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 칼럼] 우리 시대의 올바른 복지 원칙
2014년 2월 26일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났다.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생활고를 겪던 어머니와 두 딸이 번개탄으로 동반 자살을 선택한 사건인데, 현장에서 ‘집세와 공과금이 밀려 죄송하다’는 메모와 현금 70만 원이 든 봉투가 발견됐다. 선량하고 정직한 보통 사람의 안타까운 죽음은 많은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고,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비판과 성찰의 계기가 됐다. 이후 정치·사회적 논의를 거쳐 일명 ‘송파 세 모녀 법’이 세상에 나왔다. 2015년 7월 시행된 개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긴급복지지원법,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이 그것이다.
‘송파 세 모녀 법’은 누구라도, 어떤 이유로든 경제·사회적 약자가 되었을 때 공공부조 등의 복지와 경제·사회적 지원이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합의를 담아낸 것으로, 2000년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 이후 우리나라 복지 역사에서 기초안전망을 강화한 중요한 성과물이다. 핵심은 국민기초생활보장의 맞춤별 개별 지원을 강화하고, 긴급복지 지원을 확대하며, 복지 대상자의 효과적 발굴을 위해 단전·단수·건강보험료 체납 등의 관련 정보를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때부터 우리나라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갖게 된 것이다.
2019년 11월 2일 성북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70대 어머니와 40대 세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성북 네 모녀 사건’이다. 3개월 치의 건강보험료와 월세를 못 냈고, 집 우편함에 채무이행 통지서들이 쌓여 있었다. 급격하게 위기로 내몰렸기 때문에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던 사례다. 2022년 8월 21일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69세 어머니와 40대 두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수원 세 모녀 사건’이다. 어머니는 암 환자였고, 큰딸은 희귀병을 앓았다. 소득이 없고 건강보험료가 16개월이나 연체되었음에도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행정당국은 이들의 행방을 알지 못했고, 세 모녀는 긴급생계와 의료비 지원뿐만 아니라 국민기초생활보장 혜택도 받지 못했다.
2024년 2월 2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빌라에서 뇌 병변 장애가 있는 10살 딸과 40대 아버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장애인 딸의 아버지가 ‘미안하다’는 문자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인데, 정권이 교체되고 다수당이 바뀌어도 이런 애통한 일은 계속되고 있다.
대선 공약으로 약자 동행을 내세웠고 약자 복지를 강조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정책 사기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야당도 사각지대로 내몰린 국민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긴 어렵다. 윤석열 정부의 약자 복지가 잘 작동하도록 견인하고 대안을 내놓은 것 대신에 기본소득 방식의 무차별적 포퓰리즘에 매몰된 채 세월을 낭비했기 때문이다.
약자 복지는 나쁜 게 아니다. 어려운 처지에 내몰린 경제·사회적 약자에게 필요에 상응하는 복지를 제공하겠다는 약자 복지의 취지는 전적으로 옳다. 그런데 문제는 약자 복지의 목적이 약자 선별에만 강조점을 두는 기존 약자 복지 방식만으로는 달성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복지를 요구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자산조사를 시행해서 약자를 선별하고 기초보장을 제공하는 선별 방식은 유용한 도구임이 확실하다. 그런데 여기에만 머문다면 이는 선별주의(selectivism) 노선이라는 낡은 복지 이념이 되고 만다. 그러니까 약자 복지가 작은 정부의 무책임한 선별주의 노선으로 이해되는 한,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의 작동에도 불구하고 경제·사회적 약자에게 일어나는 안타까운 비극의 반복을 막긴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올바른 복지 원칙은 ‘보편적 복지’다. 보편적 복지는 복지국가의 사회보장 원리로서 ‘누구라도’ 각종 재난 실업 질병 산재 은퇴 출산 육아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 소득의 단절이나 급격한 감소를 겪거나 혹은 생의 주기에 따라 각종 사회서비스가 필요할 때 사회안전망과 복지 체제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는 제도적 장치를 말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보편적 복지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먼저 보편적 복지가 낭비적·비효율적이라는 인식을 극복해야 한다. 보편주의(universalism)는 필요와 조건을 따지지 않고 모두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방식의 무차별주의와 다르다. 그러니까 보편적 복지는 언제나 필요와 조건을 따지며, 이 과정에서 ‘선별’이라는 도구를 활용한다. 보편적 시민권인 복지 필요의 충족을 낭비적·비효율적인 것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다음으로 보편적 복지는 돈이 많이 들고 재원 조달이 어려워 지속가능성이 낮다는 인식을 극복해야 한다. 보편적 복지가 선별주의 노선보다 돈이 더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재원 조달과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는 훨씬 유리하다. 이는 선진 복지국가에서 입증된 사실인데, 보편적 복지가 경제와 선순환하면서 혁신적 역동적 경제성장의 조건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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