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금 175억 쓰는데… 정년 없는 서울시향

김성현 기자 2024. 2. 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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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 음악감독 재임 시절 생긴 ‘하위 5% 탈락 평가제’ 死文化
평가도 정년도 없는 악단으로… 이대로면 젊은 피 수혈 힘들어
지난 1일 예술의전당에서 야프 판 즈베던(가운데)의 지휘로 연주하는 서울시향. /서울시향

“국내 유수 교향악단들은 서울시향을 빼고는 정년 제도가 있어요. ‘서울시향은 입단만 하면 평생 보장된다’는 오명을 쓰고 있는 게 법인 평가에서도 약점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 문성호 시의원이 행정 사무 감사에서 이렇게 질의했다. 당시 손은경 서울시향 대표는 “정년 제도는 저희가 마련해서 현재 노조와 계속 이야기하는 중”이라고 답했다. 같은 달 서울시의회는 예산안 심사에서도 “서울시향은 새 단원을 제외한 단원들이 정년 없이 근무할 수 있어서 기존 단원의 고령화에 따른 공연 질 하락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서울시향은 한 해 세금 175억원을 서울시에서 지원받는 공립 예술 단체다. 하지만 서울시의회의 지적처럼 정년이 없는, 말 그대로 ‘평생 직장’이다. 국내 다른 20여 국공립 오케스트라는 대부분 정년이 있다. 같은 서울시 산하 예술 단체인 서울시무용단·합창단·극단·뮤지컬단·국악관현악단 등 다섯 단체의 정년이 만 60세인 것과도 대조적이다.

왜 이런 기현상이 벌어졌을까. 연원을 따지면 지난 2005년 서울시향 법인화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음악 감독으로 취임한 지휘자 정명훈 재임 시절(2006~2015년)에는 단원 정년은 없는 대신 상시 평가를 통해서 하위 등급 5%를 재계약하지 않을 수 있는 강력한 규정이 적용됐다. 하지만 정 감독 퇴임 이후 이 규정은 10년 가까이 사문화(死文化)됐다. 상시 평가라는 ‘채찍’은 사라지고 ‘무(無)정년’이라는 ‘당근’만 남은 셈이다.

그래픽=정인성

현재 서울시향 단원은 부지휘자와 악보·악기 위원을 포함해 총 99명. 이 가운데 만 60세 이상은 7명, 만 70세 이상도 1명이다. 문제는 정년 제도가 없으면 향후 고령 단원의 비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물론 ‘고령화 사회에서 연령과 예술적 기량은 갈수록 무관해진다’는 반론도 있다. 민간 악단 중심의 미국은 정년 규정이 따로 없는 경우도 많다.

반면 시민 혈세가 들어가는 국공립 단체에 정년 제도마저 없으면 ‘젊은 피 수혈’이 힘들어지고 세대 간 불균형이 심화될 것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베를린·빈 필하모닉 등 세계 최고 명문 악단들이 65세 정년 규정을 두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서울시향도 ‘하위 5% 해촉 가능’ 문구를 삭제하는 대신에 정년 제도를 새롭게 도입하기로 하고 단원 노조에도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만 60세를 정년으로 하는 대신에 촉탁 계약직으로 5년 연장할 수 있는 방안이다. 음악 칼럼니스트 유정우씨는 “나이 든 단원들도 실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무대에 설 수 있다. 정년 규정을 도입하는 대신에 퇴직 이후에도 연주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계약직 제도를 마련한 유럽 악단들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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