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추석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썰렁한 광장시장 한복집
'손님 그득' 1층 먹자골목과 대조…상인들, 궁여지책으로 인터넷 판매도
(서울=연합뉴스) 계승현 기자 = "IMF 때보다 손님이 적어요. 말 그대로 매출이 곤두박질쳤어요. 장사 접고 나간다는 사람이 점점 많아서 큰일이에요."
설 연휴를 앞둔 지난 7일 한복점이 늘어서 있는 광장시장 2층에서 만난 전통한복 속치마 가게 주인 70대 백정옥씨는 기자가 다가가자 한복을 사러 온 고객인 줄 알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취재 중인 기자라고 하자 이내 울상이 됐다.
백씨는 "경기가 안 좋으니 각종 행사도 다 생략하고, 하더라도 한복은 안 입다 보니 사러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어르신들도 젊은 사람들 트렌드 따라가며 한복 입는 사람이 확 줄어들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한복을 외국에 소개하는 젊은 유튜버들이 와서 가끔 매출이 나는 정도"라고 말했다.
식당과 노점이 손님으로 가득 차 떠들썩한 1층과 달리 2층은 다른 세상인 것처럼 고요했다.
상인들 얘기로는 몇 년 전만 해도 설 연휴 '대목'엔 아예 가게에 들어서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한복을 사려는 손님으로 붐볐다.
지금은 대다수 한복점에 손님이 아예 없었다. 있다고 해도 2∼3명이고 그나마 일행인 곳이 대부분이었다.
곳곳에서는 폐업으로 셔터를 내린 가게도 눈에 띄었다. '생활한복 80% 파격세일'이라는 홍보문구를 내건 점포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30년간 광장시장에서 한복을 팔았다는 유미숙(57)씨는 "원래 이때쯤 되면 발 디딜 틈도 없이 여기부터 저기까지 꽉 차야 한다"며 가게 앞 복도를 가리키며 팔을 휘휘 저었다.
유씨는 "사실 한복장사는 추석·설날 반짝장사"라며 "코로나 때도, 작년 추석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제는 발길이 뚝 끊겼다고 봐야한다"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30년간 한복을 팔았다는 70대 최모씨는 "나도 얼른 장사 접고 여길 떠나고 싶은데 지난 세월이 아깝고, 돈도 없고…"라며 말끝을 잇지 못했다.
한복상 유미숙씨는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한복을 홍보하거나 한복 진흥 방안을 마련해줬으면 한다. 이대로 가다간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장사 접고 한복이라는 게 세상에서 없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가게가 인터넷 판매를 뛰어든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한다.
한 한복점 주인은 소리를 낮춰 "사정이 너무 어려워서 인터넷 업체에 한복을 팔고 있는데, 이건 다른 가게에 알리면 곤란하다"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매출이 10분의 1보다 더 줄어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터넷 판매를 통해서도 큰 수익을 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온라인에서도 한복을 찾는 이들이 별로 없는 탓이다.
이커머스 업체 티몬 관계자는 "이번 설 연휴 전 한 달간 한복 판매량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동기간의 한복 판매량보다 소폭 감소했다"고 말했다.
G마켓 관계자도 "아동 한복과 성인 한복 모두 5년간 감소 추세"라고 말했다.
한복산업의 위축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2022년에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2010년 5천287개였던 한복 제조업 사업체 수는 2020년 31.7% 감소한 3천608개로 줄었다.
이 기간 한복산업 종사자 규모는 7천550명에서 4천844명으로 35.8% 줄었으며, 매출액은 2천583억원에서 1천420억원으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한복을 구매한 적 없는 만 20세 이상 소비자 중에서 앞으로 전통한복을 구매할 의향이 있는 비율은 39.1%였다. 또 전통한복의 착용 빈도는 '거의 입지 않는다'는 응답이 48.5%, 1년에 1∼2회 정도 입는다는 응답이 33.8%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명절에 먼 길 가랴, 음식 장만하랴 할 일이 많은데 한복을 입기엔 너무 번거롭고, 사람들이 점점 실용적인 옷차림을 추구하니까 한복도 자연스럽게 안 입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불편하다는 이유로 우리 전통의상이 소멸하게 둘 건지, 어떤 식으로든 변형해서 일상생활에서 예쁘게 입을 방안을 찾을지를 놓고 정부에서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ke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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