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공천 여론조사 업체가… “선거컨설팅” 총선장사
“부르는 게 값” 억대 비용 요구도
“여론조사 정보 활용 이해충돌 소지”
8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A선거컨설팅 업체의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컨설팅 계약서’에 따르면 해당 업체는 총 2000만 원에 이미지(PI) 콘셉트와 전략기조 수립, 캠페인 방향 수립, 메시지 자문, 홍보 자문 등을 패키지로 총선 예비후보들에게 제공한다. 이른바 선거판 ‘스드메’(결혼시장 내 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 패키지의 약자)인 셈이다.
선거기획 업체들의 기본 패키지 비용은 2000만 원부터 시작하며, 추후 선거 운동이 시작되면 현수막과 유세차 비용 등을 포함해 전체 비용은 억 단위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정해진 시장 가격이 없는 ‘한철 장사’이다 보니 예비후보들 사이에서는 “부르는 게 값”이라는 불만이 적지 않다고 정치권 관계자가 전했다.
무엇보다 문제는 예비후보들에게 컨설팅을 제공하는 선거기획 업체들 중 주요 정당의 예비후보 적합도 조사 등을 실시하는 곳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총선 공천 관련 적합도 조사를 6개 업체에 맡겼는데, 이들 중 3개 업체가 직접 선거 컨설팅 패키지를 판매하거나, 협력업체를 통해 관련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민주당 소속인 한 예비후보는 “당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업체가 특정 예비후보들에게서 돈을 받고 컨설팅을 제공하면 불공정 경쟁 문제가 발생한다”라며 “조사 정보를 활용해 컨설팅을 제공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일부 예비후보들은 적지 않은 비용 부담에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걱정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컨설팅을 받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 컨설팅은 기본적으로 해당 후보의 선거 승리를 위한 행동이기 때문에 이해충돌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며 “선거기획 업체가 여론조사를 실시한 지역에 출마하는 예비후보들에 대해선 컨설팅을 맡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수능 출제자가 과외하는 셈”… 컷오프 조사업체서 선거 자문 논란
선거컨설팅 장사
정치 신인들 불안한 심리 이용… 여론조사-공약 등 최대 1억 훌쩍
일부는 협력사 끼고 꼼수 컨설팅… “당무 관련땐 컨설팅 제한 조치를”
“메시지, 현수막 문구, 경쟁 상대에 대한 전략 등을 모두 신경 써야 하는데 선거판을 잘 모르는 정치 신인들은 불안하고 막막한 마음에 컨설팅 업체라도 찾아가게 된다.”(수도권에 출마하는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
여야 모두 공천 경선 국면이 본격화하면서 총선 출마자들은 불안한 마음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선거 컨설팅 업체들을 찾고 있다. 해당 컨설팅 업체들이 주요 정당에서 공천 및 여론조사 작업 등에 관여했거나, 여전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암암리에 알려지면서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컨설팅을 받으려는 것이다.
민주당 총선 공천 컷오프와 직결되는 경선 관련 적합도 조사를 담당한 업체들도 이런 컨설팅을 제공하는 업체로 등록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치권에선 “수능 출제자에게 과외 받는 것과 똑같은 불공정함”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해당 컨설팅 업체들도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인정하지만 이를 법적으로 규제할 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 “2000만 원부터 시작해 1억 원 넘기도”
한 컨설팅 업체는 ‘집중 컨설팅’ 명목으로 전직 청와대 행정관의 스피치 및 연설문 작성 프로그램, 전직 기자의 미디어 대응 방법, 여론조사 전문가의 인지도 호감도 높이는 비법, 유튜버의 온라인 대응법 등의 특강 중 3가지를 제공한다. 여기에 출마 지역 내 언론사와 인터뷰 주선, 여론조사 방법 자문 등을 추가하면 비용이 1000만 원 이상씩 올라가는 식이다.
선거 2주 전부터 본격적인 유세전이 시작되면 비용은 억 단위로 올라간다. 컨설팅 비용 외 여론조사와 현수막 유세차 등 기본 홍보비용이 1억 원 이상 추가된다.
