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태 “‘돼지’처럼 팔려다닌 탈북자, 현실은 웹툰보다 더 끔찍했다”
배우 유지태(48)의 소속사가 있는 서울 강남구에서 7일 그를 만났다. 감색 니트 차림의 유지태는 작년 드라마 ‘비질란테’에서 괴력의 경찰 ‘조헌’ 역할을 맡았을 때보다 팔뚝이 우람해 보였다. 그 팔뚝에서 재중(在中) 탈북자 인권 문제를 다룬 웹툰 ‘안까이’가 탄생했다. 탈북 여성이 중국에서 겪는 시련을 중심으로 탈북자 강제 북송 같은 현실을 녹여낸 웹툰이다. ‘안까이’는 ‘아내’의 함경도 사투리. 유지태가 글 작가를 맡고, 만화가 제피가루가 그림을 그렸다. 카카오페이지에 연재한 웹툰을 최근 완결한 소감을 묻자, 유지태는 “괴로웠다”고 말했다. “(탈북자의) 힘든 상황을 묘사하며 감정이입을 했다.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있을까란 생각과 함께 감정에 젖어들었다.”
-왜 중국에 있는 탈북자를 소재로 삼았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가장 큰 인권 문제가 재중 탈북자라고 생각했다. 배우로 활동하며 인권을 비롯한 사회적 문제에 책임감이 커졌다. 어릴 적 가난했던 개인사와도 연관이 있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어머니와 단칸방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았다. 그래서인지 가난한 환경에 있거나, 마음의 빈곤을 느끼는 사람들이 (저를) 더 동요시킨다. 탈북자뿐 아니라 재일교포, 난민 문제 등에 관심이 있다. 그중 탈북자가 먼저 이야기로 나온 것이다.”
-당신이 파악한 탈북자의 현실은 어떤가.
“탈북과 관련된 NGO(비정부기구) 관계자, 탈북자를 여럿 만나며 취재했다. 말 못 할 이야기가 많았다. 탈북자가 겪은 고초가 상상을 초월하더라.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도 사실은 잘 포장돼 있는 부분이 있었다. 선행으로 알려진 것들도, 르포 관점에서 자세히 취재해보면 다르게 보였다.”
-웹툰은 현실과 얼마나 닮았나.
“작품을 만들 때 최대한 많은 레퍼런스를 확보하려고 한다. 논문과 소설 등 많은 자료를 참고하려 했다. 웹툰처럼 탈북 여성과 조선족 남자가 사랑하는 관계가 실제로 있는지가 궁금했다. 대전에 그런 사례가 있어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군인 출신으로 산과 강을 타고 탈북한 여성이었다. 굉장히 강하고 억척스러운 모습이 주인공에 어느 정도 반영됐다.”
웹툰 ‘안까이’에는 유지태가 “말 못 할 이야기”라고 표현한 탈북자의 현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6일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과 통화에서 탈북자 강제 북송에 대한 우려를 말했듯, 수십 년째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웹툰의 배경은 2010년대 전후 중국. 주인공 ‘김옥’은 탈북 과정에서 브로커에게 속아 딸과 헤어지고, 중국의 한 마을에 팔려간다. 그곳에서 탈북자들은 ‘돼지’라고 불리며 천대받고, 중국 공안을 피해 숨어 산다. 마약 거래에 동원됐다가 발각돼 죽어나간 이들도 다수다. 김옥은 여러 사람에게 팔려 다니며 이미 깊은 상처를 얻은 뒤에야 조선족 남자 ‘청림’의 도움으로 딸과 재회한다.
-딸과 재회하는 걸 빼면, ‘사이다’(시원한 전개)는 없다.
“탈북을 소재로만 사용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거운 이야기이다 보니, 희화화해볼까도 생각해 봤다. 강남에 사는 사람이 시골 사정을 잘 모르듯, 평양에서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더라. 철없는 북한 고위급 자제가 중국인 남자친구를 잘못 만나 팔려간 사례도 접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로 이야기를 틀어볼까 했지만, 주제와 멀어질 것 같아 그러지 않았다.”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10여 년 전에 구상한 이야기여서 (웹툰의) 트렌드와 맞지 않을 거다. 원래 영화 시나리오로 쓴 이야기인데, 그 사이 영화 시장이 변하고 제작이 미뤄지며 대안으로 웹툰을 찾았다. 트렌드를 따라가는 게 ‘바보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듯, 트렌드도 빠르게 변한다.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는, 정체성을 매력으로 가꾼 이야기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안까이’가 상업적 성공은 못 하더라도 누군가가 이를 보며 또 다른 콘텐츠를 만드는 계기로 삼는다면, 제 일이 충분히 가치 있을 거다.”
-한 작품에 10년을 투자한 이유는.
“작품 하나하나가 자식 같은 생각이 든다. ‘안까이’가 10년 넘게 걸렸듯, 감독으로 처음 연출한 장편 영화 ‘마이 라띠마’도 2013년 개봉할 때까지 13년이 걸렸다. 어느 순간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만든 영화제작사 ‘유무비(有無飛)’의 뜻은 ‘있거나 말거나, 뜨거나 말거나 창작을 하자’는 거다. 웹툰 ‘안까이’도 영상 제작이 정해진 건 없지만, 드라마 대본을 만들어뒀다. 저는 포기란 게 없는 고지식한 사람이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1시간여 인터뷰를 마친 유지태는 건국대로 향한다고 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건국대 영상영화과 전임교수로 강단에 섰다. 1998년 영화 ‘바이준’으로 데뷔해, ‘주유소 습격사건’ ‘올드보이’부터 최신작 ‘비질란테’까지 출연한 배우이자 연극 제작자, 영화 감독인 그에게 직함이 하나 추가된 것. 그에게 삶의 정체성을 묻자, 최근 수업에서 일화를 들려줬다.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지 말라고 수업에서 말한 적이 있다. 제가 ‘크리에이터(창작자)가 돼야 한다’고 계속 말해 왔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고집이 센 편인가.
“고집이 있었으니까 월세살이에서 지금까지 살아왔을 거다. 아마 대부분 감독들이 다 고집스럽다. 그렇지 않으면 작품을 만들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상업성에 밀려 창의성이 점점 사라지는 시대에, 그걸 보존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특히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과 달리 위험 요소가 없는 AI 배우가 더 인기를 끌 가능성도 커졌다. 이제 ‘배우나 잘해’란 말은 옛날이야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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