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정부·기업이 '딴우물도 파세요' 장려하는 이유는?
노동 이동 촉진 위한 '부업' 장려에
2018년 취업 규칙 개정 원칙 허용
종신고용 문화 탈피 근로방식 개혁
사내 부업→회사간 부업 인재 교환
일본에서 2018년은 ‘부업(副業) 원년’으로 불린다. 아베 신조 전 총리 시절 ‘일하는 방식 개혁’을 내걸고 후생노동성이 취업규칙을 개정, 부업을 원칙적으로 용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기밀 유출이나 과로 위험, 과도한 이직 분위기 형성 등에 대한 우려로 초반 많은 기업이 난색을 보였지만, 게이단렌(일본의 경제단체 연합회) 회원사의 부업 허용 비율은 규칙 개정 전(2017년) 28.7%에서 2022년 53%대로 껑충 뛰었다. 철저한 연공서열과 이에 입각한 종신 고용을 강조해 온 기존 일본에선 어쩌다 정부와 기업이 나서 ‘한 우물’ 아닌 ‘딴 우물’과 ‘양다리’를 장려하게 된 것일까.
최근 일본 대기업 소니그룹과 히타치제작소가 직원 가운데 희망자를 받아 상대 회사에서 일하며 필요한 직무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색다른 시도에 나서기로 해 화제를 모았다. 일명 ‘상호 부업(副業)’이다. 고령화로 인한 심각한 인력 부족 문제와 급속한 기술 발전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이 일종의 ‘직원 맞교환’을 통한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소니와 히타치는 올해 실험적으로 ‘상호 교차 부업’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3개월간 소수 인력을 대상으로 시행한 뒤 효과를 판단해 본격 도입 및 확대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회사별로 희망자를 받아 상대 회사의 중요 프로젝트에 참여시키는 방식부터 시행한다. 희망자는 자신이 소속된 회사에서 통상 근로시간만큼 일하고 급여도 받는다. 이와 별도로 주당 3시간 상대 회사에서 일하고 그에 해당하는 급여를 받는다. 일종의 ‘부업’ 개념이다. 일본에서는 ‘출향(出向)’이라는 이름으로 자회사나 관계사로 직원을 보내 해당 업체의 사용자와 고용계약을 맺고 일정 기간 근무하게 하는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본업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소니와 히타치 간 상호 부업과는 큰 차이가 있다.
소니는 전자와 반도체 신규 사업 부문에 히타치의 엔지니어와 기획자를 받을 계획이다. 이들은 메타버스를 활용한 서비스 개발, 인공지능(AI)과 이미지센서를 연계한 제품 개발에 참여한다. 히타치에서는 소니 개발자들에게 AI나 메타버스 기술을 산업 현장에 어떻게 적용할지 검토하는 일을 맡긴다. 각자가 다뤄보지 못한 분야를 경험함으로써 기존 업무나 단순 훈련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지식과 역량을 쌓게 된다. 이를 위해 양 사는 상대 회사 직원과 업무 위탁계약을 맺고 급여를 지급한다. 소니 관계자는 “외부 인력의 활약을 우리 회사의 혁신 창출로도 연결하고 싶다”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소니와 히타치 외에도 기린홀딩스와 메이지홀딩스, 일본 담배산업(JT) 등 27개 기업이 올 1월부터 단계적으로 상호 부업에 나섰다.
이런 시도는 일본의 심각한 인력 부족 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다.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추계에 따르면 15~64세에 해당하는 일본의 생산연령인구는 2020년 7509만 명에서 2040년 1300만 명이나 줄어든다. 한 민간 연구소의 수급 시뮬레이션에서는 2040년 약 1100만 명의 노동력이 부족한 ‘노동 공급 제약 사회’가 도래한다는 전망도 나왔다. 인력 확보와 육성에서 한발 더 나아가 기존 인력 활용과 재교육 방안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일본 정부가 아베 신조 전 총리 때부터 ‘일하는 방식 개혁’을 내걸고 부업을 장려하는 한편 뿌리 깊은 종신 고용 및 연공서열 등 경직된 기업 문화 타파에 나선 이유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18년 취업규칙을 개정해 부업을 원칙적으로 용인했고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부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기시다 후미오 현 정권은 이를 ‘새로운 자본주의’로 이어받아 직장인 재학습(리스킬링) 및 전직 지원 등에 힘을 싣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2022년 말 새해 주요 중점 정책으로 사람에 대한 투자 및 성장 산업으로의 노동 이동 촉진을 강조하며 개인의 리스킬링 등에 5년간 1조 엔(약 9조 원)의 예산을 확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에는 ‘경제 재정 운영과 개혁 기본방침’을 통해 ▶리스킬링을 통한 능력 향상 지원 ▶기업 실태에 따른 직무급 도입 ▶성장 분야로의 노동 이동 원활화의 3가지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삼위일체 노동시장 개혁’을 제시했다. 리스킬링과 노동이동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부업을 장려하고 있다.
기업들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현장에 적용해 인력 문제에 대응해나가는 중이다. 미쓰비시상사는 지난해 2월 ‘듀얼 커리어 제도’를 도입해 자신이 소속된 부서 외 업무를 전체 근로시간의 최대 15% 할 수 있도록 했다. JAL항공은 ‘잡 포스팅’ 시스템을 둬 승무원 이외의 경험을 쌓고 싶은 직원에게 사내 부업 방식으로 지상직 업무를 배치한다.
다만, 정착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부업을 용인하는 기업은 늘고 있지만, 부업에 나서는 정직원은 상대적으로 적다. 인재정보기업 파솔종합연구소에 따르면 사원의 부업을 서용하는 기업 비율은 지난해 10월 기준 60%에 달했지만, 부업하고 있는 정직원 비율은 7%에 머물렀다. 같은 조사에서 부업 의향을 묻자 ‘있다’는 응답은 40%나 됐으나 ‘외부 부업 인력을 수용하는 기업이 적다(24%)’는 게 걸림돌로 지적됐다. 수요자와 공급자 간 미스매치가 발생하는 것이다. 부업에 대한 기업의 기대와 근로자의 목적이 어긋나는 부분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구직사이트 마이나비가 지난해 1~7월 중도 채용을 실시한 기업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부업·겸업제도를 도입한 이유(복수)로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이 ‘종업원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37.3%)였다. 직원이 본업 외 경험도 쌓아 성장하는 ‘인재육성·채용강화·이직방지’의 관점에 무게를 둔 것이다. 반면, 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가 근로자를 대상으로 부업 이유를 묻자 ‘수입을 늘리고 싶다’, ‘한 가지 직업만으로는 생활이 힘들다’ 등이 상위를 차지했다. 파솔종합연구원은 “노동력 부족 상황에서 부업 희망자와 기업을 매칭하는 인력 서비스 및 지원 기관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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