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바이든을 바이든?[뉴스레터 점선면]

허남설 기자 2024. 2. 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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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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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뉴욕타임스(NYT)가 오는 11월 미국 대선의 5가지 변수를 꼽으면서 그 첫번째로 UN대사를 지낸 여성 정치인, 니키 헤일리를 지목했습니다. 헤일리는 공화당 대통령 예비후보로 뛰고 있죠. 물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경선에서 잇따라 압승한 현시점에선 NYT가 약간 머쓱할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어떤 여론조사에서는 헤일리와 트럼프의 지지율이 비등했어요. 그러자 공화당 예비후보들이 일제히 헤일리를 난타하기 시작했는데, 트럼프는 헤일리를 “새대가리(birdbrain)”라고 비난했어요. 사람은 참, 변하지 않습니다.

그즈음 나온 다른 비방 중 하나가 “3cm 힐을 신은 딕 체니(전 부통령)”였어요. 기업인 출신 후보 비벡 라마스와미가 한 말이었습니다. 그가 여성을 향한 공격을 노렸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딕 체니일까요?

브래드 피트가 제작한 <바이스>(2018)란 영화가 있습니다. 딕 체니의 일생을 그린 블랙코미디물입니다. 이 영화는 딕 체니를 막후 최고 실세이자 권모술수의 대가로 묘사합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애송이 취급하며 뒤에서 조종해 미국을 이라크 전쟁으로 마구 몰아넣죠.

이 공화당의 거물이 지금은 누군가를 비아냥댈 때 쓰는 소재로 전락했습니다. 20여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오늘 점선면은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을 조명하며 그 맥락을 풀어보겠습니다. 이라크 전쟁을 벌이던 그때의 미국은 지금의 미국이 아니란 이야기입니다. 손제민 논설위원과 함께 준비했어요.

이번에도 바이든 대 트럼프

·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 1월23일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을 평가하며 “사실상 모든 게 끝난 것으로 보인다”고 썼습니다.

· 이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에서 경쟁자인 니키 헤일리 전 UN대사를 11%포인트 넘는 차이로 눌렀습니다.

· 트럼프는 이미 첫 경선지인 아이오와주 코커스*에서도 과반(51%)을 득표하며 여유롭게 1등을 차지했어요. WP가 ‘모든 게 끝났다’고 전망한 이유예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UPI연합뉴스·AP연합뉴스

· 민주당 대선 후보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사실상 유일합니다. 바이든과 트럼프, 2020년 대선 이후 4년 만에 다시 붙을 가능성이 매우 커졌어요.

· 그런데 지금 바이든은 역대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 중 한 사람입니다.** 경향신문은 뉴햄프셔 경선 결과가 나온 다음 사설에서 “트럼프 재집권을 대비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코커스와 프라이머리

코커스는 당원들만, 프라이머리는 비당원 시민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선거입니다. 코커스와 프라이머리에서 연달아 트럼프가 승리했다는 건 그가 공화당원뿐만 아니라 전체 여론에서도 상당히 큰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인기 없는 바이든

미국 갤럽이 조사한 바이든의 최신 국정 지지율(Job Approval Ratings)은 지난 1월 41%입니다. 조사 역사상 최하위 수준입니다. 임기 4년 차 1월에 조사한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트럼프 47%, 오바마 45%, 부시 55%, 클린턴 47%였습니다.

🔷 트럼프는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승승장구하지만, 바이든은 역대 최하위 인기를 보이며 정권 교체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요.

1. 바이든, 왜 이렇게 인기 없을까?

바이든은 2020년 대선 승리 당시 큰 기대를 받았어요. 그해 대선은 1900년 이후 최고 투표율(66.8%)을 기록했고, 바이든이 받은 7200만 표 역시 역대 최다 득표수였죠. 이 결과에 대한 경향신문 사설 제목은 <‘탈트럼프’ 시대 닻 오르다>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3년 동안 많은 미국민이 바이든을 등졌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호멜푸드 홈페이지(hormelfoods.com)

‘스팸’이 잘 팔렸습니다. 짭짤한 햄, 그거 맞습니다. 바이든 재임 중 물가가 엄청나게 오르면서(=인플레이션), 슈퍼마켓에서 값싼 스팸 통조림을 찾는 미국민도 엄청나게 늘었어요. 물가 상승률이 4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미국 물가가 무섭게 오를 때, 바이든의 국정 지지율은 곤두박질쳤습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좀 달라요. 물가 상승 폭은 여전히 작지 않지만, 그래도 2022년을 지나며 진정될 기미를 보였죠. 다른 지표는 오히려 좋습니다. 미국 증시는 불을 뿜고요, 실업률은 반세기 최저 수준입니다. 미국은 지금 소녀 ‘골디락스’가 다시 적당히 따뜻한 수프로 배를 채운 뒤 안락한 침대에서 잠들길 기대하고 있어요.*

