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치형의 과학 언저리] 세월호가 이태원에 주는 교훈
전치형│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주간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참사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자, 수사와 조사는 그 목적이 다르므로 별도의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진상을 규명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참사에서 범죄행위를 한 인물을 찾아 처벌하려는 수사와 달리, 조사는 참사를 유발한 깊은 원인을 밝히는 일이어서 독립적인 위원회에서 전문가들이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사를 제대로 못 했다면 당연히 특별법을 통한 조사가 필요하겠고, 수사를 다 했다고 하더라도 조사의 필요는 줄지 않는다.
‘과학 언저리’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지면에서 이태원참사특별법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조사와 수사의 차이에 더해, 조사와 과학연구의 유사점에 관해서도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조사는 법적 처벌만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수사와 다르고, 참사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연구와 비슷하다. 대형 참사가 새로운 지식의 생산을 요청하는 것은 단순히 기존 이론을 적용하거나 기존 사례와 비교해서는 그 전모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학문 분과가 참사를 모두 담아낼 수 없기에, 진상규명은 다양한 연구자의 협력을 통해 과거에 없던 문제를 발굴하고 답을 찾아가는 융합적 연구활동이라고 여길 만하다.
참사 조사를 지식을 생산하는 과학연구에 비유하는 것이 반드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대의에 도움 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연구에서는 우리가 원했던 지식을 얻지 못할 수도, 그렇게 얻은 지식이 우리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검증된 수단을 모두 동원하여 얻은 사실의 조각들을 겨우 끼워 맞춰봤더니,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지식이 펼쳐지는 상황도 감당해야 한다. 참사와 관련해 감옥에 가야 할 사람이 100명이라고 밝혀질 수도 있지만, 그럴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이것이 수사였다면 전자는 성공, 후자는 실패라고 하겠지만, 연구에서는 후자를 통해서도 새로운 지식을 얻은 것이다. 한명도 감옥에 갈 만한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데 그토록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해내는 것, 그것도 참사 조사의 임무다.
참사 조사와 과학연구를 굳이 연결하면서 특히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과학연구진이 일종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한 팀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과학자들은 어떤 문제를 풀자는 쪽과 풀지 말자는 쪽이 함께 팀을 꾸려 실험을 하거나 논문을 쓰지 않는다.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지에 관해 인식을 같이하고, 그것을 풀기 위한 방법을 큰 틀에서 합의한 사람들, 무엇보다 문제를 함께 풀어나갈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 연구 과제를 하는 것이다. 이른바 같은 패러다임 안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이어야 지식 생산을 함께 할 수 있다. 기간과 예산이 정해진 과제가 시작된 뒤에도 서로의 패러다임이 어긋나 있다면 그 연구는 실패할 것이 뻔하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나섰던 조사위원회들은 참사 조사의 패러다임을 공유하는 이들로 구성되지 않았고, 이것이 결국 조사의 동력을 떨어뜨렸다. 10명 내외 조사위원을 여당, 야당, 국회의장 등이 나누어 추천하는 제도는 참사를 전혀 다르게 인식하는 사람들을 한방으로 밀어 넣는다. 진실을 밝히려면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이 질문과 저 질문은 어떻게 연결되는지, 심지어 진상규명이 왜 필요한지도 합의한 적이 없는 이들은 여야 대립 구도를 그대로 회의실로 끌고 들어온다. 싸울 준비를 하고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이토록 중요한 지식 생산의 과업을 맡겨도 괜찮을까. 노벨상급 연구 책임자도 이런 연구를 성공시킬 수는 없다.
여야가 모두 능력을 인정하고 신망 있는 사람을 찾아 조사위원장으로 합의하여 추천하고, 그 위원장이 자신과 패러다임을 공유하는 전문가들, 핵심 질문을 함께 설정하고 그에 답하기 위해 역할을 분담하되 한 팀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이들로 위원회를 꾸리게 하면 어떨까. 아마 정치적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제안일 것이다. 그러나 이태원참사특별법이 끝내 무산되든 혹은 다행히 새 기회가 마련되든, 수사와 조사와 연구 사이에서 참사의 진상규명 방식에 관한 고민은 계속돼야 한다. 특별법을 제정하고 조사위원회를 만들어놓았다고 해서 진상이 저절로 드러나지는 않는다는 것, 세월호가 이태원에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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