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비장애의 벽’ 감동 하모니로 허문… 예술의전당 무대 선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평소에는 소속부터 이야기하지만 오늘은 잠시 피아니스트로 돌아왔습니다(웃음).”
시각 장애 피아니스트 김예지(43) 의원의 피아노 연주와 노래 솜씨를 한 번에 들어볼 기회는 드물다. 지난 7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그런 자리가 마련됐다. 동갑내기 친구인 비장애 소프라노 조선형씨와의 듀오 콘서트인 ‘우리 함께 행복한’ 무대였다.
전반에 붉은 드레스 차림으로 안내견 조이와 함께 무대에 올라온 김 의원은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와 리스트가 편곡한 슈만의 ‘헌정’을 연주했다. 선천성 망막 색소 변성증으로 시각 장애를 갖고 태어난 김 의원은 숙명여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국민의힘 비대위원인 그가 마이크를 잡고서 “점점 말하는 게 더 편해진다. 오늘은 피아니스트로 일탈했다”고 말하자 객석에서도 웃음꽃이 피었다.
이날 ‘월광’ 소나타 1악장에서는 무대 조도(照度)를 한껏 낮춰서 객석에도 어둠이 깔렸다. 조명이 사라지니 음악 앞에서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김 의원이 연주하는 동안, 조이는 얌전하게 피아노 곁에 엎드려서 간간이 꼬리를 흔들었다. 폭발적인 마지막 음과 함께 김 의원이 일어서자 조이도 따라서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후반에 핑크색 드레스로 갈아입은 김 의원은 동료 소프라노 조씨와 함께 듀오 무대를 펼쳤다. 조씨가 헨델과 푸치니의 아리아를 부를 때는 피아노 반주를 맡았고, 둘이 건반 앞에 나란히 앉아서 포레와 브람스의 곡으로 피아노 이중주를 펼치기도 했다. 마지막 곡인 슈베르트의 가곡 ‘음악에(An die Musik)’에서 김 의원은 “오늘은 피아노 외에 다른 것들도 보여드리겠다”면서 조씨와 함께 ‘깜짝 이중창’을 선보였다. 노래는 프로페셔널 가수 실력은 아니었지만, 깨끗한 음색으로 알토 파트의 화음까지 소화했다. 앙코르 곡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에서 돌림 노래 형식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노래하던 도중에 조씨가 연신 눈시울을 붉히자 김 의원이 토닥토닥 등을 두드렸다. 앙코르 직전에 김 의원은 “오늘 음악회에서 많은 분이 위안을 받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바람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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