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전 골프장 강간살인…무죄 깨고 내려진 ‘징역 15년’ [그해 오늘]

이재은 2024. 2. 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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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골프장 강간살인’ 용의자 DNA 확인
일치자는 2003년 무기징역 선고받은 수형자
1심 “살해고의 단정 어려워” 무죄·면소 결정
2심 “피고인의 과격한 폭행이 직접적 사인”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지난해 2월 9일 서울고법은 ‘1999년 골프장 강간 살인’ 사건 피고인에게 무죄와 면소를 판결한 원심을 파기했다. 이 남성 측은 합의 후 성관계한 것이고 피해자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기미제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어떻게 뒤바뀐 것일까.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
1999년 강남 골프연습장 강간살인

사건이 발생한 날은 1999년 7월 6일이었다. A씨는 이날 새벽 서울 강남구에서 차량을 타고 가던 중 20대 여성 B씨가 착각하고 뒷좌석에 타자 그를 성폭행하기로 마음먹었다. B씨는 차를 잘못 탄 것을 알아차리고 내려달라고 했지만 A씨는 이를 거부하고 인근 골프연습장으로 향했다.

이후 A씨는 B씨의 저항을 억압하며 강간한 뒤 피해자의 머리를 주차장 바닥에 수차례 내리찍었다. 범행 후에는 의식을 잃은 B씨를 두고 공범과 함께 현장을 빠져나갔다. B씨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하의는 벗겨진 채 방치되다가 골프연습장 관리인의 신고로 병원에 이송됐다. 그러나 B씨는 수술할 수조차 없는 중상을 입은 상태였고 4일 후 숨지고 말았다.

경찰은 피해자 체내에서 나온 DNA 등을 확보해 수사에 착수했지만 범인을 찾아내지 못했고 사건은 장기미제로 분류됐다.

사건이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17년이 흐른 뒤였다. 2010년 제정된 성폭력처벌법에 따라 강간 등 살인 범행에 대해서는 혐의를 증명할 과학적 증거가 있으면 공소시효가 10년 연장됐기 때문이다. 또 ‘태완이법’(2015년 개정 형사소송법)으로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돼 경찰이 미제 사건을 다시 들여다볼 계기가 마련됐다.

서울경찰청 미제수사팀은 1995년 이후 발생한 성폭행 의심 살인사건을 추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대검찰청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DNA를 비교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1999년 강남 골프장 강간살인’ 사건 용의자의 유전자형과 A씨의 DNA가 일치한다는 감정 결과가 나왔다. A씨는 또 다른 강도살인죄로 2003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수형자였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수사기관은 재수사에 착수했고 장기미제 사건의 피고인을 22년 만에 법정에 세우게 됐다.

용의자 DNA 확인…22년 만에 기소

검찰은 A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 사형을 구형했지만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A씨가 피해자를 살해할 고의를 가졌거나 살해를 공모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A씨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성관계한 것은 인정할 수 있다면서도 그에게 적용 가능한 특수강간, 강간치사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완성됐다며 면소를 결정했다.

이에 검찰은 항소했고 2심 재판부는 원심과는 다른 판단을 내렸다. 범행 당시 A씨의 과격한 폭행이 B씨를 숨지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고 그의 진술 또한 납득할 수 없는 점이 많다고 본 것이었다.

재판부는 A씨가 공범으로 친형을 언급한 것에 대해서도 목격자 증언과 배치된다며 “이미 사망해 진술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형을 이용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A씨는 그간 “형이 차 안에서 B씨와 성관계한 것 같고 나는 형의 권유에 따라 차에 탄 뒤 피해자와 성관계했다. B씨와 함께 차에서 내렸는데 형이 B씨와 할 말이 있다며 내게 밖에 나가 있으라 해 주차장 밖으로 차를 몰고 갔다. 이후 형을 차에 태우고 주차장에서 나왔고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주장해왔다.

그러나 목격자 진술 등을 종합하면 사건 현장에서는 남녀가 싸우는 소리, 여성의 비명이 들렸기에 차량 안에서 “대화도 저항도 없이 성관계했다”는 A씨의 주장은 말이 되지 않았다. 골프연습장 관리인이 경찰에 신고한 시간 등을 봐도 A씨와 공범이 범행 장소에 머문 시간은 10분 남짓한 순간인데 이때 A씨의 진술 내용이 다 이뤄졌다고 보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즉 차량 밖에서 범행한 인물은 한 명으로 정리되며 피해자의 신체에서 DNA가 나온 A씨가 범인이라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아울러 재판부는 “피해자의 신체 상태를 고려하면 도저히 합의 하에 성관계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잔혹한 범행 수법 등을 고려할 때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A씨는 징역 15년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이 이를 기각하며 형이 확정됐다. 피해자가 숨진 지 24년 만이었다.

이재은 (jaeeu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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