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가위로 면역 세포 결함 교정 실험, 쥐·사람 세포서 성공
유전자 편집 기술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를 이용해 면역 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자 결함을 교정하는 전임상 실험이 생쥐와 인간 세포에서 성공했다. 독일 헬름홀츠 협회 막스-델브뤼크 분자 의학 센터의 클라우스 라제스키 박사팀은 최근 과학 저널 사이언스 면역학(Science Immunology)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유전 질환 모델 생쥐의 면역계 기억 T세포 결함을 교정했다고 밝혔다. 유전 질환을 앓고 있는 어린이 2명의 혈액을 이용한 세포 실험에서도 효과를 확인했다.
기억 T세포는 우리 몸이 이미 만난 적 있는 병균(바이러스, 세균 등)을 기억하는 면역 세포로, 같은 병균이 다시 몸을 공격할 때 면역계가 더 빠르고 강력하게 반응하여 우리 몸을 보호해준다. 만약 이 기억 T세포에 결함이 생긴다면, 우리 몸은 특정 병균을 효과적으로 인식하고 대응하는 데 문제가 생기는데, 몸이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반응하여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자가면역 질환이 대표적이다.
연구팀은 영유아에게 발생하는 면역계 희귀 질환인 가족성 적혈구 포식성 림프조직구증식증(FHL)을 갖고 있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실험 가능성을 모색했다. FHL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죽이는 면역계 세포독성 T세포가 정상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하면서, 유전자 돌연변이로 발생하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이 병에 걸리면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BV) 등에 감염돼도 세포독성 T세포가 감염된 세포를 제거하지 못하고 면역 반응이 급증하면서 사이토카인 폭풍과 과도한 염증 반응이 일어난다. 조혈줄기세포이식(HSCT)으로 치료할 수 있지만 사망률이 높아 효과적인 치료법이 필요한 상황이다.
연구팀은 이 연구에서 아데노 연관 바이러스(AAV) 기반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EBV에 감염된 생쥐의 T세포 결함을 교정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생쥐의 유전자를 조작해 T세포에서 감염된 세포를 죽이는 단백질 ‘퍼포린’을 생성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퍼포린 결핍은 가족성 적혈구 포식성 림프조직구증식증 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유전적 결함으로, 인간 환자와 유사한 상태로 생쥐를 조작한 것이다. 그 다음, 연구팀은 생쥐의 면역 세포 중 하나인 T 기억 줄기세포를 취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퍼포린’을 제대로 만들 수 있도록 유전자를 교정했다. 이 교정된 T세포를 다시 생쥐에게 주입했을 때, 세포들이 제 역할을 잘 수행하면서 과도했던 면역 반응이 진정되고, 생쥐는 EBV에서 회복됐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로 생쥐의 면역 세포 이상을 교정한 것이다.
연구팀은 시험관 실험에서 인간 세포 단계에서도 효과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퍼포린 유전자에 결함이 있는 어린이 환자 한 명 등 2명의 혈액을 채취하고 T세포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적용한 결과, 교정된 T세포가 정상 기능을 회복하는 것으로 시험관 실험에서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 치료법이 원칙적으로 효과가 있음을 의미한다며, 다만 환자에게 적용하기 전에 먼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의문을 해결하고 임상 시험으로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해야 한다”며 “하지만 이 치료법이 가족성 적혈구 포식성 림프조직구증식증 치료에 획기적 돌파구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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