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편에 섰던 그는 왜 민주당을 탈당했나

나경희 기자 2024. 2. 9.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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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5일 오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탈당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신용우 후보. ⓒ신용우 후보 제공

2월5일 오전, 국회에서 한 후보가 탈당 기자회견을 열었다. 총선을 앞두고 부적격 판정을 받거나 공천을 받지 못한 후보가 당을 떠나는 건 흔한 일이지만 이 기자회견은 조금 달랐다. 16년 동안 민주당 당원이었던 신용우 후보(37)는 세종을 지역구 후보로 뛰기 위해 중앙당공직선거후보자 검증위원회에 예비후보자 검증을 신청했으나, 어떠한 대답도 듣지 못한 채 당을 떠나게 됐다.

신용우 후보는 2009년부터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함께 일했다. 안 전 지사가 충남도지사로 당선되기 이전에 잠시 몸담았던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에서부터 그를 수행했다. 그의 후임 비서가 안 전 지사로부터 당한 성폭력 피해를 고발했던 김지은씨다. 신 후보는 1·2심 법정에 증인으로 나가 김씨의 편에 서서 증언했다. 자신이 민주당에 자료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달 넘게 아무런 답을 듣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당시의 증언 때문이라고 신 후보는 짐작하고 있다. 2월5일 국회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마친 그를 만났다.

 

언제 민주당 검증위원회에 서류를 제출했나?

예비후보자 1차 검증 신청 기간 때다. 당에서 날 불편하게 여기는 분위기라는 건 알고 있어 다른 흠을 잡히지 않으려고 온라인으로 제출해야 할 서류는 온라인으로 제출한 뒤, 그 서류도 모두 인쇄해서 등기로 보내놓고 영수증까지 보관하고 있었다. 그런데 등기로 보낸 서류는 도착했는데 온라인 접수는 안 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2차 검증 신청 기간 때도 서류를 접수했나?
물론이다. 이번에는 누락된 서류가 없다는 사실까지 통화로 확인했다. 서류는 정상적으로 접수가 됐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적격’인지 ‘부적격’인지 통보를 해주고 있지 않다. 나는 전과 이력은 고사하고 사법적으로도 아무런 조사를 받아본 적이 없다. 당으로부터 받은 징계 이력도 없다. 그래서 당연히 적격 판정을 받을 줄 알고 현수막 업체나 현수막을 달 크레인 기사까지 예약을 해놨는데 모두 위약금을 물었다. 현수막 위약금만 수백만원이다. 입어보지 못한 길거리 유세용 점퍼가 아직도 옷장에 걸려 있다.

검증 결과를 듣지 못한 다른 후보자도 있나?

부적격 사유가 있는 후보는 부적격 통보를 받았다. 그런 후보는 선거를 포기하거나 당을 떠나는 절차를 밟았는데 나는 적격도 부적격도 아니고 무기한 보류라서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물론 후보가 해명했지만 해명이 석연치 않아서 검증 과정이 지지부진한 사례가 있다고는 종종 들었다. 그러나 나처럼 아무런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경우는 없다. 하도 답답해 서울에 올라와 민주당 당사를 찾아가기도 했지만 1층에서 당직자와 통화한 게 전부다. ‘소명할 부분이 있으면 소명 자료를 내라고 하든지, 보완할 부분이 있으면 보완 서류를 제출하라고 해야지 이건 너무 부당한 거 아니냐’라고 했더니 ‘할 말이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끊었다. 수능을 보려고 원서를 접수했더니 수능이 다 끝나도록 ‘수능을 볼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는 대답만 내놓고 있는 형국이다.

왜 그랬다고 보나?

안희정 전 지사를 수행했던 전임 비서로서 김지은씨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했다. 그래서 피해자가 어떤 환경에서 근무했는지, 가해자와 피해자가 어떤 불균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있는 사실 그대로만 이야기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정말 권력과 부딪히는 일이 이런 거구나 새삼 깨닫게 됐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도 여전히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안희정 전 지사는 성폭력을 저질러 3년 6개월 동안 감옥에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의 위력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나?

