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맨' 김희애의 도전 정신 [인터뷰]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배우 김희애는 과감하다. 자신의 얼굴을 언제든지 벗어던질 준비가 됐다. '데드맨'으로 또 한 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김희애다.
7일 개봉한 영화 '데드맨'(연출 하준원·제작 팔레트픽처스)은 이름값으로 돈을 버는 일명 바지사장계의 에이스 이만재(조진웅)가 1천억 횡령 누명을 쓰고 '죽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 후, 이름 하나로 얽힌 사람들과 빼앗긴 인생을 되찾기 위해 추적에 나서는 이야기다.
김희애는 '데드맨'과 첫 만남에 대해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감독님이 쓰셨다고 해서 놀랐다. 연출만 하시는 것도 힘든데 수박 겉핥기식이 아닌 패셔너블하고 알맹이가 꽉 찬 내용을 쓰셨더라. 좋은 이야기들, 멋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서 흥미롭게 읽었다"고 말했다.
특히 '데드맨'은 '바지 사장'이라는 다소 낯설지만, 독특한 소재를 앞세워 주목받았다. 이에 대해 김희애는 "소재보다 책 자체가 너무 재밌게 읽혔다.
'바지 사장'이라는 소재도 처음 접했고, 책이 재밌었다"며 "감독님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는데 이 책을 쓰면서 생명의 위협도 느낄 만큼 위험했다고 하더라. 그동안 우스갯소리로 '바지 사장'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감독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애를 많이 쓰셨더라"고 전했다.
또한 김희애는 "대본 자체가 누굴 따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감독님이 지난 5년 동안 착실하게 준비하시고, 조사해서 다른 작품들과 차별성을 뒀다는 게 느껴졌다. 패션적으로 멋있게 폼을 잡는 게 아니라 모범생처럼 착실하게 준비한 작품이라고 느껴졌다"고 이야기했다.
극 중 김희애가 맡은 심 여사는 정치 컨설턴트로, '죽은 사람'이 된 이만재를 다시 한국으로 데려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남다른 카리스마를 가진 심 여사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무게감과 중심을 잃지 않는 인물이다.
김희애는 "감독님은 제가 '부부의 세계'가 끝나고 대본이 많이 쌓여서 이 작품을 읽어주기나 할지 걱정하셨다고 하더라. 근데 대본이 많이 쌓이지도 않았다"고 웃음을 보였다. 이어 "제 나이대 여배우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한정적이지 않냐. 근데 이건 꼭 남자 배우가 할 법한 그런 파워풀하고 멋진 역할이어서 너무 반가웠다. 제가 안 할 이유가 없었다"고 자신했다.
이와 함께 김희애는 "제가 그동안 역할보다 멋진 작품에 소품처럼 한 파트로서 참여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며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본인은 사라지고 역할로 살아가지 않냐. 그 역할에 가장 가깝게 보여드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배우라고 생각한다. 저도 마찬가지로 연기를 할 땐 저를 완전히 없애고 외형적으로나, 내면의 캐릭터로서 완전히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소망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김희애가 표현한 심 여사는 화려한 스타일링을 통해 캐릭터성을 짐작케 한다. 가죽 코트부터 볼드한 액세서리, 단정하게 정돈한 헤어 스타일 등이 포인트다.
김희애는 "듣도 보도 못한 캐릭터라 스타일링을 어떻게 할지 기대됐다. 분장팀에서 더 의욕적으로 계획해 줬다. 저도 신나서 얼굴을 들이밀었다"며 "첫 등장에서 이만재가 빨간 죄수복을 입었는데 저한텐 블랙, 블루의 선택지가 있었다. 지옥에서 온 블랙을 할까, 하다가 지옥에 있는 남자를 구원하는 천사를 표현하기 위해 화이트 의상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작품이 전개되며 심 여사는 더더욱 미스터리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만재를 사설 감옥에서 구해내는 '선'(善) 같으면서도, 누군가의 사리사욕을 위해 나서는 '악'(惡)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다면적인 심 여사에 대해 김희애는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끝까지 보게 만드는 것이 포인트다. 심 여사도 아마 본인이 어떤 인물인지 모를 것"이라며 "배우로서 연기할 때도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다'라고 연기하기보단 그 장면에 충실하게 연기를 하고자 마음먹는다. 인간은 늘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항상 내 마음을 저도 모르고, 선과 악이 공존하기 때문에 심 여사는 애매한 인물보단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과 영화 '괴물' 각본을 공동 집필한 하준원 감독은 이번 '데드맨'을 준비하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후일담을 전했다. 이에 대해 김희애는 "세계적인 감독님이 저희 영화에 직접 참여해 주신 것도 너무 좋았고, 영광이었다. 저희가 봉준호 감독의 명성에 누를 끼치는 것 같아서 언급하기가 조심스럽기도 하다"며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제가 평소에 생각하던 모습보다 더 좋으시더라. 세계적인 감독님이 저렇게 소탈하고, 솔직하고, 소년 같으실 수 있다는 걸 보면서 많이 배우고 느꼈다. 정말 멋진 분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김희애는 하준원 감독에 대해선 "잔꾀나 잔재주를 부릴 줄 모르신다. 우직한 분 같다. 계산이 없고, 그냥 착하다. 봉준호 감독님 밑에서도 모범생이었지 않을까 혼자 추측하고 있다"며 "이면에 뭔가를 계산해 두지 않고 성실하게 조사를 하면서 작품을 준비했다는 게 느껴졌다. 존경스러웠다. 그래서 아마 봉준호 감독님도 주저 없이 달려와 주신 것 같다. 혹시라도 하준원 감독님의 작품이 취향이 아니신 분들이라도, 그런 부분을 조금 높이 봐주셨으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김희애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퀸메이커'에 이어 '데드맨'으로 정치, 암투 소재의 작품에 출연하게 됐다. 차기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돌풍'도 부패한 거대권력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싶은 국무총리와 그에 맞서는 경제부총리가 대립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릴 예정이다.
비슷한 결로 그려지는 필모그래피에 대해 김희애는 "정치가 소재가 되긴 하지만, 그게 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혀 다른 결이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어떻게 보실지 정말 기대된다"고 자신했다.
이어 "'퀸메이커'는 정치 컨설턴트였지만, 대기업 해결사로 밑바닥까지 떨어져서 복수하는 과정 중 문소리와 손을 잡으면서 어쩔 수 없는 길을 선택했다면, '데드맨' 심여사는 큰 판을 쥐고 흔드는 정치 컨설턴트로서 파워풀한 여자"라며 "'돌풍'은 삼선 국회의원과 경제부총리가 법의 권력과 싸우는 국무총리가 맞닥뜨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완전히 다른 정치 소재이고, 다른 이야기라 굉장히 매력 있고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희애는 "파격적인 장르물에서 저를 불러주셨으면 좋겠다. 작은 역할도 좋다. 더 좋다. 작품에 참여하고 같이한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결과에 대한 성공 여부를 떠나서 좋은 것 같다'며 "멋진 사람들과 작업하고,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행복한 순간이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서 인생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끝으로 김희애는 설 연휴 경쟁작 '웡카' '소풍' '도그데이즈' 등에 대해 "(흥행은) 아무도 모른다. 상황이 어려운 걸 알고 있다. 장르가 다 다르고, 코드도 다르다"며 "저희는 '바지 사장'이라는 유니크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 않고, 재미난 부분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설에 온 가족이 유쾌하게 보실 수 있다"고 전했다.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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