동아일보가 B홍보업체로부터 받은 견적에 따르면 3차례 외벽 현수막을 걸고 거리에 현수막을 내거는 데 드는 비용은 2721만2900원이었다. 유세차 대여 비용도 선거운동 기간(14일) 사용 기준 3000만 원으로, 유세차 래핑 시 한 대당 20만 원이 추가로 들어간다.
여론조사도 표본 수, 조사 방식(유선 ARS, 모바일 등)에 따라 천차만별로 200만∼1100만 원까지 오르기도 한다. 예비후보들은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홍보 수단으로 여론조사를 활용하는데, 세 번만 돌려도 많게는 3300만 원이 들어가는 셈이다.
여기에 선거 공보물, 현수막 등에 사용되는 선거용 프로필 사진 촬영 가격도 100만∼300만 원 사이에서 형성된다. 명함과 당 점퍼, 선거운동 물품 등까지 포함하면 비용은 더 추가될 수밖에 없다. 한 업체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여성 후보의 경우 헤어, 메이크업 비용 등을 포함해 12장짜리 사진이 90만 원, 당 유니폼 등 의상 추가 시 160만 원짜리 상품이 있다”고 했다.
● 민주당 적합도 조사 업체 선거 컨설팅 판매 논란
당의 공천을 받아야 하는 예비후보들은 컨설팅 업체의 제안을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한다. 컨설팅 업체 중 일부가 당의 예비후보 적합도 조사를 같이 진행하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선거컨설팅 업체 ㈜박시영의 대표이사인 박시영 전 청와대 행정관의 경우 지난해 5월까지 민주당 정치혁신위원회에서 공천 관련 제도를 논의하는 정당 분과에서 활동했다. 그는 뒤늦게 “사업자가 공천의 규칙을 정하는 게 불합리하다”란 비판이 일자 물러났다.
이 밖에도 이번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경선 관련 적합도 조사를 담당한 6개 업체 중 3곳이 정치 컨설팅 업체로 등록돼 있다. 이들 중 일부 업체는 이해충돌 소지를 피하기 위해 협력업체를 끼고 우회적으로 선거 컨설팅을 제공하는 꼼수도 동원하고 있었다. 해당 업체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민주당 여론조사를 담당하면서 선거 자문을 해주면 외부에서 공정성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보니 본사에서 직접 컨설팅하지 않고 협력업체를 통해 하고 있다”며 “우회하는 형태이지만 어차피 (본사가) 같이 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정치권에선 “업계 카르텔” “이해충돌”이라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소속으로 뛰고 있는 한 예비후보는 “당의 적합도 조사 결과 관련 정보를 미리 알면 컷오프 여부나 전략 공천 가능성을 먼저 유추하고 물밑 작업도 할 수 있지 않느냐”며 “이들 업체에 돈 내고 컨설팅을 받지 않는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예비후보도 “적어도 당무에 개입했던 사람은 최소 다음 선거까지는 컨설팅을 못 하게 제한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반발했다.
윤명진 기자 mjlight@donga.com
안규영 기자 kyu0@donga.com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의원 꿔주기, 지역구 나눠먹기…여야, ‘꼼수 위성정당’ 속도전
- [김형석 칼럼]대한민국의 주인은 누구인가
- KBS가 빠뜨린 질문들… 대담이 기자회견을 대체할 순 없다 [사설]
- 공공기관 사칭 스미싱 20배 폭증… 내 보이스피싱 ‘방어력’은?[인터랙티브]
- [횡설수설/조종엽]“이른바 파우치, 외국회사 그 뭐 쪼만한 백”
- 대선 패배 놓고 ‘이재명 탓’ ‘문재인 탓’… 이제 와 서로 손가락질 [사설]
- 변을 보기 위해 변기에 15분 이상 앉아 있다.
- 조국 ‘입시비리·감찰무마’ 2심도 징역 2년
- [광화문에서/강경석]‘억 소리’ 나는 저출산 정책… 효과 따져 장기 대책 세워야
- 양승태 건도, 이재용 건도 항소… 檢 항소권 제한 필요하다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