문제는 바이든입니다. 그는 소녀가 잠들 때쯤 집을 떠나야 할지도 모릅니다. 경제는 뚜렷한 회복세를 보였지만, 바이든의 국정 지지율은 그렇지 않았어요. 2023년 내내 40% 근처에서 맴돌았습니다. 유명한 선거 슬로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에서 ‘경제’ 말고 다른 낱말을 넣어야 할 때입니다. 바이든의 추락에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골디락스

영국 동화 <곰 세 마리 이야기>에서 골디락스라는 소녀는 숲속을 거닐다 곰이 사는 오두막집에 들어갑니다. 마침 배고프던 차에 식탁에서 수프 세 그릇을 발견하는데, 골디락스는 이중 너무 뜨겁거나 차갑지 않고 적당히 따뜻한 수프를 골라 배불리 먹고 잠이 듭니다. 경제 분야에서 골디락스란 물가 등 지표가 안정적인 상태를 가리킵니다.

2. 바이든 집권기는 ‘트럼프 2기’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손제민 논설위원은 바이든의 백악관에서 트럼프의 메아리를 들었습니다. 트럼프는 집권기 내내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쳤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이른바 ‘미국 우선주의’입니다. 미국민의 박탈감 비슷한 감정을 자극한 슬로건이었어요. 미국이 세계의 맏형 노릇을 한답시고 희생만 했다, 이제 그럴 일 없다는 선언입니다.

트럼프는 정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국을 선보였습니다. 단적인 예를 들면, 트럼프는 2016년 대선 당시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 비용 100%를 부담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트럼프에게 동북아시아 질서에서 주한미군이 갖는 위상이나 동맹·우방 같은 개념은 별 의미가 없는 듯했죠.

이 기조가 바이든 시대에 들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이야깁니다. 손 논설위원은 “바이든은 미국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했다. 교역국을 상대로 관세를 올리고,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동맹국은 쥐어짜는 행태가 바이든 집권기에도 비록 좀 더 세련됐을지언정 그대로 반복됐다”고 평가해요.

바이든 행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제정해 미국 내 공장에서 생산한 전기차에만 세금을 깎고, 중국산 배터리를 쓴 전기차에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세금을 물렸어요. 우크라이나의 거듭된 호소에도 파병 등 군사적 개입에는 일찌감치 선을 그었습니다. 트럼프는 국경에 장벽을 치며 반이민 정책을 노골적으로 폈는데, 심지어 이 부분에서도 바이든이 트럼프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러면서도 팔레스타인에서 전쟁을 키워가는 이스라엘만큼은 일관되게 지지했죠. 이 또한 바이든과 트럼프의 교집합입니다.

다시 말해 바이든은 트럼프와 다른 색채를 선명하게 보여주지 못했어요. 이 와중에 물가는 역대급으로 치솟았으니, 중도층과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 일부가 바이든에게서 마음이 떠난 건 자연스럽습니다.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대선에서 바이든을 찍겠다고 한 응답자 중 59%는 ‘트럼프에 대한 반대’를 그 이유로 꼽았습니다. 대안이 없을 뿐, 바이든은 그 자체로 미국민을 투표소로 이끌 매력적인 후보가 아닌 것이죠.

3. “왜 트럼프냐고? 샌더스를 믿었거든”

‘그래도 트럼프는 아니지 않아?’ 이쯤에서 이런 생각이 들 만도 합니다. 트럼프는 이번 선거전에서도 “모든 수입품에 10% 관세를 물리겠다”, “이민자가 미국의 피를 오염시켰다” 같은 말을 내뱉었어요. 괴짜에 허풍쟁이를 넘어 폭군의 모습마저 보입니다. 그런데 거친 언사를 좀 빼고 보면, 사실 꽤 비슷한 이야기를 해온 의외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 진보진영의 대표주자, 버니 샌더스입니다.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 UPI연합뉴스

김유진 워싱턴 특파원은 공화당 뉴햄프셔 경선을 취재하고 그 후기를 썼습니다. 제목은 <샌더스 지지자는 왜 트럼프를 지지하게 됐나>. 이 기사에 나오는 트럼프 지지자인 72세 드레이는 “내가 원래 누구를 지지했을 것 같습니까? 버니 샌더스”라고 말합니다. 김유진 특파원은 “드레이와 같은 이유로 트럼프를 선택하겠다는 미국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났다. 이들은 경제 상황, 급격한 에너지 전환, ‘불법 이민자’ 증가 등에서 ‘바이든은 철저히 실패했다’고 말했다”고 썼어요.

