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학·인력업체 짜고 외국인 불법 입학…전복양식장 강제노동
지방의 한 사립대학이 인력중개업체와 짜고 무자격 외국인들을 불법 입학시킨 뒤 내국인 기피 일자리에 취업시켜 등록금을 받아내려다 법적 분쟁으로 번졌다. 중개업체에 이끌려 전복 양식장에서 일하게 된 동티모르 유학생 20여명이 열악한 환경을 견디다 못해 주한 동티모르대사관에 이 사실을 알렸고, 이 과정에서 학비와 중개료 회수가 어려워진 대학과 중개업체 사이에 책임 소재를 두고 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8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전남 영암과 충남 당진에 캠퍼스를 둔 4년제 사립종합대인 세한대는 지난해 9월 동티모르 유학생 29명을 영암 캠퍼스의 자유전공학과에 입학시켰다. 360여만원에 이르는 등록금은 받지 못한 상태였다. 한달 뒤 유학생들은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입학을 알선한 중개업체에 이끌려 인근 진도군에 있는 전복 양식장에 취업했다. 근로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취업이었다. 이들을 취업시킨 인력중개업체는 세한대의 동티모르 현지 유학생 모집 과정에도 참여했다.
동티모르 학생들을 입학시키는 과정에서 세한대는 비자 신청에 필요한 서류도 허위로 발급했다. 법무부 지침상 한국에 오는 유학생은 먼저 학교에서 표준입학허가서를 발급받고, 이를 근거로 현지 한국대사관에서 입국사증(비자)을 받아야 한다. 입학허가서 발급을 위해서는 등록금 완납이 필수지만, 세한대는 인력중개업체로부터 등록금의 일부만 대납받은 상태에서 입학허가서를 내줬다. 불법 입학, 허위 초청에 해당하는 행위다.
한국에 온 동티모르 학생들은 학비와 입국알선료 조달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전복 양식장처럼 작업환경이 거칠고 노동강도가 센 곳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입국과 입학과정 모두가 불법이었던 탓에 업체가 제시한 일자리를 거부할 수 없었다. 사실상 강제노동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근로기준법은 강제노동을 막기 위해 전차금(사용자로부터 빌려 향후 임금으로 갚을 것을 약정하는 돈) 상계를 금지한다.
사정을 알게 된 동티모르대사관은 지난해 12월 현지 조사를 벌였고, 동티모르 학생들은 이 조사를 전후해 양식장 일을 그만뒀다. 상황이 꼬이자 세한대는 인력업체 쪽과 대책을 논의했다. 주동티모르 대사를 지낸 김아무개 세한대 교수가 인력업체 대표 강아무개씨와 나눈 통화 녹취를 보면, 김 교수가 “거기(강제노동 의혹 조사)에 대비해 (강 대표가) 학생들과 의견을 나눠보라. ‘너희들(유학생)이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서 내야 하는데, 일을 안 하면 집에서 돈을 가져와서 갚아야 한다. 집에서 갚을 능력도 없으니 (일을 안 하면) 너희는 동티모르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정확히 얘기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인력중개업체는 학생들이 일을 그만두면서 대납한 등록금 2900만원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자 이승훈 세한대 총장을 횡령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강아무개 대표는 “세한대의 제안으로 동티모르에서 모집한 학생들의 등록금을 먼저 납부해준 뒤 이들이 한국에서 취업해 돈을 벌면 돌려받기로 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한국에 온 뒤 유학생의 합법적인 근로가능시간이 주당 10시간에 불과해 등록금을 갚으려면 불법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에 학생 관리를 그만뒀지만 선납한 등록금은 끝내 돌려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세한대는 책임을 인력업체 쪽에 미뤘다. 대학 관계자는 “업체가 먼저 ‘첫 학기 등록금을 먼저 내줄 테니 (취업 등) 유학생 관리 업무를 맡겨 달라’고 했다”며 “우리가 등록금을 먼저 대납해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은 명백한 허위”라고 했다. 입학허가서를 허위 발급한 것에 대해선 “우리 대사관이 최초 모집된 유학생 82명 가운데 29명의 학생만 비자를 내주자 업체가 등록금을 전액 선납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일부인 2900만원만 납부했다”며 “개강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사증 심사를 늦출 수가 없어 부득이하게 등록금 완납 전에 표준입학허가서를 발급한 것”이라고 했다.
한신대의 우즈베키스탄 유학생 강제 출국에 이어 세한대에서 인력중개업체의 등록금 대납과 불법 취업 알선 사례까지 불거지자, 대학 관리를 맡아야 할 교육부와 출입국 관리를 책임지는 법무부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나온다. 교육부 관계자는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이라 정확한 답변을 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법무부는 “표준입학허가서 허위 발급 경위와 취업 관련 위법 여부를 조사 중이며,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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