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김기동)과 6번(기성용)이 만났다, 2024년 FC서울의 2인3각

황민국 기자 2024. 2. 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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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 서울 감독(오른쪽)과 기성용이 지난 6일 일본 가고시마현 미야자키의 한 훈련장에서 첫 2인3각을 기념하는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미야자키 | 황민국 기자



“(기)성용이를 중심으로 잘 뭉치지 않겠어요?” “감독님이 못 가게 붙잡았으니 잘해야죠.”

프로축구 FC서울 김기동 감독(53)의 눈빛에선 애정이 묻어났다. 사령탑의 간곡한 부탁에 주장직을 받아들인 기성용(35)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2024년 서울의 봄을 이끌어야 하는 두 기둥의 ‘2인3각’이 첫 발을 뗀 순간이었다. 지난해 12월 첫 만남부터 일본 가고시마현 기시시마시 전지훈련지에서의 재회 과정을 현장에서 두 사람에게 순서대로 들었다.

■축구계를 흔든 김기동의 서울행, 첫 걸음은 기성용과 ‘밀당’

포항 스틸러스를 상징했던 김 감독이 서울 지휘봉을 잡은 건 축구계를 흔든 소식이었다.

“(검정색과 붉은색이 교차하는 포항과 서울의) 유니폼 색깔은 큰 차이가 없어 실감이 안 난다”고 너스레를 떤 김 감독은 “정작 나에게 중요한 것은 기성용과의 ‘밀당’(밀고 당기기) 아닌 밀당이었다”고 말했다.

기성용이 서울과 계약이 만료돼 동행 여부가 불투명했다. 김 감독이 서울 감독직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도 전에 기성용을 만나 설득하고, 신임 기자회견 자리에선 공개적으로 재계약이 필요하다고 밝혔음에도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지난 2일 전지훈련지에 합류한 기성용은 “솔직히 감독님의 배려에는 미안할 따름”이라며 “내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어 고민이 길었어요”라고 털어놨다.

감독과 선수의 밀당은 주장 선임 과정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김 감독이 기성용을 주장으로 내정하면서 따로 면담을 가진 횟수만 무려 세 차례. 김 감독은 “처음엔 싫다고 하고, 두 번째도 거절하더라. 4일 방으로 직접 찾아가서 주장직 수락을 이끌어냈다”고 웃었다.

기성용은 “솔직히 제가 선수들을 끌고가기는 버거운 나이라 생각했어요”라며 “이젠 감독님을 잘 도와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전부”라고 설명했다.

■“성용, 린가드를 부탁해”

김 감독이 기성용에게 바라는 최선의 보답은 선수들의 면면이 바뀐 서울을 휘어잡는 리더십이다. 서울을 넘어 K리그 역사상 최고의 이름값을 자랑하는 외인 제시 린가드(32)를 얼마나 잘 챙기느냐가 관건이다.

린가드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출신인 만큼 실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새 무대에 적응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마침 기성용 역시 스완지시티 시절 린가드와 여러 번 맞대결을 벌였기에 서로를 이해하기 쉬울지 모른다.

김 감독은 “(기)성용이가 주장직을 받아들일 때 ‘린가드를 책임져달라’고 했다. 우리 팀에 EPL 출신 선수가 두 명이라 다행”이라고 말하자, 기성용은 “도와줄 게 있다면 도울게요. 한국 생활에 필요한 부분이나 우리 팀과 팬들이 얼마나 기대하는지 이야기해주고 싶어요”라고 화답했다.

사실 기성용은 김 감독의 부탁이 아니라도 린가드를 도울 생각이었다. 린가드가 제 몫을 다할수록 자신에게 쏠리는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매년 실망만 남겼던 성적도 끌어올릴 수 있어서다. “린가드한테 다 떠넘기고 싶다”며 농담을 건넨 기성용은 “린가드가 매 경기 1~2골을 터뜨려주면 나머지 선수들이 뒤에서 받쳐주는 게 당연하죠. 본인도 각오가 남다를 거예요”라고 강조했다.

■올해는 다를까? “달라야죠”

서울은 2016년 정상에 오른 이래 내리막을 걸었다. 기성용이 유럽에서 돌아온 2020년부터는 4년 연속 파이널라운드B(7~12위)에 머물면서 명문이라는 이름값에 먹칠을 했다. 기성용은 “지난해 순위(7위)가 결정됐을 땐 미래(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했을 정도”라고 떠올렸다.

그런 면에서 김 감독의 업적은 ‘올해는 다를 것’이라는 하나의 희망이 됐다. 객관적인 전력을 따질 때 서울보다 나을 게 없는 포항에서 지난해 K리그1 2위와 대한축구협회(FA)컵 우승이라는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기성용은 “감독님이 현역 시절에 제 포지션(수비형 미드필더)이었다”며 “뭔가 전술적으로 디테일하면서 조직적인 부분을 강조하시는 게 잘 맞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김 감독도 기성용을 중심으로 새 판을 짠 것에 만족하는 눈치다. 6일 일본 J리그 산프레체 히로시마와 연습경기에서 1-1로 비긴 뒤 “지난해 1-4로 졌던 상대라고 들었다. (기)성용이가 들어가니 벌써 달라졌다”고 칭찬했다. 지금과 같은 흐름을 잘 유지한다면 3월 2일 광주FC와 개막전부터 신바람을 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묻어났다.

축구는 시즌이 끝날 무렵의 성적에 따라 희비가 갈린다. 지난해 서울도 초반 기세를 마지막까지 이어가지 못하면서 2위까지 올랐던 순위가 7위로 추락했다. 다치는 선수가 나오지 않으면서 한 팀으로 똘똘 뭉쳐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선수들을 세심하게 다룰 뿐만 아니라 위기 관리에 능한 김 감독의 능력 발휘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김 감독은 “포항에서 내 장기가 퍼즐 맞추기였다. 서울에서도 쉽지는 않겠지만 고비에 무너지는 감독은 아닐 것”이라고 장담했다. 반대로 기성용은 선수들이 믿고 따르는 캡틴으로 사령탑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재주가 있다. 김기동과 기성용의 2024년이 어떤 결말의 드라마로 끝날 것인지 궁금하다.

기리시마·미야자키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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