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현 “어떻게 저 얼굴로 그런 못된 연기를… 많이 놀라세요”

최보윤 기자 2024. 2. 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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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드라마 ‘나의 해피엔드’서 악녀로 변신한 배우 소이현

코트를 벗으니 품이 큰 흰 셔츠가 걸음걸음에 찰랑댄다. TV조선 주말미니시리즈 ‘나의 해피엔드’에선 악역 때문인지 주로 검은색 의상에 싸늘하고 섬뜩한 표정을 고수했던 배우 소이현(40). 새하얀 피부에 화사한 미소를 한껏 끌어올린 그녀가 순백의 셔츠까지 차려입으니, 꽃대가 긴 백합이 바람에 휘날리는 듯했다. 2001년 슈퍼모델로 데뷔하던 순간이 새삼 떠올랐다. 여리여리한 그때 열일곱 모습 같은데 올해로 벌써 결혼 10주년을 맞는 두 아이의 엄마. 마냥 순수해 보이는 지금 이 모습도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2년 만에 드라마 주역으로 복귀한 배우 소이현은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어느 것이 진짜 행복이고 어느 정도 선에서 만족을 해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내가 가져야 하는가 등에 대해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직업을 갖고, 가정을 이루며, 사회 일원으로 역할을 하면서 자신을 내려놓고 버릴 줄 아는 것을 배우고 얼마나 잘해내야 하는지도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나의 해피엔드’ 13·14회 방송은 이번 설 연휴 기간을 지나 17일과 18일에 방송될 예정이다./고운호 기자

“지금 제가 선해 보이신다고요? 드라마 보시는 분들은 그렇게 말씀 안 하시던데(웃음).”

서울 논현동 소속사 회의실에 앉아 입을 한껏 열고 웃는 모습을 보니, ‘이 모습이 소이현이구나’ 고개가 끄덕여졌다. ‘가식’이란 단어와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은 여배우 중 하나. 결혼 10주년 리마인드 신혼여행을 다녀오면서 이번 인터뷰 시간을 맞추기 위해 여장을 채 풀지도 않고 서둘렀다고 했다. 양가 부모까지 모시며, 아이들과 어찌나 신나게 놀아줬는지 코맹맹이 소리가 가시지 않았다. 가정에도 충실하고 배우로서 책임도 다하는 모습이었다.

이번 드라마에서 소이현은 성공한 동창생 서재원(장나라 분)에게 비뚤어진 복수심을 품고 서재원의 가정을 파괴하며 위기에 빠뜨리는 권윤진 역할을 맡았다. 누가 봐도 비난하며 손가락질할 수밖에 없는 사회악 같은 존재. 드라마를 총괄하는 조수원 감독조차 “애들 잘 키우면서 예쁘게 가정 꾸리는 배우를 데리고 내가 이렇게(까지 못된 역할을 맡기는 것) 해도 되나”라고 소이현에게 되물을 정도였다.

소이현은 “오랜만에 심장이 뛰는 대본을 만났다”며 반색했다. “결혼하고, 아이도 있는 30·40대 여배우들에겐 예전보다 많은 기회가 주어지진 않거든요. 주인공 자리에서 물러나야 되는 것도 배우고, 예전엔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이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되는 것이죠. 작품 하나하나 너무 귀한 거예요. 그런 시기에 이렇게 설레는 작품을 만나게 되니 더욱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어요.”

배역을 표현하는 데 이렇게까지 여러 방식으로 계산해보면서 연구한 적도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악독해지는 캐릭터 형성 과정(빌드업)이 짜릿하기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더군요. 성공을 위해 자신의 약점을 꽁꽁 숨기는 ‘우리 주위의 서재원’이나, 열등감이나 질투심, 집착 같은 걸 달고 사는 ‘우리 주위의 권윤진’이 적지 않다는 것을요.”

극 중 장나라의 남편인 손호준(왼쪽)과 불륜을 저지르는 소이현./TV조선
무명 작가 소이현이 CEO이자 친구인 장나라(오른쪽)와 냉랭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소이현의 검은 드레스와 장나라의 흰 원피스가 대조적이다./TV조선

드라마의 주축은 양극성 장애인 서재원이 숨기려고만 했던 자신의 병을 인정할 용기를 얻는 과정으로 펼쳐진다. 조수원 감독은 “평생 양극성 장애를 앓으면서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었던 윈스턴 처칠 총리처럼 평범해 보이는 내 옆의 친구나 가족도 이런 마음의 고통을 지며 살아가고 있을 수 있다”면서 “최근 우울증, 조울증 등 다양한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많아지는데도 정신병과 관련된 대다수의 정보가 범죄 뉴스를 통해 소비되고 있고, 인식 또한 부정적인 것을 보면서 이슈를 양지로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수한 일부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누구나 병을 앓을 수 있고, 터부시하는 편견을 개선하자는 것이 감독의 의도였다.

‘나의 해피엔드’는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주제에, 속도감 있는 연출과 세련된 미장센,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까지 갖춰지면서 국내 넷플릭스 등 OTT는 물론 해외 시장에서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북·중미 57국을 포함해 유럽 52국, 중동 36국 등 전 세계 179국에 선판매됐다. 글로벌 OTT 플랫폼 비키(Viki)에선 평점 10점 만점에 9.1점을 기록하는 등 수작(秀作)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글로벌 TV·영화 비평 사이트 IMDb 역시 8.2점으로 국내 화제 드라마였던 ‘부부의 세계’(8.0)나 ‘무인도의 디바’(8.0), ‘7인의 탈출’(6.1) 등에 비해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후반부의 이야기를 주도하는 소이현은 “앞으로 남은 4회 방송에서 권윤진이 얼마나 더 악독해지는지 보면 놀라실 것”이라면서 저도 연기를 하면서 ‘이 정도면 권윤진이 정신병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며 웃었다. 소이현의 내재적 쾌활함이 아니었다면, 드라마 속 권윤진과 서재원의 대치는 지금같이 서로를 향해 당기는 팽팽한 활시위 같은 긴장감은 주지 못했을 것이다. 온라인 실시간 댓글에서 ‘TV 보면서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다녀오겠다’는 반응이 속출하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한없이 순해 보이고 착해 보이는 커다란 눈망울의 두 여배우가 금방 터져버릴 듯 시한폭탄 같은 독기를 품고 있으니 극과 극의 대조가 화면을 꽉 채운다.

그는 ‘재미’를 중요시하는 듯했다. 오랜 친구 같았던 남편(배우 인교진)과 평생 재밌게 살겠구나 하는 생각에 결혼을 했고, 어느덧 연기를 생활로 하며 ‘밥벌이의 재미’를 느끼게 됐다고 했다. “저요? 저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다음에는 어딘가 나사 빠진 역할 해보고 싶어요. ‘얼굴 그렇게 쓸 거면 나 줘’ 이런 얘기 나올 수 있는 그런 역할요. 저 술도 좋아하고요, 제가 술자리에선 또 얼마나 재밌는데요!” 인터뷰를 하다 보니 30분 전에 이미 ‘(인터뷰 예정) 시간이 다 됐다’는 신호가 왔지만, 누구도 그녀를 막을 순 없었다. 문득 이 자리에 커피 대신 술이 놓여 있었으면 어땠을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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