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병 기록 회수 문제 있었다" 조금씩 밝혀지는 그날의 진실 [서초동M본부]

나세웅 salto@mbc.co.kr 2024. 2. 9.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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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기록 회수, 문제 있었다"… 국방부 윗선 '직권남용' 고리 나왔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당시 사건 처리에 관여한 실무진으로부터 중요한 진술을 얻어냈습니다. 바로 해병대가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을 되찾아온 국방부 검찰단 수사관으로부터였습니다. 이 수사관은 수사기록을 경찰에서 되찾아오는 과정에서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했습니다.

이 수사관은 작년 8월 2일 직접 경북 안동의 경북지방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사무실로 찾아가 9백여쪽의 1차 수사기록을 직접 들고온 인물입니다. 당시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검찰단장이 가져오라고 하니 지시에 따라 기록을 가져왔다"는 취지로 해명했다고 합니다.

이 진술이 중요한 건 수사 외압 의혹이 제기된 국방부 '윗선' 수사로 올라가는 하나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공수처는 지난달 30일 국방부 김동혁 군검찰단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압수수색했습니다. 당시 압수영장엔 이 수사관에게 절차를 어기고 경찰로부터, 해병대 수사단이 건넨 기록을 되찾아오게 한 행위가 적시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반환' 아닌 '회수'"… "문제 없다"는 경찰 해명 따져보니…

그 동안 군은 당시 해병대 수사단이 넘긴 기록을, 당일 곧바로 별개의 수사기관인 군 검찰단이 되찾아오는 과정에 법적인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해왔습니다. 관련 규정에, 군과 경찰은 군검사, 군경찰, 민간 경찰과 민간 검사는 민간 법원이 재판권을 갖는 범죄에 대해선, 상호 협력의 원칙에 따라 수사자료 제공을 서로 요청할 수 있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왜 실제 실무자는 다른 진술을 한 걸까요? 법원은 왜 이 부분을 두고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고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 걸까요?

일단 수사기록을 그대로 돌려준 경북경찰청은 해병대 수사단의 이첩이 완료된 상태가 아니었다고 주장합니다. 근거로는 해병대 수사단이 보낸 온라인 인계 공문을 접수처리 하지 않았고, 형사 사건 전산시스템인 '킥스'에 스스로 입력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이첩'된 적이 없으니 기록을 돌려준 행위도 '반환'이 아니라 '회수'라고 강조합니다. 즉, 반환은 경찰이 완전히 받은 뒤 적극적으로 돌려줬다는 의미지만, 제대로 받지 않고 국방부가 다시 가져갔으니 회수가 정확한 표현이라는 겁니다. 경찰 입장에선 국방부와 해병대 사이 갈등에 끼어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을 법 합니다.

그러나 수사 실무에 밝은 이들은 경북청의 해명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한 현직 검사는 "기록을 들고 가서 전달했는데 실물을 거부하지 않고 받았다면 이첩이 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해병대 수사단은 기록을 주고, 넘겨가며 내용을 설명하기까지 했다"며 "온라인으로 공문 접수 처리를 일찍하고 늦게 하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봤습니다. 실제 해병대 수사단은 기록 반환 소식이 알려진 뒤 "잘 부탁한다는 말까지 하고 나왔는데 왜 이첩이 안됐다는 거냐"고 직접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또 총경급 경찰 간부는 "뇌물을 받고 장부에 적는 것을 까먹었다고 뇌물을 받았다는 '실체'가 사라지냐"고 꼬집었습니다.


"항명죄 수사" 언급하고 '채 상병 사건' 기록 회수… 정당한가?

기록을 가져간 국방부 측의 설명도 모호합니다. MBC가 확보한 군 검찰의 '채 상병 사건' 기록인수 경과 보고서에 따르면, 군검찰단 실무자는 기록을 찾으러 가기 전 전화로 "검찰단 수사 중인 사안 관련해 기록 회수해야 한다"고 알렸다고 돼 있습니다. 또 경찰을 만나선,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이첩 보류 지시를 어겨서 회수하러 왔다"고 말했고 "항명"이란 언급도 했다고 돼 있습니다. 군검찰단이 '채 상병 사망 사건'을 조사하는 게 아니라, 해병대 박정훈 전 수사단장의 항명죄를 수사한다는 걸 경찰에게도 알렸다는 겁니다. 실제 기록을 받아온 군검찰단은 이 수사기록을 항명죄 사건 번호를 붙인 뒤 기록에 편철합니다.

문제는 채상병 사망의 책임을 가리는 수사(과실치사)와 상부의 지시를 기록을 넘긴 해병대 수사단장에 대한 수사(항명죄)는 수사 주체도 다르고, 수사 대상도 다르다는 겁니다. 군검찰단은 이후에도 항명죄 수사를 진행해 박정훈 전 단장을 군사법원에 넘겼습니다. 반면 해병대에 대한 과실치사 수사는 기록이 넘어간 뒤에도 일주일간 멈춰 있다, 군경찰인 국방부 조사본부에 8월 9일 재배당되면서 재개됩니다.

