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추방 모의에 “극우 정당 해산” 외친 독일 시민들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2024. 2. 9.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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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잠입 취재로 독일의 극우 세력이 비밀 회동을 갖고 이민자를 대규모 추방할 계획을 논의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극우주의 확산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1월20일(현지 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시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Photo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극우주의 확산에 반대하는 시위가 1월20일과 21일 이틀에 걸쳐 독일 전역에서 열렸다. 경찰 추산 베를린과 뮌헨에서 각각 약 10만명, 쾰른에서 7만명, 함부르크에서 5만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뮌헨과 함부르크에서는 예상보다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 안전상의 이유로 행사가 조기 종료되기도 했다.

대도시뿐 아니라 소도시에서도 극우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위치한 인구 30만명의 작은 도시 헤른베르크에서는 6000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주최 측은 애초에 참가자 200명 정도를 예상했는데 30배나 많은 시민이 모였다. 시위 참가자들은 “이번에는 침묵하지 않겠다” “혐오는 의견이 아니다” “다시는 파시즘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AfD를 뽑는 것은 다시 1933년(나치 집권)을 만드는 것이다” “AfD 해산” 등의 내용이 담긴 피켓을 들고나왔다.

AfD의 지지세가 강한 옛 동독 지역에서도 극우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베를린을 제외하면 옛 동독 지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 라이프치히에서는 6만명이 모여 인구 50만명이 넘는 대도시 중에서는 인구 대비 시위 참가 비율이 가장 높았다. 기후보호 활동가이자 라이프치히 시위를 주도한 야스파르 라이만은 시사주간지 〈슈피겔〉 인터뷰에서 “옛 동독 지역에서 극우에 반대하는 시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또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여러 단체가 순식간에 결합하고 특별히 정치에 활동적이지 않은 시민들이 다수 참여해 시위가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옛 동독 지역에서는 극우주의자들이 주도한 시위가 빈번했다. 라이만은 이번 시위 참석자 중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시위에 나선 경험이 없는 사람이 많다며 AfD와 극우주의자들의 비밀 회동에서 나온 얘기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충격을 주었을 것이라고, 대규모 시위가 이루어진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시위를 촉발한 것은 1월10일 발표된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 〈코렉티브〉의 보도였다. 〈코렉티브〉는 지난해 11월 포츠담의 한 호텔에서 개최된 AfD의 정치인과 극우주의자들의 비밀 회동을 잠입 취재했다. 20명가량이 참석한 모임에는 AfD의 주요 정치인 4명, 독일의 대표적 극우주의자와 오스트리아 극우 활동가, 기민당 당원, 극우 세력을 지원하는 사업가 등이 있었다. 〈코렉티브〉에 따르면, 모임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비밀 회담이었으며 모임 참가자 초대는 우편을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보도가 사람들에게 특히 충격을 준 것은 모임을 통해 집중적으로 논의된 ‘재이민(Remigration)’이었다. 재이민은 이주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대규모 추방을 의미한다. 재이민 계획에 관해 발표한 사람은 오스트리아의 젊은 극우 활동가 마르틴 젤너였다. 1989년생인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정체성 운동’이라는 극우단체를 만들고 이끌었으며 독일 극우 진영에서도 대표적인 신진 극우주의자로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젤너는 재이민 목표 집단을 세 개로 분류했다. ‘난민 신청자’ ‘거주권을 가진 외국인’ ‘사회에 통합되지 않은 독일 시민권자’이다. 그는 특히 마지막 그룹이 문제라며 시민권을 가진 사람 중에서도 독일인에 속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했다. 젤너는 재이민이 수년에 걸쳐 이루어져야 하는 장기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모임의 초대장에는 이번 모임이 독일을 다시 정상적이고 건강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기본 전략을 발표하는 자리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AfD 소속 연방의회 의원 게리트 후이는, 자신은 이미 AfD에 입당할 때부터 재이민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며 젤너의 발표에 지지를 표했다. 작센안할트 주의회 AfD 원내대표 울리히 지그문트는 재이민을 위한 구체적 활동으로 ‘작센안할트주에서 외국 식당이 영업하기 어렵게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난민 신청자들을 아프리카의 특정 국가로 보내는 방안도 이야기되었다. 젊은 층에 자신들의 생각을 전파할 수 있도록 극우 인플루언서들을 관리하는 에이전시를 만드는 계획까지 논의됐다.