예비후보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검증 서류를 접수하는 조직국에서 근무하는 한 당직자는 안 전 지사가 출소하는 날 본인 페이스북에 ‘(마중 나간) 두 의원님께 감사하다’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이 내 서류를 판단하니 제대로 될 리가 없다고 본다.

그런 점이 공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본질적인 문제는 안 전 지사의 성폭력 사건 이후로도 민주당이 반성하고 달라진 게 없다는 점이다. 나를 심사조차 해주지 않는 건 여전히 권력형 성폭력 문제에 대해 ‘선거 앞두고 언급해봤자 좋을 거 없으니 쉬쉬하고 넘어가자’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민주당 안에서나 통하는 논리다.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보수 진영에서 ‘안희정·박원순·오거돈 사건 이후로 민주당은 권력형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라고 따진다면 할 말이 없지 않은가. 2차 가해자들은 당에서 승승장구하고 피해자 편에 섰던 사람들은 내쫓기고 있는데, ‘이건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조차 없다.

출마를 결심한 계기는?

정치권에는 평판 조회라는 게 있다. ‘세평’이라고도 한다. 이걸 통해 서로 인사를 추천하거나 채용하지만 사건 이후 나는 아무 데도 갈 수 없었다. 2년 동안 조그만 푸드트럭을 사서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닭꼬치를 팔기도 했다. 어렵게 가정을 꾸리다가 지역에 조그만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어느 날 거래처 대표님들을 모시고 대전의 한 식당에 갔는데, 그곳에 안희정 전 지사와 가까웠던 한 의원이 다른 의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더라. 나도 모르게 도망쳤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식당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식당으로 들어갔다. 테이블로 다가가서 “의원님, 잘 지내시죠?” 하니까 당황해하며 “어, 용우야, 너도 잘 지내지?”라고 물었다. “저는 잘 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니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결국 지역에서 사업을 하든 회사를 다니든 어느 위치에 올라가면 마주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가서 바꿔내지 않으면, 밖에서 아무리 떠들어봐야 ‘저러다 조용해지겠지’하고 넘어간다. 그날 식당에서 그랬던 것처럼.

출마 지역이 세종을이다.

세종을에는 충남 연기군이 포함돼 있다. 나는 충남 연기군에서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나온 토박이다. 세종을 현역 의원인 강준현 의원은 안희정 전 지사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와 동문회 기수회장을 하고 있던 지역 건설업자였다. 최근 강 의원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강준현TV’에 영상이 하나 올라왔는데, 6분 남짓한 영상에 안 전 지사의 장남이 수행비서처럼 내내 등장한다. 아직까지 충청권에서는 ‘안희정 마케팅’이 통하기 때문에 그를 통해서 표를 얻겠다는 뜻으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그건 민주당 안에서나 통하는 이야기다. 국민들은 권력형 성폭력 문제에 대해 엄중하게 생각한다.

앞으로 어떻게 할 예정인가?

공천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할지 검토하고 있다. 또 피선거권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에 검증을 신청했는데 아무 이유 없이 검증을 이행해주지 않을 경우, 헌법소원까지 가능하다는 자문을 받았다. 민주당에서 공천받기 힘드니까 다른 당에 가서 당선되겠다는 게 아니다. 16년 동안 몸담았던 당을 떠나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 만감이 교차했다. 대한민국 곳곳에 만연한 부당한 권력과 인권 유린, 권력형 성폭력 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누구와도 연대할 마음을 열어놓고 있다.

 

〈시사IN〉은 신 후보가 검증위원회로부터 응답을 받지 못한 이유를 묻기 위해 민주당 조직국 당직자에게 전화를 하고 문자를 남겼으나 답을 받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 간사 김병기 의원과 공천관리위원회 부위원장 조정식 의원에게도 연락했으나 답이 없었다.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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