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미중 관계 회복의 충분 조건

여론독자부 2024. 2. 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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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설리번·왕이 회담서 해빙기 신호
美함정 향한 中 위협비행도 중단
미국 중심 국제 질서 유지된다면
양국관계 정상 궤도로 올라설 것
[서울경제]

관심이 집중된 세계의 숱한 지정학적 위기 가운데 잠재적 위험성이 가장 높은 미국과 중국의 불편한 관계가 긍정적으로 전환되고 있다.

최근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중국 최고위 외교관인 왕이 외교부장의 비공식 회담은 고성이 오갔던 2021년 앵커리지 회담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잔뜩 얼어붙었던 양국 관계가 해빙기를 맞고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양국 군 수뇌부의 회담이 재개됐고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과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도 모처럼 건설적인 중국 나들이에 나섰다.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는 양국 정상이 마주 앉은 지난해 11월 이후 중국 전투기의 위협적인 근접 비행이 중단됐다고 전했다. 2021년 가을 이후 2년 동안 미국과 우방국 함정을 겨냥한 중국 전투기의 위협 비행 건수는 300여 건에 달했다.

이 모두는 좋은 일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2년간 상호 불신과 잘못된 의사소통 및 접촉 결여로 점철된 양국 관계는 지켜보기 힘들 만큼 아슬아슬했다. 양국의 라이벌 관계는 인공지능(AI)부터 우주무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고삐 풀린 무한 경쟁을 불러오고 글로벌 경제를 박살 내는 것은 물론 1945년 이후 첫 강대국 사이의 전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강한 우려를 자아냈다.

다행히 양국 모두 자세를 바로잡았다. 더 큰 변화를 보인 쪽은 워싱턴이 아닌 베이징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 속에 권력의 정상에 오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의 국력이 기울고 있다고 확신했다. 시 주석은 미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줄이고 미래의 신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싶어 했다. 그의 야심 찬 외교정책은 점점 공격적이 됐다.

여기서 몇 달 전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시 주석은 미국의 대기업 중역들을 향해 중국은 미국을 대신하기 위해 글로벌 패권을 추구할 의도가 없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시 주석과 왕 부장은 미중 협력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리창 중국 총리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미국 기업들에 각각 구애의 손짓을 보냈다. 이 같은 태도 변화의 많은 부분은 중국 경제가 흔들리는 데 비해 미국 경제는 활기를 보인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보다 큰 맥락에서 베이징은 중국의 ‘전랑(戰狼) 외교’가 실패로 끝났고 이로 인해 인도에서 호주와 독일에 이르기까지 여러 국가들의 외면을 받았다는 사실을 눈여겨봤을 것이다.

워싱턴 역시 미중 관계가 제 코스를 크게 벗어나면서 양국 사이의 위험스로운 반목과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대만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현상 유지를 원하는 대만인들을 비롯한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글로벌 경제의 틀 안에서 깊숙이 엮인 미중 관계의 개선은 양국 모두에 실익을 안겨준다. 워싱턴의 많은 우방국들은 미국의 안보 지원을 계속 추구하겠지만 중국 역시 그들의 최대 경제 동반자로 남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워싱턴의 태도 변화를 가능하게 한 부분적 이유는 중국이 10피트의 키를 지닌 거인이 아니라는 자각이다. 워싱턴의 정책 결정자들은 1980년대의 일본처럼 중국 역시 대약진할 것이라는 전망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독일의 격언처럼 나무는 하늘에 닿을 만큼 자라지 못한다. 중국의 성장은 크게 둔화됐고 잇따른 정책 실수로 최근 몇 년 사이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경제성장의 두 축이었던 노동연령대 인구와 생산성은 크게 약해진 상태다. 중국은 여전히 강대국이지만 세계 패권국의 지위를 넘겨받지는 못할 것이다.

80여 년 전 시작된 미국 패권 시대가 지니는 특성은 그 틀 안에서 다른 국가들도 성장과 번영을 누릴 안보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국제질서를 해치려 들지 않는 한 이들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또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번영을 누릴 수 있다. 이런 태도는 라이벌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의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워싱턴은 이 같은 경쟁이 지정학적 우열 다툼으로 전환된다면 상생 해법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고 글로벌 시스템은 깨지고 말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이 룰을 준수한다면 워싱턴도 베이징에 일부 여지를 줘야 한다. 미국의 경제력이 전진을 거듭하면 다른 국가들도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잘해낼 것이고 비관과 실망이 아닌 정확한 전제에 바탕해 외교정책을 수립할 것이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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