우디와 4강전에서 알 메샬에게 2골을 내줘 1-2로 졌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진출 후 나섰던 2004년 대회(중국)에는 박지성, 이영표, 김남일, 안정환, 최진철, 차두리, 설기현 등이 총출동했지만 8강전에서 다시 만난 이란에게 3-4로 졌다. 이 경기에서 이란 알리 카리미에는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동남아 4개국에서 열린 2007년 대회에서 바레인에 지는 등 힘겹게 조별리그를 통과한 한국은 이란과 8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했지만 4강에서 이라크와 승부차기 끝에 3-4로 패했다.
박지성과 이영표의 은퇴 무대였던 2011년 카타르 대회에서 한국은 기성용, 손흥민, 이청용 등 젊은 피를 수혈해 역대 최강 전력을 자랑했지만 3위에 그쳤다. 4강전 연장 후반 2-2를 만드는 황재원의 극적인 동점골로 승부차기까지 끌고 갔지만 구자철과 이용래, 홍정호가 모두 실축해 패했다.
호주에서 열린 2015년 대회에서는 조별리그부터 4강전까지 무실점 전승 행진을 벌였지만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지휘 하에 결승에 올랐지만 개최국이자 직전 대회 준우승팀인 호주에 연장전 끝에 패했다. 후반 추가 시간 손흥민이 극적인 동점골을 넣어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지만 상대 제임스 트로이시에 결승골을 내줬다.
2019년 대회(아랍에미리트)에서도 우승을 달성하지 못했다.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당시 파울루 벤투 감독의 신임을 받던 남태희가 십자인대를 다쳐 낙마했고 이재성도 조별리그 1차전에서 부상을 입었다. 중원의 핵인 기성용마저 허벅지를 다쳐 대회 도중 대표팀을 떠났다. 프리미어리그를 치르던 중 합류해 지쳐 있던 손흥민도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8강전에서 득점 기회를 살리지 못하다 후반 33분 압델 아지즈 하팀에게 왼발 중거리포를 허용해 0-1로 패했다.
64년 만의 우승을 별렀던 한국은 이번에도 4강에서 탈락했다. 이에 따라 다음 대회에서 우승에 재도전하게 됐다.
다음 대회는 3년 뒤인 오는 2027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다. 원래 아시안컵은 4년 간격으로 열린다. 2023년 여름 개최될 예정이던 대회가 개최국 중국의 철회로 미뤄졌고 2024년 1월 카타르에서 열렸다. 이에 따라 다음 사우디 대회는 햇수로 3년 뒤에 열린다.
사우디 대회 역시 중동의 여름 더위 탓에 2027년 1월에 개최될 예정이다. 이로써 다음 대회까지 간격이 3년으로 크게 줄었다. 아쉽게 우승을 놓친 한국 입장에서는 기다림의 시간이 줄었다는 것은 희소식이다.
한국 축구가 다가오는 2027년 사우디 대회에서 67년 만의 우승에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daer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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