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에 사라진 동료들…소방관 40%, 정신적 후유증 호소

홍다영 기자 2024. 2. 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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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공백 부담에 심리 치료받기 어려워
트라우마 쌓였는데 참사 현장 계속 출동
회복 더딜 수밖에…상담 지원 확대해야

“소방관들은 위험한 상황에서 동료나 시민의 사망을 목격하고 트라우마가 생깁니다. 잊을 만하면 사고가 발생하니… 감정적으로 힘들어 술에 의존하는 분도 있습니다. 어느 순간 퇴직을 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까지 발생합니다.”

김길중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소방노조) 사무처장은 소방관들이 겪는 정신적 후유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수치로도 나타난다. 9일 소방청에 따르면 소방관 10명 중 4명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나 우울 등을 호소한다. 검은 연기와 뻘건 불길이 치솟는 화재 현장에서 사명감으로 일하지만, 정신적 후유증을 피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소방관이 충분히 치료받고 회복하도록 인력을 늘리고 마음 건강을 위한 소방수련원 등 등 심리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1일 오전 경북 문경시 신기동의 한 공장 화재 현장에서 소방 당국이 진화 중 고립된 소방관 구조에 나서고 있다. 함께 고립된 소방관 1명은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불은 전날 밤 발생됐다. /연합뉴스

◇소방관 5% ‘자살 고위험’

소방관들은 참사나 재난 현장에서 동료를 잃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 경북 문경 공장 화재로 김수광(28) 소방장과 박수훈(36) 소방교가 순직하자 고인과 한 팀을 이뤄 일하던 윤인규 소방사는 지난 3일 영결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뜨거운 화마를 삼키고 간 현장에서 결국 구조대원들의 손에 들려 나오는 반장님들의 모습을 보며 저희는 모두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느끼고 또 느꼈습니다. 내일부터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달려가 최선을 다해 그들의 생명을 지켜낼 것입니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작년까지 화재 진압, 구조, 직업성 질병(암), 극단적 선택, 직무 수행 중 재해 등으로 순직한 소방관은 총 114명(위험 직무 40명·일반 74명)이다. 같은 기간 화재 진압, 구조, 일상 업무 등으로 공상(公務)을 당한 소방관은 총 7927명이다. 작년과 2022년에는 공상 소방관이 각각 1000명을 넘었다.

소방관들은 이런 일을 겪으며 정신 건강에 영향을 받게 된다. 소방청과 분당서울대병원이 소방 공무원 5만2802명을 대상으로 작년 3~5월 진행한 마음 건강 설문 조사에 따르면, PTSD·우울 증상·수면 장애·문제성 음주 등 심리 질환 4개 중 1개에 대한 치료·관리가 필요한 위험군이 43.9%(2만3057명)로 나타났다. 자살 고위험군은 4.9%(2587명), 지난 1년간 1회 이상 자살을 생각한 소방관은 8.5%(4465명)였다. 1년에 외상 사건(PTSD 유발 사건)을 15회 이상 경험하는 소방관 비율은 10.7%였다. 소방관들은 평균적으로 1년에 5.9회 외상 사건에 노출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트라우마를 겪는 소방관 10명 중 7명은 치료받은 경험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림대한강성심병원과 한림화상재단이 서울소방재난본부 소방관 1057명을 대상으로 작년 5월 조사한 결과 45%(477명)가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를 경험했으며 이 중 74%(354명)가 트라우마를 치료한 적 없었다. 트라우마 관련 프로그램이 부족하다고 느낀 소방관은 65%(682명)였다.

고(故) 김수광 소방장과 고 박수훈 소방교의 영결식이 열린 3일 오전 영결식에 앞서 고인들의 직장인 경북 문경소방서에서 운구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치료 받기 어려운 환경…”美처럼 ‘신속 동료 구조팀’ 확대해야” 의견도

소방관들이 정신적 후유증을 치료하기 어려운 이유로는 항상 인력이 부족한 환경이 꼽힌다. 현재 전국 소방관 인력은 총 6만7000명이다. 최근 5년간 2만명을 충원했지만, 여전히 인력이 부족해 치료받을 시간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한다. 김길중 처장은 “정신적으로 힘들 때는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 온전히 휴식을 취하면서 심리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러기 쉽지 않다”며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계속 참혹한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회복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현재도 심리 지원에 대한 체계가 갖춰져 있지만 소방관들이 치료를 받으려면 업무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누군가 대신 자신의 업무를 해줘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다수 소방관은 본인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밝히기 꺼려한다”며 “괜찮다고 생각하며 음주에 의존하지만 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사고 현장에 있던 소방관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마음 건강을) 모니터링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소방관의 순직을 막기 위해 신속 동료 구조팀(RIT·Rapid Intervention Team)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신속 동료 구조팀은 동료가 현장에서 갇히면 밖에서 소방관이 대기하다가 구출하는 제도로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한국은 작년에 시범 도입, 정규 운영을 위한 연구 용역과 해외 훈련 등을 진행하고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일부 시도에서 신속 동료 구조팀을 제한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시·도별 인력, 장비 운영 등 편차가 있어 중앙 차원의 표준화된 편성과 운영 기준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소방청은 소방관들의 마음 건강을 위한 소방심신수련원을 오는 2026년 강원도 강릉시에 준공할 예정이다. 올해부터 순직 소방관을 기리는 추모 대회(119메모리얼 대회)를 열고 업무 중 부상으로 입원하는 소방관들에 대한 치료비와 간병비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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