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간첩단 피고인들의 5번째 ‘판사 기피’ 즉각 기각, 처음부터 그랬어야
간첩단 ‘충북동지회’ 사건 피고인들이 5번째로 낸 법관 기피 신청을 재판부가 “소송 지연 목적이 명백하다”며 판단을 다른 재판부로 넘기지 않고 즉각 기각했다. 1심 선고 날짜도 2월 법관 인사가 나기 직전으로 잡았다. 판결을 다른 재판부에 떠넘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피고인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2017년부터 북한 공작원 지령을 받아 지하 조직을 결성한 뒤 지역 인사를 포섭하고 국가 기밀을 탐지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로서도 이런 중요 재판을 더는 미뤄선 안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 사건 피고인들은 그동안 위헌 심판 신청, 법관 기피 신청 등 온갖 재판 지연책을 동원해왔다. 피고인 4명중 3명이 뭉쳐 3차례 법관 기피 신청을 내고, 나머지 1명이 따로 기피 신청을 내는 ‘쪼개기 신청’ 수법까지 썼다. 신청이 기각되면 항고·재항고를 반복했다. 그 사이 재판은 중단됐고 피고인들은 구속 기간 만료와 보석 등으로 다 석방됐다. 도저히 재판이라고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현행법엔 재판 지연 의도가 명백한 법관 기피 신청은 해당 재판부가 바로 기각하고 재판을 진행할 수 있게 돼 있다. 이 사건 피고인들이 낸 신청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재판부가 판단을 다른 재판부로 넘기고, 그 판단까지 늦어지면서 재판이 심각하게 지연된 것이다. 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처음부터 신청을 바로 기각했다면 이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간첩단 사건도 마찬가지다. 피고인들은 법관 기피 신청과 국민참여재판 신청 등 온갖 수단 동원해 재판을 지연시키면서 이미 다 풀려났고, 1심 재판도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제주 간첩단 사건 피고인들은 재판 한번 안 받고 다 석방됐다. 판사들이 각종 신청에 대한 결정을 미루고 재판도 형식적으로 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얼마 전엔 제주 간첩단 사건 피고인들이 기소된 지 9개월 만에 열린 첫 재판에서 25분 만에 판사 허가도 받지 않고 무단 퇴정하는 일도 있었다. 감치 명령을 내릴 수 있지만 판사는 그냥 지켜봤다. 조금만 정치적 부담이 있는 재판이면 판사들이 재판 시늉만 내다가 인사 때 ‘도망’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재판 파행을 막고 사법 정의를 세우려면 판사들이 책임감을 갖고 단호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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