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일가점만 노린다”...공모가 ‘뻥튀기’ 부추기는 수요예측 제도

이인아 기자 2024. 2. 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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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모주 펀드를 운용하는 기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공모 기업을 분석하는 대신 '초일가점'에 집중하는 게 최선의 전략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을 분석하느라 기관 수요예측 마지막 날 청약했더니, 배정 받은 물량이 크게 줄어 주관사에 불만을 표한 적이 있다"며 "이런 일을 겪은 후엔 공모주를 한 주라도 더 받기 위해 무조건 수요예측 첫날, 상단 위로 경쟁적으로 써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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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밴드 상단보다 30% 높게 불러야 유리”...구체적 팁까지

최근 공모주 펀드를 운용하는 기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공모 기업을 분석하는 대신 ‘초일가점’에 집중하는 게 최선의 전략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초일가점은 수요예측 첫날 주문을 낸 기관 투자자에 부여되는 가점을 뜻한다. 초일가점을 받는 기관은 공모주를 더 많이 배정 받을 수 있다. 수요예측 첫날, 희망 공모가 범위(밴드) 상단보다 30% 정도 높은 가격에 가능한 한 많은 주문을 넣어야 유리하다는 구체적인 조언까지 나온다.

이처럼 기관의 공모주 투자 전략이 초일가점 획득에 치중되는 이유는 신규 상장 기업의 주가 급등락 현상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상장 첫날 주가가 ‘따따블(공모가의 400%)’까지 오른 후 폭락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공모주를 최대한 많이 배정 받아 상장 당일 파는 게 당연한 매매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관행은 수요예측 경쟁률의 이상 급등을 야기하고 또 다시 신규 상장주의 단기 급등락을 초래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우려한다.

일러스트=박상훈

9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수요예측 관련 제도가 바뀐 후 초일가점을 노리고 무조건 수요예측 첫날 높은 가격에 주문을 내는 기관이 늘었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실적이나 사업 모델이 별로 좋지 않은 회사여도 공모주를 한 주라도 더 받으려면 밴드 상단은 무조건 초과해 주문을 넣을 수밖에 없다”며 “공모가가 밴드 상단 혹은 그보다 10% 정도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면, ‘착한 공모가’로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초일가점은 금융당국이 기관 투자자들의 ‘뻥튀기 청약’을 손질하다가 마련한 대책이다. 기관들이 자기 능력보다 과하게 많은 물량을 주문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자, 금융당국은 기관의 주금 납입 능력을 꼼꼼히 확인할 것을 상장 주관사에 주문했고 그 결과 수요예측 기간이 이틀에서 5영업일로 연장됐다. 그러다 보니 다른 기관들의 동태를 살피고자 수요예측 마지막 날 주문이 몰리는 부작용이 나타났고, 결국 금융당국은 수요예측 첫날 주문을 넣은 기관에 가점을 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공모주의 배정은 상장 주관사의 재량에 달렸기 때문에 정확한 기준을 알기 어렵다. 다만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수요예측 2일차나 3일차에 청약할 때보다 첫날 청약할 때 배정 받는 주식 수가 확연히 많다고 한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을 분석하느라 기관 수요예측 마지막 날 청약했더니, 배정 받은 물량이 크게 줄어 주관사에 불만을 표한 적이 있다”며 “이런 일을 겪은 후엔 공모주를 한 주라도 더 받기 위해 무조건 수요예측 첫날, 상단 위로 경쟁적으로 써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기관 투자자들의 이 같은 관행은 공모가의 고공행진으로 귀결됐다. 8일 케이웨더는 공모가가 밴드(4800~5800원) 상단을 20% 웃도는 7000원으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 1999곳 중 1969곳이 밴드 상단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케이웨더뿐 아니라 올해 들어 수요예측을 진행한 9개 기업 모두 밴드 상단보다 높은 값에 공모가를 확정했다.

공모가와 첫날 종가는 상향 평준화된 반면, 상장 이튿날 주가는 급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요예측 참여 시 락업을 걸지 않는 게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과거엔 공모주를 더 많이 배정 받기 위해 서로 경쟁적으로 의무 보유 확약을 걸곤 했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한 운용역은 “상장 후 공모주를 바로 못 팔면 무조건 손해를 보기 때문에, 락업을 걸면 바보 소리를 듣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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