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214] 골 결정력 말고 득점력을 높이자
사투(死鬪) 벌인 준준결승이 독이 됐을까. 아시안컵 축구 4강전은 너무 허망했다. 호주랑 맞섰을 때는 애간장 녹기라도 했지. 후반 막판 동점 만들고 연장 가서 뒤집기까지 한 과정이며, 마지막 1분 1초의 초조함이며…. 공 점유율 72 대 28로 앞섰지만 ‘골 결정력’ 때문에 속이 탈 대로 탔다. 이래저래 생각해 볼 점이 많았는데.
‘한국은 초반부터 주도권을 잡았으나 이렇다 할 슛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여기서 ‘주도(主導)’는 합당한 표현일까? ‘주동인 처지가 되어 이끎’이 ‘주도’이니, 같은 일이나 목표를 힘 모아 이루려 앞장설 때 어울린다. 가령 한국·미국·일본이 북한·중국·러시아와 대립할 때, 이쪽은 한국이 주도했다 할망정 한미일이 대립을 주도했다 할 수 없다는 얘기. 하물며 서로 이기려는 축구에서 어느 쪽이 ‘우세(優勢)했다’ 해야지 ‘주도’라 함은 얼토당토않다. 한국에서는 손흥민이나 이강인이 주도했다면 말이 돼도.
게다가 경기를 주도할 권리인 ‘주도권’은 대체 무엇이고, 누가 주나. 한국팀 안에서라면 감독이 정하거나 자기들끼리 기대고 밀어주는 선수가 있을 수 있다. 한데 공 흐름 따라 치고받는 축구에서, 프리킥·스로인·골킥 따위 부분적 ‘공격권’은 있을지언정 주도권 역시 어불성설. ‘우세를 잡았다/보였다’ 하면 된다.
‘쐐기포 기회가 여러 번이었지만 골 결정력 부족이 아쉬웠다.’ 실제로 한국은 16강전까지 득점 기회 14차례 중 여덟 번을 놓쳐 실패 횟수 2위였다 한다. 문제가 또 있다. ‘결정’은 행동이나 태도를 분명히 정한다는 뜻. 그렇다면 골 결정력은 ‘골 넣기로 마음먹는 힘’이나 ‘(아리송할 때) 골이라고 판정하는 능력’이지 ‘득점력’이나 ‘골 성공률’을 가리킬 수 없다.
‘손에 땀을 쥐는’ 축구는 그만 보고 싶다. 흘려야 마땅한 땀을 손에 쥐다니 생뚱맞지 않은가. 진땀이 나도, 우세하지 않아도 괜찮다. 기회 잡으면 후련한 득점으로 스트레스 좀 풀어줬으면 좋겠다. 욕심이 너무 야무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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