샌더스는 2016년과 2020년 미국 대선에 나서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최저임금 인상 등 진보적 공약을 내걸었죠. 극우적인 트럼프와는 만나는 지점이 없어 보이는데, 사실 이들이 기대는 대중적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트럼프는 일본이나 한국 같은 동아시아의 동맹국들이 미국의 방위력에 무임승차한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샌더스는 미국이 일본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체결해 대기업의 배만 불리려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안보건 경제건, 바깥 세계와 담을 쌓자는 것이다. (…) 주한미군을 철수하거나 방위분담금을 전부 대한민국이 지불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발언을 보며 한국인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미국은 국내에서 소비되는 공산품을 중국이나 그 밖의 저임금 국가가 아닌 미국 내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샌더스의 말은 어떠한가.”

트럼프는 고립주의 정서를 한껏 자극하는 언어를 발신해 미국 노동계급을 휘어잡았습니다.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의 공화당 지지율은 2010년 대비 2020년 45%에서 57%로 올랐습니다. 히스패닉(23→36%), 흑인(5→12%) 등 인종을 가리지 않고 공화당을 바라보는 노동계급이 늘었어요. 손제민 논설위원은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가 소수자 혐오 발언을 내고 있다는 걸 알지만, 기성 체제를 흔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 또한 갖고 있다”며 “이러한 지지는 결국 자식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더 나을 가능성이 없다는 절망감에서 비롯된다”고 말했습니다.

🔷 미국 정치 지형이 아예 ‘마가(MAGA)’로 기운 상황이 바이든이 임기 내내 맥을 추지 못하고 트럼프가 다시 득세한 원인이라고 볼 수 있어요.

1. 미국 없는 세계, 백 투 더 1930s

바이든은 2020년 11월 대선 승리 직후 유럽 동맹국 정상들과 통화하면서 호기롭게 말했다고 합니다. “미국이 돌아왔다.” 많은 세계 시민들이 기다린 말이었죠.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이미 그때 미국의 귀환은 불가능했는지도 모르겠어요.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은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 직후 이렇게 썼습니다.

“트럼프를 포퓰리스트라고 딱지 붙일 수 있겠지만, 그 뒤에 더 큰 불편한 진실은 그래서 은폐된다. 오늘날의 국가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사람들의 근본적인 불신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 새로 바이든 정권이 출범한다고 해도 새로운 국가로 탈바꿈하지 않는 한 트럼프 세력의 발호는 계속될 것이다.”

그로부터 약 두 달 뒤, 세계는 시위대가 미국 국회의사당을 점거하는 장면을 지켜봤습니다. 그들은 대선 결과가 조작됐다고 믿는 트럼프 지지자들이었어요. 일시적인 소동이었을까요? 아닙니다. 2022년 말 뉴스위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2020년 대선이 조작됐다고 믿는 사람이 40%에 달했습니다. 신뢰받지 못하는 체제, 이것은 명백한 위기입니다. 미국은 고립주의 강화로 밖에서 신뢰를 잃고, 또 민주주의 후퇴로 안에서 무너지고 있습니다.

2021년 1월6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 지지자들이 워싱턴 연방의회의사당 담장을 넘는 장면. UPI연합뉴스

이제 우리는 ‘미국 없는 세계’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손제민 논설위원은 지금의 미국에서 1930년대의 미국을 떠올리며 “불길한 느낌이 든다”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미국은 1차 세계대전(1914~1918)에 참전하며 ‘세계의 경찰’로서 처음 존재감을 보였습니다. 그 후유증은 작지 않았어요. 전쟁 물자를 공급하며 성장한 경제의 거품이 꺼졌고, 참전 후 돌아온 병사들은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전후 질서 안정을 위해 국제연맹(UN의 전신) 설립에 앞장섰지만, 정작 경제난 때문에 내부 고립주의가 강화되면서 참여할 수 없었죠.

