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라메 판타지에 ‘달콤’, 윤여정 잔잔한 휴먼에 ‘뭉클’
기발함으로 똘똘 뭉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두 편이 설 연휴에 맞붙는다. 티모테 샬라메 주연의 ‘웡카’가 꿈과 환상이 가득한 퍼레이드라면, ‘킹스맨’ 감독 매슈 본의 신작 ‘아가일’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롤러코스터다. 규모는 작지만 가족과 함께 보기 좋은 따듯한 한국 영화도 설 연휴에 맞춰 개봉했다. 윤여정·나문희·김영옥·박근형 등 믿고 보는 베테랑 배우들의 활약이 빛난다.
◇웡카
할리우드 톱스타 티모테 샬라메가 주연을 맡은 ‘웡카’는 가진 것이라곤 낡은 모자밖에 없는 순수 청년의 초콜릿 가게 창업기다. 디저트 성지인 달콤 백화점에 입점하려는 웡카는 초콜릿 기업들의 횡포에 맞서 세계 최고 초콜릿을 만들려 한다. 로알드 달의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등장하는 공장장 웡카는 기묘한 매력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 1971년 진 와일더, 2005년 조니 뎁이 연기한 데 이어 3대 웡카를 맡은 샬라메는 광기를 덜어내고 풋풋함을 더했다.
집에 와서도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와 동화 속 장면 같은 영상미가 강점이다. 뮤지컬 장면을 완벽히 소화하기 위해 샬라메는 촬영 4개월 전부터 주 5일 8시간씩 보컬과 댄스 레슨, 연습을 반복하는 아이돌급 트레이닝을 받았다. 자신감이 솟아오르는 마카롱, 몸이 두둥실 떠오르는 초콜릿 등 디저트 수천 개로 가득한 초콜릿 가게를 보는 것만으로도 엔도르핀이 분비되는 기분이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웡카의 마법이 필요하다.
◇아가일
‘킹스맨’으로 큰 사랑을 받은 매슈 본 감독이 또 다른 스파이물로 돌아왔다. 스파이 소설 ‘아가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엘리(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가 어느 날 갑자기 전 세계 스파이들의 표적이 된다. 앨리의 소설 속 내용이 현실 세계에서 그대로 재현되면서, 세계 최강 첩보 조직은 시리즈의 결말을 알아내기 위해 앨리를 위협한다.
소설 속 세련되고 잘생긴 스파이 ‘아가일’(헨리 카빌)과 꾀죄죄한 행색에 술 한잔 걸친 듯한 현실 스파이 ‘에이든’(샘 록웰)의 괴리가 웃음 포인트. 소설과 현실이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예측 불허 스토리가 전개된다.
장난기 넘치는 코믹 액션은 매슈 본의 전매특허. 이번에도 디스코 음악에 버무린 흥겨운 액션 장면에 몸이 들썩인다. 주인공 앨리와 에이든은 스파이물의 클리셰를 통쾌하게 짓밟고 뒤틀면서 새로운 스파이 캐릭터를 선보인다. 잔혹한 장면이 많은 ‘킹스맨’과 달리 12세 관람가로 온 가족이 함께 즐기기에도 무리가 없다.
◇도그 데이즈, 소풍
시끌벅적한 블록버스터보다 잔잔한 휴먼 드라마를 선호한다면 관록 있는 배우들이 출연하는 따스한 한국 영화가 기다리고 있다. ‘미나리’ ’파친코’ 등 글로벌 작품에서 활약한 윤여정이 오랜만에 국내 작품 ‘도그 데이즈’로 돌아왔다. 은퇴 후 강아지와 함께 노년을 보내는 건축가 역을 맡아 이 시대에 필요한 참된 어른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20대 라이더, 싱글 남녀, 입양 가족까지 다양한 인물이 반려견을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되는 과정을 아기자기하게 그렸다.
연기 경력 도합 200년, 배우 나문희·김영옥·박근형은 ‘소풍’으로 뭉쳤다. 은심(나문희)은 60년 만에 고향 남해로 돌아가 절친이자 사돈인 금순(김영옥)과 어린 시절 자기를 짝사랑했던 친구 태호(박근형)를 만나 다시 한번 우정을 쌓는다. 연기 베테랑에게도 버거워 보이는 어색한 대사가 걸림돌이지만, 세 배우는 말없이 서로 바라보는 눈빛만으로도 오만가지 감정이 들게 한다. 이 영화의 빌런은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이다. 갈수록 건강은 나빠지고, 자식들에게도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없는 노년의 현실을 담담히 그렸다.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임영웅의 ‘모래 알갱이’가 흘러나올 땐, 객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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