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별한 아내·연락 끊긴 아들…"명절 뭐 별거 있나" 늘 적적한 독거 어르신

오석진 기자 2024. 2. 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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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쇤다③-독거 어르신]"아내는 하늘로, 아들 연락 없지만" 외롭지 않은 어르신들 명절나기
[편집자주] 1인 가구 750만 시대, 또다시 '명절'이다. 설렘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다고 우울하지도 않다. 대세가 된 1인 가구들은 이미 '자기 스타일대로' 명절을 쇠는 방식을 찾았다. 혼자 사는 취준생, 직장인, 어르신, 장애인, 외국인들의 '2024년 설 연휴'를 기록한다.

설 연휴가 시작되는 8일 오후 1시쯤 종로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 / 사진=오석진 기자

"설이라고 다를 게 있나요 혼자인데."

서울 금천구에 사는 김모씨(84·남)는 홀로 지내는 노인이다. 김씨는 전북 고창에서 나고 자라 25살에 상경했다. 내년이면 서울로 온 지 60년이 된다는 김씨는 오래 전에 아내를 암으로 보내고 아들과는 10년이 넘게 연락이 닿지 않는다.

8일 오후 1시쯤 검은 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쓴 채 종묘공원 편의점 앞에 앉아있던 김씨는 "설 연휴라고 특별히 다를 건 없다"며 "어차피 혼자라 심심하기도 했고 노인들은 지하철도 다 무료라 종로공원까지 금방 왔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 하나를 일본으로 유학도 보내고 결혼도 시켜놨더니 연락이 없다"며 "혼자 사는게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어서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그는 최근 트로트 작사 작곡이 취미라며 기자 앞에서 수첩을 꺼내들고 자작곡으로 노래 실력을 뽐냈다.

설날을 맞아 고향에 사는 막내동생과 조카가 오라고 했지만 그는 가지 않을 예정이다. 차례상 차리기가 귀찮다며 설날 음식을 구매하지 않는 김씨는 "명절 뭐 별거 있나요? 쉬는게 더 편하지"라며 설 연휴에도 친구들이 있는 종로공원을 방문하겠다고 밝혔다. 김씨는 혼자도 괜찮지만 가족과 설을 같이 보내던 생각이 이따금 난다고 했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독거노인 이모씨(68·여)는 벌써 혼자 산지 10년이 넘었다. 전남 신안이 고향인 이씨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서울에 있는 친척을 따라 상경했다. 이후 모종의 일로 사이가 틀어지고 지금까지 혼자 살게 됐다. 결혼은 하지 않았다.

서울 동작구 한 경로당에서 만난 이씨는 "난 아직 젊어서 늙은 축에는 끼지도 못한다"고 했다. 150cm가 조금 넘는 키에 깡마른 몸, 얼굴엔 주름이 가득한 이씨는 경로당에서 점당 10원씩하는 고스톱을 치는 것이 하루일과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이씨는 매달 80만원이 조금 안 되는 정부 지원금을 받는다. "일은 따로 안 하시냐"는 기자의 물음에 미소를 보이며 "내가 어떤 일을 하면 좋겠어요?"하고 되묻곤 "일을 안 주니까요"라고 말했다. 이씨는 센터에서 반찬과 쌀, 과일을 받으며 산다. "센터에서 주는 과일은 맛이 썩 괜찮다"는 이씨는 설날을 혼자 보내기 싫어 교회를 갈 예정이다.

/사진=이지혜 디자인기자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독거노인 비율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다. 2017년 독거노인 비율은 19.0%였으나 점차 늘어 2023년엔 21.1%다. 2023년엔 노인인구가 950만명에 가까워지며 전체 인구의 18% 정도가 됐고, 그 중 1인 가구는 200만명 수준이다.

2000년부터 독거노인 비율은 쭉 증가추세다. 2012년 독거노인 비율은 18.4%로 2011년에 비해 0.1%p 낮아졌는데, 그 한 차례를 제외하곤 단 한번도 전년보다 비율이 줄지 않았다. 독거노인인구 증가세가 전체 노인인구 증가 속도보다 더 빠르다는 뜻이다.

8일 오후 2시50분쯤 점퍼를 입고 모자를 쓴 채 종로공원을 이리저리 산책하던 신모씨(79)는 벤치에 앉아 노트북을 하던 기자에게 먼저 다가와 "컴퓨터로 무얼 하시냐"며 말을 걸었다. "좀 있으면 설날이라고 하나 건지러 왔나 본데 뭐가 없죠?"라며 말을 시작한 신씨는 정치 얘기를 한참 하곤 "젊은 세대는 할 일이 많으니 적적한 걸 잘 모른다"라며 웃었다.

독거노인을 찾는다는 말에 신씨는 "나도 혼자 살긴 하지만 여기 노인들도 전부 다르다"며 "설날에 손주 보고나서 집에 있기 답답해서 나오는 사람도 있지만 혼자 있기 심심해 나오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그는 "공원 뿐 아니라 산에 가도 마찬가지"라며 "돌아다닐땐 괜찮아 보여도 실상은 다들 외롭다"고 말했다.

8일 오후 2시쯤 종로공원 모습. / 사진=오석진 기자


오석진 기자 5ston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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