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尹 뽑았으면 도와줘야" vs "R&D 예산에 민심 돌아서"... 충청의 선택은
"대통령 지원" vs "尹 마음에 안 들어" 팽팽
이상민 지역구 유성을은 'R&D 예산 논란'
'민주 압승 총선' '국힘 압승 지선' 중간 전망
"여기는 반반으로 완전히 갈라져 있더라고요. 시장 사람들도 그렇고, 내 주변 선후배들 만나도 그렇고, 완전히 극과 극이야. 그래서 요즘 모임을 하면 정치 얘기 못 하게 해야 할 정도라니까요."
총선을 60여 일 앞두고 대전 민심을 묻는 질문에 중앙시장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윤광준(67)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이재명이가 싫어서 그러는 거고,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은 윤석열이가 검찰 독재한다고 거기에 꽂혀 있고"라며 "서로 내 편 얘기만 듣고 내 편만 보호하려는 것이 강하다"고 토로했다. 여의도에서 볼 법한 극단의 정치가 '중도의 고장' 충청 민심을 파고든 모습이었다.
대전을 비롯한 충청 지역은 역대 선거마다 선택을 달리하며 '민심의 풍향계' 역할을 해왔다. 충청은 2012년, 2016년 총선에서 의석을 고루 나눠주며 여야 균형을 맞췄다. 하지만 2020년 총선에서는 전체 28석 가운데 20석을 더불어민주당에 몰아줬다. 특히 대전은 7석 모두 민주당이 휩쓸었다.
2022년 대선에선 윤석열 대통령 손을 들어줬다. '충청의 아들'을 표방한 윤 대통령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4.1%포인트 앞섰다. 대선 직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국민의힘이 대전시장, 세종시장, 충남지사, 충북지사를 석권했다. 불과 2년 만에 충청 민심이 180도 바뀐 셈이다.
다시 2년이 지났다. 충청 민심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4·10 총선을 64일 남긴 지난 6일 대전 동구 중앙시장, 중구 으느정이 문화의 거리, 유성구 대덕연구개발특구(대덕연구단지), 충남대 등을 돌며 목소리를 들었다.
'원도심' 동구·중구, 심판론 vs 지원론 팽팽
먼저 찾은 대전역 인근 중앙시장. 동구와 중구가 만나는 장소로, 대전 원도심의 여론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동구와 중구는 2016년 총선에서 보수 정당 후보에게 표를 준 뒤, 2020년 선거에서 진보 정당으로 마음을 바꿨다. 국민의힘은 되찾아 와야 하는, 민주당은 완승을 위해 또다시 잡아야만 하는 곳이다.
시장 민심은 '정권심판론'과 '정권지원론'이 맞붙고 있었다. A(57)씨는 "이 대표가 잘못한 게 있다고 하더라도 법인카드를 썼다고 그렇게 많은 식당들을 압수수색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아무리 이 대표에게 문제가 있더라도 국민의힘을 뽑아줄 수 없다"고 말했다. 국밥집을 운영하는 한모(75)씨는 "계속 한쪽을 뽑아왔는데, 이번에는 달리 투표하려 한다"며 민주당 지지 의사를 밝혔다. 그는 "나는 똑똑한 사람, 정치 잘하는 사람을 뽑곤 하는데, 지금 대통령은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반면 국민의힘에 표를 몰아줘 윤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았다. 한복집을 운영하는 윤옥분(62)씨는 "대통령은 잘하고 있는데 민주당 국회의원이 너무 많다 보니까 대통령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일을 못 하게 한다"며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해 "한마디 한마디가 똑똑하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호평했다.
'여당이기 때문에'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중구에 거주하는 김모(60)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좋아하고, 지난 총선 때는 민주당을 뽑았다면서도 이번에는 국민의힘 지지 의사를 밝혔다. 그는 "대통령은 전체 나라살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대통령을 세워놨으면 어느 당이든 그쪽에 힘을 실어줘서 살림을 잘하게 해야 한다"며 "한 나라에서 네 편, 내 편으로 싸우는 지금 정치가 한참 잘못했다"고 말했다.
