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저출산 기사 넘칠수록 저출산 오해가 더 쌓인다
[미디어오늘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모처럼 여야가 같은 목소리를 냈다. 여당도 야당도 인구부를 신설하자는 총선 공약을 동시에 발표했다. 문제는 여야가 싸운다고 꼭 나쁜 것만은 아니고, 여야가 합의했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니란데 있다.
저출산 관련된 기사는 거의 매일 언론에 나온다. 그러나 홍수가 나면 가장 부족한 것은 깨끗한 물이라고 한다. 저출산 관련 기사가 넘칠수록 오히려 저출산 관련 오해가 더 쌓인다. 저출산 관련된 대표적 신화와 진실을 따져보자.
첫째, 우리나라는 저출산 관련 예산을 많이 쓴다? 언론에서 저출산 예산을 꾸미는 수식어는 '천문학'이다. 천문학적 예산을 저출산에 썼다며, 무려 380조 원을 썼다는 기사는 종종 나온다. 그러나 우리나라 저출산 관련 예산은 OECD 선진국 대비 많지 않다. 일단 저출산 예산 380조 원의 정체를 알아보자.
이는 지난 2021년 감사원의 '저출산 고령화 대책 감사결과'에서 나온 숫자다. 이는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법 제정 이후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저출산 고령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예산액을 의미한다.
시간은 흘러 지금은 2024년이다. 그러나 여전히 언론의 시계는 380조 원에서 멈춰있다. 2023년에도 50조 원은 지출되었다. 2023년까지는 520조 원이 훌쩍 넘는다. 매년 발표되는 저출산 예산을 단순 합산하여 업데이트하는 정도의 성실함이 아쉽다. 특히, 우리나라 저출산 관련 지출이 천문학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면, 15년간 숫자를 더할 것이 아니라 18년간 숫자를 더하는 것이 더 좋겠다.
우리나라 저출산 예산은 다른 OECD 선진국대비 그리 크지 않다. OECD가 제공하는 통계에 가족지원(family benefit) 분야가 있다. 우리나라는 저출산고령화위원회가 생기기 직전인 2005년까지는 GDP 대비 0.2% 수준에 머물렀다. 이후 관련 예산이 크게 증가했지만 여전히 OECD 평균 가족지원 관련 지출액에 크게 못미친다.
아동수당, 양육수당, 보육 서비스, 아동보호 서비스 등으로 지출하는 금액을 의미하는 가족지원 분야에 우리나라는 GDP 대비 1.4%를 쓴다. 그러나 OECD 국가는 평균 GDP 대비 2.1%를 지출한다. 저출산을 극복한 나라로 칭송받는 프랑스는 가족지원 예산에 GDP 대비 2.7%를 쓴다. 결국 우리나라가 저출산 예산을 천문학적으로 쓰는데도 출산율이 늘지 않는다는 많은 언론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둘째, 출산율을 높일 수 있도록 저출산 예산을 효과적으로 지출해야 한다? 저출산관련 예산을 지출해도 출산율은 늘기는커녕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380조 원이든 520조 원이든 돈을 썼는데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았다면 반성하고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저출산고령화위원회도 실패를 인정하고 그간의 정책을 전환했다.
그런데 그 전환된 정책은 '출산율을 더 높일 수 있는 더 효과적인 저출산 정책을 만들자'가 아니다. 제1차, 제2차 저출산 정책이 보다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을 만들고자 했다면 제3차, 제4차 저출산 정책은 오히려 직접적으로 출산율을 높이는 대책보다는 저출산 문제는 “사회, 경제, 구조, 가치관의 총체적 결과로써의 근본적이고 사회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개인을 노동력, 생산력의 관점에 기반한 국가 발전 전략에서 개인의 삶의 질 제고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바람직한 변화다. 인간은, 그리고 여성은 국가가 돈을 준다고 바로 애를 낳는 존재가 아니다. “정부야 아무리 나대봐야 내가 결혼하나 고양이랑 살지”라는 말이 이를 잘 대변한다. 그 결과 제4차 저출산고령화위원회는 “개인의 삶의 질 향상, 성평등하고 공정한 사회, 인구변화 대응 사회 혁신”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직접적인 출산율 제고 대책에서 간접적인 사회 분위기 개선 대응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저출산고령화위원회의 바람직한 변화를 아직 우리나라 언론은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성범죄 방지가 저출산 대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성범죄 방지 뿐만아니라 인권 증진을 위한 간접적이고 근본적인 대응 방안이 저출산 사회를 위해 더욱 필요하다.
과거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시절 성인지 예산 30조 원의 일부만 떼어내도 북한의 위협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성인지 예산은 성인지를 위해 지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예산사업을 성인지적 관점으로 분석하는 예산이라는 점에서 잘못된 말이다.
마찬가지로 저출산 예산 520조 원은 출산율을 직접적으로 높이는 예산이 아니다. 성범죄 방지를 위한 예산뿐만 아니라 아동학대를 방지하고 부족한 군 인력을 대체하기 위한 무기현대화 사업도 포함되어 있다.
아동학대를 방지하고 무기를 현대화한다고 출산율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동학대는 방지해야 하고 무기는 현대화해야 한다. 그리고 인구구조 변화 대응에 필요한 전체 예산을 인지하기 위해 누군가는 전체 예산을 집계해야할 필요가 있다.
즉, 저출산 예산에는 출산율을 직접적으로 높이기 위한 예산뿐만 아니라 인구구조 전체 변화에 대응하고 이를 인지하기 위한 예산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출산 예산금액을 태어난 아이수로 나누어서 1인당 1억 원이 넘는다는 자극적인 기사는 지양해야 한다.
우리는 언론에게 잘못된 정부 정책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기대한다. 그러나 지난 2020년에 발표한 제4차 저출산고령화위원회의 올바른 정책 방향조차 쫓아가지 못하고 이미 저출산고령화위원회가 폐기한 직접적 저출산 대책 예산이 필요하다고 정부 정책을 비난하는 언론을 보니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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