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갈 곳도 물러날 곳도 없는 변두리 건달들의 삶
신동흔 기자 2024. 2. 9. 03:04
특선영화 KBS2 ‘뜨거운 피’ 밤 10시 35분
1993년 부산 변두리 작은 포구 ‘구암’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주인공 희수(정우)는 한전 직원이 전기를 끊어놓고간 포장마차 사장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도박 빚 갚느라 업소를 넘긴 바지사장을 응징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동네 건달이다. 보스 격인 손 영감(김갑수) 밑에서 하루하루 살다보니 마흔이 되어버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이곳에 영도파가 눈독을 들이고, 고향을 떠났던 용강(최무성)이 마약을 들고 숨어들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생존투쟁이 벌어진다.
소설 ‘고래’로 유명한 천명관의 2022년 감독 데뷔작. ‘구암의 건달들은 아무도 양복을 입지 않는다’로 시작하는 김언수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영화는 소설과 달리 ‘망망대해 한복판에 배가 떠있다. 마음대로 내릴 수 없다. 도망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혼자 움직일 수도 없는 그 배를 사람들은 멍텅구리배라 부른다’로 시작한다. 희수는 같은 모자원 출신 인숙(윤지혜)과 함께 먼 바닷가에서 펜션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꿈을 갖고 있지만, 구암에 발이 묶인 존재라는 점에서 멍텅구리배와 닮았다.
꾸역꾸역 살아가는 영화 속 조폭들의 삶에선 비린내가 난다. 이곳에선 가난할수록 높은 곳에 산다. 바닷가 언덕 비탈길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눈에 인생은 기가 막힌다. 삶은 밑바닥인데 집은 하늘에 닿아 있다니. 천명관식 누아르가 그려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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