화제의 '유성을', 이상민 이적 vs R&D 삭감
반면 신도심으로 분류되는 유성구와 서구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이곳은 최근 세 차례 총선에서 민주당 계열 정당이 의석을 싹쓸이할 정도로 진보 성향이 강한 지역이다. 박병석 전 국회의장은 서구갑에서만 내리 6선을 했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는 유성을이 초미의 관심사다. 유성구(분구 전 포함)에서만 내리 5선을 한 이상민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동시에 윤석열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직격탄을 맞은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연구단지 인근 거리에는 'R&D 예산 삭감 철회하라' '미래과학기술 포기 선언' 등이 적힌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민심은 이 의원의 국민의힘 합류보다 R&D 예산 논란을 더 심각하게 바라보는 편이었다. 대전에 거주하는 장모(50)씨는 "특구에서 일하는 연구원이 3만 명 이상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가족까지 포함하면 부정적인 여론이 상당할 것"이라며 "그 지역은 과기노조(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의 힘도 세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장모(32)씨도 "이 의원 개인의 인기가 좋은 것은 많지만, '이상민이어서가 아니라 민주당이라서' 찍어주는 표가 더 많아서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유성구는 2022년 지선에서 대전에서 유일하게 야당 구청장이 당선될 정도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고, 평균 연령이 39.9세로 대전에서 가장 젊은 지역이다.
이 같은 분위기가 인근 지역구로 퍼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전 서구에서 오래 거주한 전직 공무원은 "연구단지가 유성구에 있지만, 서구나 세종시 등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다"며 "R&D 이슈가 충청 표심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전에는 양당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택시기사 서모(59)씨는 "정치인들이 이런 45%대 45%의 진영 싸움을 만들어 놓은 것 아니냐"며 "둘 다 싫다"고 잘라 말했다. 젊은 층에선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를 선호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서대전역 인근에서 만난 B(31)씨는 "윤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크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을 뽑을 수는 없다"면서 "이낙연 측과의 연대 여부와 무관하게 이 대표의 개혁신당에 표를 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어느 쪽도 완승은 어려울 듯... 충청의 선택은
현재 충청권 판세는 민주당이 압승했던 4년 전 총선과 국민의힘이 이겼던 2년 전 지선 사이에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1월 30일~2월 1일 실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충청권의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힘 33%, 민주당 34%로 박빙이었다. 21대 총선 직전인 2020년 4월 13, 14일 같은 조사에서 민주당 42%,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25%였던 것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게 줄었다. 하지만 충청권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 33%, 부정평가 56%로 대통령 지지율이 낮다는 점은 변수다.
이 때문에 민주당이 대전 판세를 좀 더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대전의 민주당 현역의원은 "윤 대통령 중간평가 성격이 강하고, 지역에선 R&D 예산 삭감 등 실정에 대한 문제의식이 만연해 있다"고 말했다.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대전의 경우 이번에도 7석 전석 승리가 목표"라고 자신했다. 반면 국민의힘 대전 지역 관계자는 "대통령 지지율 등을 봤을 때 대전은 4대 3 정도로 뒤지고 있다는 것이 냉정한 평가"라며 "다만 총선까지 남은 기간 어떤 이슈가 발생하느냐에 따라 판세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기대했다.
충남·충북은 여야 모두 격전을 예상하고 있다. 민주당이 완승을 거둔 지난 총선에서도 충남·충북은 국민의힘 8석, 민주당 11석으로 차이가 크지 않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고령층 비중이 높은 지역이 많다 보니 대전보다는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전뿐 아니라 충남과 충북도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며 "구도는 물론, 인물에 따라서도 판세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는 한국갤럽이 1월 30일부터 2월 1일까지 전국의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은 12.7%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이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대전=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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