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먼저 가겠다"…설 명절 '부부 위기' 왜 반복되나[체크리스트]

홍유진 기자 2024. 2. 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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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눈치 보느라 '노심초사' 시부모 많다"
"며느리가 꼭 밥 퍼야 한다는데 명절이면 골병 드는 것 같다"

[편집자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거나 쟁점이 되는 예민한 현안을 점검하는 고정물입니다. 확인·점검 사항 목록인 '체크리스트'를 만들 듯, 우리 사회의 과제들을 꼼꼼히 살펴보겠습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홍유진 기자 = #결혼 1년 차 주모씨(31)는 최근 "이번 설에는 시댁 먼저 방문하니 추석에는 친정에 먼저 가겠다"고 선언했다가 남편과 한바탕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주씨는 "시댁에서 차례까지 지내고 가면 친척들은 다 떠나고 부모님만 적적하게 남아계신다"며 "왜 항상 시댁에 먼저 가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털어놨습니다.

설 명절은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정을 나누는 자리여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불화의 씨앗이 돼서 이맘때면 '위기의 부부'가 속출합니다. 명절 부담은 확실히 예전보다 줄었다고 하지만 20~30대 MZ부부들은 "여전히 가부장적 관습이 남았다"고 하소연합니다.

반면 노년 세대 중심으로 "명절 문화가 개선해 며느리 눈치 보는 시부모도 많은데 우리나라의 전통을 왜 구습으로만 치부하느냐"며 한탄하고 있습니다.

◇"'전 부치는 며느리' 옛말"vs"여전히 불공평한 명절"

예전보다 명절 문화가 개선된 것은 분명합니다. 구습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이 늘고 그 대신 개인적 휴식의 개념이 강해졌습니다. 명절마다 해외 여행객들로 북적거리는 공항도 그 방증입니다. '전 부치는 며느리'도 '옛날얘기'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그럼에도 매년 명절마다 남녀 갈등 또는 세대 갈등이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댁행'을 희생처럼 인식하는 것이 명절 갈등의 주된 원인입니다. 시댁에 가서 차례상 차리고, 설거지하고, 손님 대접하는 일이 며느리의 역할처럼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남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젠더(사회적 성별) 감수성이 발달하고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90년대생들 사이에서 이런 인식이 두드러집니다.

민족대명절 추석인 2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이 이용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2023.9.29/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결혼 3년 차 박모씨(30·여)는 '명절 가사 노동'에 "골병이 드는 것 같다"고 토로했습니다. 박씨는 "아버님이 제사상에 밥을 올릴 때 그 밥은 꼭 며느리가 퍼야 한다고 하더라"며 "그래야 자식들이 건강하게 잘 클 수 있다는데 그럼 며느리가 없는 집은 어떻게 하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친정엄마도 혼자 차례상을 준비하는데 매번 시댁에 먼저 가야 하니 도와주지 못해 엄마한테 너무 미안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중장년과 노년 세대도 'MZ 부부들'에 할 말이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 강남에 사는 60대 여성 A씨는 "아들 빼고 며느리만 명절 가사에 참여하라는 '간 큰' 시어머니는 요즘 드물 것"이라며 "지난 추석 때는 아들이 며느리보다 더 많은 전을 부쳤다"고 말했다. A씨는 "차례는 우리의 전통인데 그것을 모조리 잘못됐다고 하는 것이 맞는 건가"라고 반문했습니다.

명절마다 시댁에 먼저 가서 '불공평한 명절'을 겪는 기분이라는 주씨는 "연애할 때는 명절마다 번갈아 방문하기로 얘기를 했었는데 정작 결혼하고 나니 부모님이 별로 안 좋아하실 것 같다는 이유로 남편이 말을 바꿨다"며 "어쩔 수 없이 이번 설에는 시댁에 먼저 갈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설 전날 시댁에 가서 1박을 하고, 다음 날 아침 제사까지 지낸 뒤 오후쯤 친정으로 출발하는 스케줄"이라면서 "사소한 동선 문제 같지만 친정이 뒷전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털어놨습니다.

남편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명절에 희생하는 건 남성들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구모씨는 "명절마다 처가에 가면 장인어른을 운전해서 모시고 1박 2일로 낚시를 하러 간다"며 "장인어른이랑 단둘이 하루를 꼬박 보내는 게 썩 편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처가에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내년 결혼을 앞둔 최모씨(33)는 "시댁, 처가 중 어딜 먼저 가는 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지 모르겠다"며 "사실 사소한 문제인데 괜히 기 싸움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가부장제 문화 되돌아봐야…'명절 풍습 퇴색' 우려도

실제로 명절만 지나면 이혼이 급증해 '명절 이혼'이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입니다. 조수영 이혼 전문 변호사는 "그간 부부 사이에 참아왔던 것들이 명절을 기점으로 터지는 경우도 많다"며 "명절 이후에는 이혼 사건 의뢰가 50% 가까이 급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지금 젊은 세대는 서로 마음이 맞아 결혼하면 결혼 생활이 무난할 것으로 생각하고 이런 갈등을 예측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허 조사관은 "가부장적 문화가 개선되긴 했지만 며느리가 어느 정도의 희생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바뀌었는지는 성찰해 볼 문제"라고 짚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소모적인 갈등으로 인해 명절 풍습이 퇴색하는 것을 우려합니다. 남녀 갈등이나 세대 갈등으로 비화할 경우 명절의 본래 취지에서도 벗어날뿐더러 우리 고유의 문화가 점차 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2016.2.5/뉴스1 ⓒ News1 최창호 기자

최영갑 성균관유도회 회장은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명절 때문에 가족 불화가 생기면 차라리 명절을 아예 지내지 않는 편이 낫다"며 "차례, 제사 등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가족과 한 마디라도 더 나누는 것이 유교 정신에도 부합한다"고 말했습니다. 성균관유도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유교 단체 중 하나입니다.

최 회장은 "전통에는 항상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시대착오적인 부분은 바꿔나가야 한다"면서도 "세대, 성별 간에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는 마음이 있어야 전통도 지키면서 현대적인 것도 계승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cym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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