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새마을금고는 가족 회사? '고연봉 꿈의 직장' 불공정 채용 판쳐
울산 동구 금고, 전 이사장 친인척 5명 근무
현 이사장의 아내는 기부한 단체에서 일해
이사장 아들 부장, 처남은 관련 업체 취업도
제제 움직임 보이자 '품앗이 채용' 꼼수까지
행안부·중앙회는 친인척 채용 파악조차 못해
편집자주
새마을금고 계좌가 있으신가요? 국민 절반이 이용하는 대표 상호금융기관인 새마을금고가 창립 60여 년 만에 전례 없는 위기 앞에 섰습니다. 몸집은 커졌는데 내부 구조는 시대에 뒤처진 탓입니다. 내가 맡긴 돈은 괜찮은지 걱정도 커져갑니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새마을금고의 문제를 뿌리부터 추적해 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전국 곳곳의 지역 새마을금고가 이사장 등 임직원 친인척을 알음알음 채용해 '가족금고'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새마을금고는 대기업 수준의 급여와 정시 퇴근이 가능해 청년층에 인기 있는 일자리로 꼽힌다. 구멍 뚫린 채용 시스템의 틈으로 들어온 가족 직원들은 대출 등 핵심 업무를 주로 맡으면서 금고의 내부 통제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고 안팎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감독권한이 있는 행정안전부와 새마을금고중앙회는 지역 금고의 친인척 채용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채용 과정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만큼 가족 직원 실태를 전수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전 이사장 동생은 이사, 조카는 대출 담당"
"어휴, 그 금고는 '박차훈 가족 회사'예요. 이사장 할 때부터 조카와 사촌동생, 처가 식구까지 다 뽑았어요."
울산 동구의 A새마을금고 전직 직원은 "금고를 전임 이사장의 일가친척이 장악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금고는 새마을금고중앙회를 5년여간 이끈 박차훈(67) 전 회장이 이사장을 20여 년간 맡았던 곳이다. 박 전 회장은 자산운용사 대표 등에게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징역 10년을 구형받은 인물이다.
8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전직 직원의 말은 사실이었다. A금고의 직원은 모두 40명인데 이 가운데 본지가 실명과 직책까지 확인한 박 전 회장의 친인척은 5명이었다. 모두 박 전 회장이 금고를 운영할 때 채용된 인물들이다. 이들은 대출 등 주요 업무를 담당했다.
우선 ①박 전 회장의 5촌 조카(사촌누나 아들)인 유모씨가 이 금고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최근까지 대출팀에서 일했다. ②대출심사위원을 지낸 김모씨는 박 전 회장의 또 다른 5촌 조카다. ③외사촌인 고모씨도 금고 직원이다. 고씨의 남편은 지난달 이 금고의 감사 선거에 나왔다가 떨어졌다.
박 전 회장은 처가 식구도 살뜰히 챙겼다. ④처남의 딸유모씨가 여전히 금고에서 일한다. 복수의 전직 A금고 고위 관계자들은 ⑤이 금고에서 일했던 신모씨가 박 전 회장 아내의 친척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박 전 회장이 중앙회장이 된 이후 중앙회 금고감독위원으로 '영전'했다. 금고감독위원은 1,200개가 넘는 전국 마을금고의 건전성 검사 등을 계획하는 요직이다. 신씨가 금고감독위원으로 선임되자 조직 안팎에서는 "전문성 없는 인사가 혈연 덕에 중요한 자리에 앉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새마을금고법상 금고감독위원은 금융, 회계, 감독 업무에 관한 전문지식과 경험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다만, 박 전 회장은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신씨는 처가쪽 친인척이 아니며 나와 피 한방울 안섞였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친인척이 금고 직원이 될 수 있었을까. 허술한 채용 시스템 탓에 가능했다. 새마을금고 채용은 크게 △공채전형(신입 정규직) △일반채용(경력·계약직 대상)으로 나뉜다. 공채전형 때는 중앙회가 1차 필기시험을 관리하는 등 공정성 장치가 작동하지만, 일반채용은 개별 금고가 공모해 알아서 선발한다. 이 때문에 박 전 회장 사례처럼 사적 채용의 주요 통로가 된다는 게 실무자들의 설명이다. 일단 계약직으로 채용한 뒤 2년 후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는 사례도 많다. 울산 A금고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주민은 "드러나지 않은 친인척과 지인의 자녀까지 합하면 사적 채용 사례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금고 대의원 중 상당수도 박 전 회장의 '핏줄'로 구성돼 있다. 새마을금고는 전체 회원 중 1% 안팎인 대의원이 금고 임원을 뽑는다. 대의원을 장악해야 금고를 장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A금고의 전직 직원은 "금고 대의원이 120명인데 박 전 회장의 아내와 친형, 동생, 형수, 며느리 등이 현재 또는 과거에 대의원으로 일했다"고 전했다. 대의원은 금고 회원들이 투표를 통해 뽑지만, 이 과정에서 이사장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대의원들의 투표로 이사가 된 박 전 회장의 친동생(60)은 올해 초까지 금고에서 일했다.