회동 내용은 독일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1942년 포츠담에서 멀지 않은 베를린 외곽 별장에서 열린 반제회의에 비견되기도 했다. 반제회의에서 나치 정부의 수뇌부 15명은 유럽에서 유대인을 말살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연방 내무장관 낸시 패저는 풍케미디어그룹과 한 인터뷰에서 “별로 위험하게 들리지 않는 ‘재이민’이라는 단어 속에는 민족이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사람들을 대량으로 추방하려는 생각이 숨겨져 있다”라며 비밀 회동을 비판했다.

1월10일 이후 독일 전역에서는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극우에 반대하는 수많은 시위가 개최되었다. 〈차이트〉 보도에 따르면, 1월21일까지 독일 전국에서 최소 100만명에서 최대 150만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1월14일 포츠담에서 열린 시위에는 연방 총리 올라프 숄츠와 외무장관 아날레나 베어보크가 참석하기도 했다. 베어보크는 DPA 통신과 현장 인터뷰를 하면서 “저는 수천 명 포츠담 시민 중 한 사람으로 이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여기 서 있는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구시대와 새 시대의 파시즘 모두를 거부합니다”라고 말했다.

‘독일을 위한 대안(AfD)’ 규탄 시위에 나선 시민들. ⓒREUTERS

일부 지역 AfD 지지율 20%에 달해

정치권에서는 AfD를 제약할 법적 수단에 대한 논의에 불이 붙었다. 지금까지 일부가 주장해왔던 정당 해산도 다시 언급되고 있다. 정당 해산은 민주주의와 인간 존엄성을 위협하고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정당에 내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다. 연방 헌법재판소가 결정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해당 정당의 활동이 실제로 체제를 전복할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과거 헌법재판소는 AfD보다 극우 성격이 더 분명했던 국가민주당(NPD) 해산 신청도 국가민주당의 현실 영향력이 높지 않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현대 독일 역사에서 정당 해산 판결은 1956년 공산당(KPD)에 내려진 것이 유일하다.

전체 정당을 해산하는 대신 극우주의자들과 관련된 활동이 명확히 드러난 AfD의 주(州) 정당들이나 청년 조직을 해산하는 방법도 언급되고 있다. 유력하게 논의되는 조처는 국고 지원 중단이다. 헌법적 가치에 위배되는 활동을 하는 정당에는 헌법재판소가 국고 지원 자격을 6년간 박탈할 수 있다. 이 판결은 정당 해산과 달리, 헌법적 가치를 크게 훼손할 현실적인 가능성이 적더라도 내릴 수 있다. 1월23일 헌법재판소는 국가민주당의 후신인 ‘디 하이마트(Die Heimat·조국)’를 국가 재정지원과 세금 혜택에서 배제하는 판결을 했다. 디 하이마트의 지지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

AfD의 비밀 회동에 분노한 시민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이것이 AfD의 지지율 하락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경고도 나온다. 대규모 시위는 독일 사회에 극우 세력을 저지하는 방어선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는 했으나 AfD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의사가 변했을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는 9월에는 옛 동독 지역의 작센·브란덴부르크·튀링겐 3개 주에서 주의회 선거가 열리는데, 독일 사회는 AfD가 얼마나 많은 주의회 의석을 얻게 될지 주목하고 있다. 2019년에는 3개 주 모두에서 AfD가 2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두 번째로 많은 의석을 얻었다.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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