공수처는 만약 항명죄 수사를 위한 증거로서 '채 상병 사건' 수사기록을 확보하려면 법원의 압수 영장을 받거나 임의제출 절차를 밟았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영장은 둘째치더라도 임의 제출물을 압수하려면 수사기관은 상대가 동의하고 낸다고 인정한 임의제출서를 받아둡니다. 당사자에겐 무엇을 가져갔는지 목록도 제공해야합니다. 수사기관이 절차를 어겨 수사와 관련없는 기록과 물건을 마음대로 확보하지 못하도록 우리 법이 정해둔 절차입니다. 만약 재판에 증거로 제출되면 증거능력이 부정되기 때문에 수사기관 종사자들은 상식처럼 지키는 절차입니다. 앞서 이같은 지적이 국회 현안질의 과정에서 나오자,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임의 제출물 압수한 것이 아니라 임의 제출물을 그냥 받아온 걸로 알고 있다"고만 답했습니다.

작년 8월 2일 저녁, 경북 안동에서 기록을 받아오면서 검찰단 수사관은 경북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장과 사건기록 인계인수증을 작성했습니다. 내용은 허술합니다."수사기록 2권에 대해선 귀 기관의 요청에 따라 담당자가 직접 인계 인수하였음을 확인한다"며, 당사자 2명의 서명만 남겨놨습니다. 어떤 근거에 따른 것인지, 범죄 혐의나 구체적인 회수 근거는 작성되지 않았습니다. 공수처가 이같은 내용을 토대로 군검찰 수사관을 추궁하자, 자신도 절차상 문제를 느꼈다고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국방부 서로 책임 떠밀듯… '인계' 공문 처리도 '핑퐁'

경찰은 온라인 공문 처리가 중요한데, 처리하지 않았으니 이첩이 안됐다고 설명해왔습니다. 그런데 확인결과 경찰은, 국방부가 수사기록을 찾아간 뒤에도 해병대 수사단이 보내왔던 공문은 결재하지도 반송하지도 못하고 그냥 두고 있었습니다. 국방부는 기록을 고스란히 가져가고 19일 뒤 '채 상병 사건' 수사결과 재발표를 앞두고 반송 처리를 요청했습니다. 경찰은 그제야 공문을 국방부와 해병대 수사단에 각각 돌려보냈습니다. 또 해병대 수사단과는 이를 재반송, 경찰이 재재반송하는 신경전을 벌였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자, 지금까지 전개된 해병대 수사외압 의혹을 정리해보겠습니다.

① 먼저, 작년 7월 31일부터 이종섭 전 국방장관이 긴급회의 뒤 참모들을 통해 이튿날까지 해병대 수사단 및 지휘부에 외압을 가했다는 의혹입니다.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5차례 수사책임자인 박정훈 대령에게 전화해 '혐의자를 빼라'고 한 것으로 지목됐습니다. 박진희 군사보좌관은 텔레그램 메시지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확실한 혐의자는 수사 의뢰, 지휘 책임자는 징계로 하는 것도 검토해달라"고 전했습니다.

② 두번째, 8월 2일,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에 사건 기록을 이첩한 뒤 이를 되돌리는 과정에서 벌어진 외압 의혹입니다. 해병대 수사단은 이날 오전 최초 장관 결재안대로,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이 채상병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혐의를 적시한 기록을 경찰에 넘깁니다. 불과 세시간여만에 국방부 검찰단이 나서 사건 기록을 돌려 받습니다.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은 항명죄로 입건되고, 해병대 1사단장 인사조치는 취소됩니다.

③ 세번째, 군이 기록을 가져온 뒤 최종적으로 채상병 사건 조사를 마무리하는 단계입니다. 군검찰은 이첩 당일 기록을 회수하고도 항명죄 수사만 진행했습니다. 정작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는 일주일 뒤 군경찰에 해당하는 국방부 조사본부가 사건을 넘겨받으면서 재개됐습니다. 이어 보름 뒤 조사본부는 대대장 2명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경찰에 다시 사건을 넘깁니다.


"절대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 생존 해병 어머니의 호소

정말로 수사 대상자를 축소하라는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고 가정해보면, 일련의 수사 외압은 사건의 구성상 전개에 해당합니다. 그런데도 파악하지 못하는 사이 이첩이 강행된 건 국방부 수뇌부로서는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 절정상황에서 누군가 내놓은 해법이 이첩된 기록을 회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뒤 최종적으로 정리해 재이첩하는 결말로 이 사건을 몰고 간 셈입니다.

아직은 입증되지 않은 가정법일 뿐입니다. 다만 MBC는 국방부와 경찰간의 회수 협의 과정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전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보도했습니다. 이번엔 회수 절차상 문제에 대한 실무진의 진술이 추가됐습니다. 그렇다면 수사 경험이 풍부한 고참 수사관이 관행과 절차에 맞지 않게 기록부터 가져오라 지시한 '윗선'은 누구일까요? 사건의 클라이막스에 누가 어떻게 움직인 것일까요?

공수처 수사와 별개로, 시민단체는 지난 7일 국정조사 실시를 촉구하는 시민 2만여명의 서명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채상병과 함께 투입됐다 겨우 구조된 해병의 어머니는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세상을 떠난 채상병과 마음의 병을 얻은 제 아들, 그리고 그 당시를 잊지 못하고 있을 제 아들의 동료들, 그 아이들에게 이게 절대로 너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렇게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이게 누구 책임인지 어떻게 일어났는지 진실을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지금의 어른들이 해줘야 될 일 아니겠습니까."

나세웅 기자(salto@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4/society/article/6570020_364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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