박 전 회장은 A금고의 친인척 채용 과정 등을 묻는 본지 질의에 "(지금 일하는 친인척 직원들은) 입사한 지 20년은 된 사람들로 그때는 (채용 관련) 규제가 없었다"며 "당시에는 월급이 박해서 금고가 별로 인기 있는 직장도 아니었고, 친인척 직원들은 모두 정식 채용절차를 거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금고 이사 선거에서 친동생이 떨어졌다. A금고가 내 사금고라면 어떻게 떨어지겠나"라고 항변했다.
이 문제에 대해 금고의 현 이사장인 김치규(63)씨는 "그런 사람(박 전 회장 친인척)이 금고에 들어온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고 실토했다. 다만 그는 "지금은 채용 시스템이 자리를 잡았다"며 자신과는 선을 그었다.
하지만 김 이사장의 주장과 달리 새마을금고의 가족 채용은 지나간 일이 아니었다. 김 이사장의 아내 박모씨는 A금고가 기부해 만든 느티나무복지재단의 요양원장이다. 박씨는 한때 이 재단의 이사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김 이사장은 이에 대해 "재단은 우리 금고의 이름만 쓸 뿐 (채용 등) 관리는 전부 국가에서 한다"면서 "(이사장을 한다는 사람이 없어서) 박 전 회장이 내 아내에게 하라고 해서 맡았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부이사장 아들, 업무보조 무기계약직 정규직 '프리패스'
가족 채용은 A금고만의 문제는 아니다. 본보 취재 결과 전국의 많은 금고에서 임원의 친인척을 계약·경력직으로 뽑은 뒤 시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고, 이후 고속승진시켜 요직에 앉히는 꼼수를 쓰고 있었다. 경기 광명 금고가 대표적이다. 부이사장 고모(72)씨의 아들은 2016년 6월 시간제 업무보조원으로 입사한 이후 무기계약직(2018년 4월)으로 전환된 뒤 6급 정직원(2021년 1월)으로 다시 전환됐다. 2년 만인 지난해 1월에는 5급으로 재차 직급을 높였다. 인사 규정상 최소 승진 연한(4년)조차 채우지 않은 것이다.
서울 구로구의 B금고에서는 이사장인 아버지(72) 밑에서 아들이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아들은 다른 금고에서 12년간 근무하다가 2015년 구로구의 C금고에 경력사원으로 이직했는데, 같은 해 B금고가 C금고를 흡수합병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일하게 됐다. 아들은 이후 부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금고 안팎에선 "아버지 금고로 바로 들어가기엔 눈치가 보이니 흡수합병 예정인 C금고를 거쳤다가 B금고에 입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본지는 해당 금고 이사장에게 관련 입장을 물었지만 회신하지 않았다.
금고가 운영하는 사업체에 이사장 친인척이 채용된 사례도 많다. 전북 남원의 한 새마을금고는 2018년 당시 이사장인 배모(70)씨가 처남 황모씨를 고용해 뒷말을 낳았다. 이 금고가 인수한 장례식장의 사무장으로 황씨를 뽑았기 때문이다. 이후 황씨는 장의차를 다른 장례식장에 빌려주고 받은 돈 가운데 일부를 법인 계좌에 입금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견책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다.
배씨는 채용 과정 등에 대한 본지 질의에 "당시 금고의 다른 이사가 처남을 사무장으로 추천했다"며 "오해를 살까 봐 거절했지만, '좁은 지역사회에서 장례식장 업무 경험이 있는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아 채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처남이 '능력자'라서 어쩔 수 없이 뽑아 썼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례식장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황씨가 기본적 회계 처리에도 미숙해 경리 직원이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는 금고 직원이 장례식장으로 출근해 일을 돕는다"고 말했다.
중대형 금고 부장급 평균 연봉 1억820만 원
혈연에 기댈 수 없는 평범한 취업준비생들에게는 새마을금고가 들어가기 어려운 회사로 꼽힌다. 청년층이 중시하는 높은 급여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모두 보장받을 수 있기에 입사 경쟁률이 높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한 금고 관계자는 "예적금과 공제(보험) 등 취급 상품이 많지 않아 은행보다 업무가 쉽고, 인위적 구조조정이 어려워 사고만 치지 않으면 정년까지 다닐 수 있다"고 말했다.
