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민의 사진지문] 간사한 마음
필요한 것처럼 느껴서일까
# S전자에서 새로운 스마트폰을 출시했습니다. 사전 예약을 하면 특별한 혜택을 준다고 합니다. 약정 끝난 지 오래된 제 휴대전화를 자꾸 만지작거립니다. '아직 잘되는데 굳이'란 생각과는 달리 눈길이 갑니다. 짬날 때마다 슬쩍슬쩍 검색해 봅니다. 그래서 혜택이 뭐라고? 얼마라고 그랬지?
# 아차.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전화를 받다가 손이 미끄러졌을 뿐입니다. 휴대전화는 때마침 정확하게 액정 부분으로 낙하했습니다. 화면을 켜봅니다. 상단에 하얗게 빛나는 한 줄이 생겼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땅따먹기처럼 조금씩 화면을 점령해 갑니다. 저녁이 되자 액정은 활동을 멈췄습니다. 화면 전체가 끊임없이 반짝이며 마치 SOS 신호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점점 생명을 잃어갑니다.
# 액정 교체 비용을 알아보니 만만치 않습니다. 천재일우. 그래, 이건 하늘이 준 기회야! 신제품으로 바꾸라는 뜻인가 싶습니다. 액정 교체 비용을 아끼면 그만큼 싸지는 거니 얼마나 이득인가요. 곧바로 사전 예약 페이지에 접속합니다. 모델을 알아봅니다. 사진을 자주 찍으니까 카메라가 중요한데. 상위모델이 좋겠구나. 용량은 큰 게 좋겠지. 어떤 색상이 좋으려나. 케이스는 어떤 게 있나. 보험도 들어야겠지. 맞습니다. 저는 분명 신이 났었습니다.
#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달려온 종착지는 결제창. 200만 원! 조금 안 된 금액이 모니터에서 깜빡입니다. 퍼뜩 정신을 차렸습니다. 수십만 원 아끼려다 수백만 원을 쓸 뻔했습니다. 그런데도 결제창의 엑스 버튼을 누르기까지 쉽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용량 두 배가 무료라는데. 무선 이어폰 쿠폰도 준다는데. 카메라도 업그레이드했다는데. 눈을 질끈 감고 삭제를 누릅니다.
# 사람 마음 참 간사합니다. 오전까지도 잘 쓰고 있던 휴대전화입니다. 수리를 결심합니다. 교체 비용은 들었지만, 스마트폰은 새것 같은 중고가 됐습니다. 앞으로 또 몇 년은 함께할 수 있을 겁니다. 문득 생각해 봅니다. 그동안 물건이 정말 필요해서 샀던 건지, 필요한 것처럼 느껴져 샀는지 말입니다. 다행히 오늘은 마케팅의 유혹에 가까스로 넘어가지 않은 것 같네요. 스스로에게 작은 칭찬을 해줍니다.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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