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임금피크제는 장년세대 망신주기다

김두현 변호사 2024. 2. 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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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근속자 월급 반토막, 노조 있어도 막기 어려워
전국 법원서 정당성 소송, 정년연장 등 보상 있어야
김두현 변호사

대개 직장은 다닐수록 급여가 오른다. 경력뿐만이 아니라 물가 인상 때문에라도 그렇다. 그런데 오래 다니면 임금이 되레 절반이나 깎이는 경우도 있다. 바로 임금피크제다.

임금피크제는 당시 정부의 적극 권고 아래 2010년 공공기관과 공기업부터 시작돼 2014년부터는 민간기업까지 다수 도입됐다. 2019년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전체 사업장의 21.7%, 300인 이상 대기업 중에서는 54.1%가 임금피크제를 적용하고 있다.

임금피크제는 거칠게 말해 나이가 많다고 임금을 깎는 제도다. 나이가 들수록 노동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관념에 기반한다. 기준은 보통 55세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일을 갑자기 더 못하게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더 잘 할 수 있는 부분도 많다. 행정·사법·입법부만 봐도 대법관 평균나이는 55세 이상이고 국회의원 평균나이는 58세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은 일반 회사 정년을 초과한 63세이고 국무위원 평균도 60세 이상이다. 회사도 임원, 회장님은 대부분 55세 이상이 아니던가.

노동법 중에는 연령을 이유로 한 근로조건 차별을 금지하는 법도 있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고령자고용법)이다. 이 법 제4조의4는 연령을 이유로 한 채용 임금 승진 등에서의 합리적 이유없는 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강행법규이므로 이에 위반한 차별적 근로조건은 모두 무효다. 그런데 임금피크제가 바로 이 법이 금지하고 있는 연령을 이유로 한 임금차별이다. 하지만 과거 다수의 법원은 고령자고용법에도 불구하고 임금피크제가 무효가 아니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정년보장과 관련이 있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정년 60세가 법으로 강제되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빠른 고령화로 노인빈곤 문제가 켜졌다. 길게는 10년에 이르는 퇴직시점과 연금수급 개시 시점 사이의 큰 간극도 문제가 됐다. 이에 2013년 국회는 고령자고용법을 개정해 법률로 정년 60세를 강제했다(법 제19조). 경영계는 반발했고, 오랜 숙원이었던 임금피크제의 병행 도입을 강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고령자의 임금을 깎는 제도는 고령자고용법의 근본 취지에 어긋난다. 이에 결국 여야는 논의 끝에 정년연장시 ‘사업장 여건에 따라 임금체계를 개편’하도록 하는 정도로 입법했다(법 제19조의2). 노사가 여건에 따라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은 정부의 적극 권고 아래 근로자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임금피크제를 밀어붙였다. 소송이 이어졌고 결국 2022년 5월 대법원은 도입 목적이 부당하거나 불이익이 과도하고, 적절한 보상이 없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그럼 임금피크제는 다 무효가 되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대법원 판결을 반대로 말하면 도입목적이 정당하고 불이익이 적으며 정년연장을 포함한 적절한 보상이 있는 등 ‘합리적 이유’가 있으면 유효하다. 그래서 다시 소송이 시작됐다. 어느 정도가 ‘정당하고, 과도하고, 적절한지’를 전국 법원에서 다투는 중이다.

하지만 ‘55세부터 5년간 매년 10%씩 감액한다’는 숫자를 현실에 대입해보자. 월 500만 원을 받던 54세 부장의 월급이 이듬해 갑자기 50만 원이 줄어들고, 마지막 해에는 250만 원만 받게 되는 게 바로 임금피크제다. 입사 30년만에 신입사원 수준의 월급을 2024년에 받게 된다. 이건 합리성의 문제가 아니라 망신주기의 문제다.

이런 제도를 근로자가 순순히 받아들였을 리가 없다. 그리고 노동법은 이처럼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할 경우 과반수 노조 또는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이런 근로자 보호 제도 덕분에 그나마 절반가량의 회사에는 임금피크제가 도입되지 못했다. 그럼 나머지 회사는 어떻게 된 일일까.

먼저 노동조합이 없는 회사에서는 부서장이 근로자 개별로 임금피크제 동의서를 받아버렸다. 판례에 따르면 이런 방식의 동의는 무효이고 근로자끼리 숙의를 거쳐 자유롭게 동의해야 하지만, 감히 절차문제를 걸고 넘어지기는 어려웠다. 노동조합이 있어도 쉽지 않았다. 노동조합에 파업권이 있다지만 사용자에게는 그보다 훨씬 센 인사권과 경영권이 있다. 징계 전보 대기발령은 기본이고, 구조조정으로 정리해고를 하거나 사업부를 쪼개서 매각해버릴 수도 있다. 근로자는 금방 흔들리고 결국 사측 요구를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 그렇게 대기업 절반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었다.


징계로 감봉을 당해도 임금 감액은 10%를 넘을 수 없고(근로기준법 제95조), 휴업으로 일을 못해도 30%를 넘을 수 없다(법 제46조). 그런데 임금피크제는 그냥 회사를 오래 다녔다는 이유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월급을 반토막을 내버린다. 정말 합리적 이유가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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