연봉도 웬만한 대기업에 뒤지지 않는다. 본지가 입수한 새마을금고 자료에 따르면 자산규모 3,000억 원 이상인 중·대형 금고의 정규직 신입 사원 초봉은 5,560만 원(2023년 기준)이다. 3급(부장급) 직원의 평균 연봉은 1억820만 원에 달한다. 포상비와 시간외수당, 업적 달성비 등이 따로 있어 추가로 급여를 받을 수도 있다.
문제는 금고 이사장 등이 마음먹으면 특정 지원자에게 바늘구멍 같은 채용의 문을 넓혀줄 수 있다는 점이다. 새마을금고는 정규직 신입 사원을 뽑을 때 1차 필기와 2차 면접 전형을 치른다. 면접은 지원자가 들어가고 싶어 하는 지역 금고에서 직접 진행하는데, 이때 부정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 지역 금고의 한 실무자는 "지원자와 친인척 관계인 이사장이나 임원은 면접위원으로 참여할 수 없다는 내부 규정이 있지만, 직장 상사와 특수관계인 지원자를 떨어뜨린다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심지어 이런 문제를 감독해야 할 중앙회 임원의 친인척도 청탁을 통해 지역 금고에 입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행안부·중앙회, 사적 채용 제재하겠다고 했지만… '꼼수'는 막지 못해
새마을금고중앙회는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사적 채용 사례가 언급되자 '친인척 채용을 막겠다'며 지난해 정관 일부를 수정했다. 금고 이사장 등 임원이나 그 배우자의 직계존비속이 금고에 취업하면 자동으로 해당 임원의 직위가 해제되는 규정을 만들었다. 임원이 자녀나 손자를 채용하는 순간 자신은 금고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꼼수를 쓰면 얼마든지 규제를 피할 수 있다. '품앗이 채용'이 대표적이다. 특정 금고 이사장이 주변 금고에 "내 아들을 취업시켜 달라"고 부탁한 뒤, 그 대가로 자신의 금고에도 '청탁 채용'을 해주는 방식이다. 수도권 한 금고의 직원은 "서울 금고들의 채용 사례만 조사해봐도 이사장 간 청탁에 의한 품앗이 채용이 수두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현행 정관에는 이사장의 직계가족이 같은 금고에서 일할 때만 제재 대상으로 삼을 뿐, 장례식장 등 산하 사업체에 채용하는 건 막지 못한다. 게다가 사적 채용을 제한한 친족의 범위가 자녀와 손주, 부모와 조부모까지라서 조카나 사촌 등을 취업시켜 줬을 때는 아무 제재가 없다. 울산 A금고나 남원 금고 같은 사례는 앞으로도 막기 어렵다는 뜻이다.
감독기관인 행안부와 새마을금고중앙회의 안일한 현실 인식도 문제로 지적된다. 두 기관은 전국 지역 금고의 사적 채용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중앙회 관계자는 "이사장들의 친인척 채용에 대한 대략적인 실태는 정보수집 수준으로만 알고 있다"며 "채용 과정에서 비리나 부당한 점이 있었는지, 몇 촌 관계인지 따져보는 전수조사는 법적 근거가 없어 못 했다"고 말했다.
새마을금고중앙회 자문위원을 지낸 이종욱 서울여대 명예교수는 “새마을금고는 협동조합의 특성상 회원들의 믿음을 잃지 않는 게 생명”이라며 “하지만 이미 신뢰가 크게 추락했기에 사적 채용을 전수조사한 뒤 비위 소지가 있으면 수사의뢰하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보받습니다> 지역 새마을금고와 중앙회에서 발생한 각종 부조리(부정·부실 대출 및 투자, 채용·인사 과정의 문제, 갑질, 횡령, 금고 자산의 사적 사용, 뒷돈 요구, 부정 선거 등)를 찾아 집중 보도할 예정입니다. 직접 경험했거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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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1>회장님의 이중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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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2> 믿지 못할 골목 금융왕
- • 시장 상인들이 맡긴 쌈짓돈을 돈줄로…이사장이 '위험한 대출' 수수료 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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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3>시한폭탄 된 PF 대출
- • 첫 삽도 못 뜨고 공사 중단… 끝나지 않은 '새마을금고 PF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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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4> 60년 전 약속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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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5> 끝나지 않은 이야기
- • 새마을금고 '칼잡이'가 계좌번호 찍어 보냈다 “저희 딸 결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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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남원= 유대근 기자 dynamic@hankookilbo.com
울산= 원다라 기자 dara@hankookilbo.com
울산=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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