요즘 미국을 휩쓰는 고립주의는 그 기원을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2001~2011)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라크의 후세인 등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지목하며 일으킨, 그야말로 세계의 경찰을 노골적으로 자처한 전쟁이었어요. 이 지독한 개입주의의 끝에는 2008년 금융위기가 있었고, 피로해진 미국민들은 지금 다시 고립주의를 택하고 있습니다.

20세기엔 1차 세계대전→대공황, 21세기엔 아프간·이라크 전쟁→금융위기…. 이 패턴의 끝에는 무엇이 올까요? 20세기에는 유럽 열강도, 미국도 없는 세계에서 아돌프 히틀러 같은 포퓰리스트들이 활개 쳤고, 그 결과는 2차 세계대전(1939~1945년)이었습니다.

2. 핵무장론을 경시할 수 없는 미래

“그는 평양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하려고 했는데, 두번째 임기 초기에 다시 시도할 수 있다.”

트럼프 집권기에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이 최근 자신의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 서문을 다시 쓰며 한 말입니다. ‘그’는 물론 트럼프입니다. 볼턴은 “북한 핵 프로그램에 대한 무모한 협상(A reckless deal)” 가능성을 거론했습니다. ‘무모한 협상’이란 사실상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진행하는 협상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라면 비핵화 목표를 포기할 수 있다는 게 볼턴의 주장이죠.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도 2023년 12월 트럼프가 북한 핵 동결(핵을 보유하되 핵무기 개발은 중단하는 것)을 대가로 경제 제재를 완화하는 정책을 검토한다고 보도했습니다. 트럼프는 언제나처럼 “가짜뉴스”라고 대응하면서도 이 기사에 사실도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단 하나 정확한 것은 내가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과 잘 지낸다는 것.” 김유진 특파원은 이 내용을 전하는 기사에서 이렇게 경고했어요.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는 상황은 한반도 주변 안보 환경에 중대한 파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어 현실성이 떨어진다. 오히려 한국, 일본 등에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자체 핵무장론이 더욱 고개를 들 수 있다.”

그간 핵무장을 주장했던 한국 정치인들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대중적 인기와는 거리가 먼 정치인들이 관심 좀 받아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그려지나요? 트럼프 시대에는 그들을 무시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트럼프는 2016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북한이 고개를 쳐들 때마다 미국은 ‘뭔가 좀 해달라’는 요청을 받지만,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 될 수 없다”며 “미국이 계속 약해진다면 한국과 일본은 핵무장을 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이 핵을 갖는 게 우리에게 꼭 나쁜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죠.

2018년 6월12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와 김정은의 ‘밀월’은 윤석열 정부가 외교의 틀로 상정한 ‘한국·미국·일본 대 북한·중국·러시아’ 구도를 파괴하는 일이 될 겁니다. 사실 여기까지 상상할 필요도 없어요. 윤석열 정부는 이 같은 외교를 ‘자유주의’라는 이념으로 포장했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IRA에 서명했을 때 일찌감치 깨쳐야 했습니다. 그 자유진영의 리더 격인 미국이 이념엔 도통 관심이 없고 실리만 추구하는 국가가 됐다는 사실을 말이죠.

요즘 윤석열 정부는 트럼프 재집권을 대비해 미국과 방위비 분담 협상을 서둘러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런 대응은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습니다. 필요하면 용기를 내 수술을 해야 합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위험 분산을 위해 중국과의 외교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고, 북한과의 군사 충돌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대화를 모색해야 한다”며 “여야의 외교안보 대화가 절실하지만, 지금 정부에 그것을 기대하기 쉽지 않아 우려스럽다”고 했습니다. 정말 걱정입니다.

🔷 미국이 내부 위기를 다스리며 빗장을 걸 때 세계 질서는 분출하는 핵무장론 등으로 요동칠 텐데, 우리의 외교적 대응은 무척 경색된 듯해요.

🔷 트럼프는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승승장구하지만, 바이든은 역대 최하위 인기를 보이며 정권 교체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요.

🔷 미국 정치 지형이 아예 ‘마가(MAGA)’로 기운 상황이 바이든이 임기 내내 맥을 추지 못하고 트럼프가 다시 득세한 원인이라고 볼 수 있어요.

🔷 미국이 내부 위기를 다스리며 빗장을 걸 때 세계 질서는 분출하는 핵무장론 등으로 요동칠 텐데, 우리의 외교적 대응은 무척 경색된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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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설 기자 nsh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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