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에서의 비바 카니발! [삶과 문화]

2024. 2. 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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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그랬냐는 듯 색이 바뀌었다.

그러니 유럽의 끄트머리 항구였던 베네치아는 예수의 무덤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떠나기 직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저속한 카니발을 즐길 수 있던 옛 시절의 핫플레이스였다.

올해 카니발은 2월 13일까지라니, 우리가 설을 쇠는 동안 베네치아는 멀리 피해 있다 잔뜩 돌아온 사람들과 질펀하게 축제를 벌일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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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 카니발 참가자. AFP 연합뉴스

언제 그랬냐는 듯 색이 바뀌었다. 스멀스멀 운하에서 번지는 안개를 따라 으슬으슬한 습기가 퍼지는 도시, 차가운 바닷바람까지 더해지는 겨울이면 '냉정한 푸른빛이 도는 회색' 정도가 딱 이 도시를 표현하는 색깔일 텐데. 생뚱맞게 노란색 붉은색 금색의 찬란한 잔치다. 유난히 깊었던 코로나19의 상흔은 다 잊은 듯 환히 웃는 이들로 가득한 베네치아.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독특한 가면을 쓴 카니발 인파가 들어찬 산마르코 광장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는 별명이 더 이상 무색하지 않다. 비바(Viva)! 카니발이다.

지난 몇 년간 느닷없는 유명세를 치른 새 부리 모양의 '흑사병 의사' 가면도 이제 흥겨운 축제의 소품이다. 40일간 금욕과 금식으로 참회하는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 내일은 없는 양 가면을 쓰고 모든 욕구를 풀어내는 축제가 카니발. 그러니 유럽의 끄트머리 항구였던 베네치아는 예수의 무덤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떠나기 직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저속한 카니발을 즐길 수 있던 옛 시절의 핫플레이스였다.

훈족의 공격을 피해 말발굽이 푹푹 빠지는 습지에 말뚝을 박아가며 바다 위에 어렵게 세운 도시. 지극히 현실적인 베네치아 사람들은 밀려난 땅보다는 앞에 펼쳐진 바다만 바라보고 살기를 선택한다. 유럽과 중동 사이에서 바닷길을 장악하고 무역을 좌지우지하며 르네상스 최고의 부자가 됐기에, 베네치아를 이끄는 최고지도자인 '도제'는 바닷물에 반지를 던지며 바다와 결혼하는 의식까지 치르곤 했다.

베네치아의 생계를 책임지는 상업은 천하게 여겨지는 대신 우대를 받았고, 순도 98.6%로 주조한 베네치아의 금화 두카트는 세계인이 가장 신뢰하는 국제통화였다. 실용주의로 똘똘 뭉친 베네치아 사람들은 초기 자금을 빌려주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나 전염병을 고쳐주는 유대인 의사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괜히 이곳을 무대로 활동한 게 아니었다.

온 세상과 연결된 바다는 위험도 가지고 왔다. 사람이 오가고 물건이 오가니 멀리 있던 병균도 함께 흘러오기 마련. 베네치아 사람들은 도시를 지키기 위해 역병이 도는 지역에서 온 선박과 선원은 북동쪽으로 한참 떨어진 라자레토 누오보섬으로, 전염병이 의심되는 주민들은 베네치아 본섬과는 완전히 분리된 라자레토 베키오섬으로 격리했다. 함부로 들였다간 어찌 될지 모르니 외딴 무인도의 시설에서 지켜보자는 건데, 그 기간이 바로 40일(quaranta giorni). 전 세계 뉴스를 장식하던 검역(quarantine)의 어원이다.

올해 카니발은 2월 13일까지라니, 우리가 설을 쇠는 동안 베네치아는 멀리 피해 있다 잔뜩 돌아온 사람들과 질펀하게 축제를 벌일 모양이다. 16세기에 세계 최초의 가이드북을 쓴 산소비노는 베네치아라는 이름이 라틴어 '베니 에티암(Veni Etiam)'에서 왔을 거라고 소개했다. '나도 여기에 왔다'는 뜻이다. 짧아서 아쉬운 이번 설 연휴, 우리 모두의 고향도 "나도 여기 돌아왔다"고 외쳐줄 옛 동무들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싶다. 세상이라는 거친 바다로 나서기 전 맘 편하게 퍼질러 놀고 좌충우돌 사고도 치며 우리식의 카니발을 보냈던, 그 다정한 기억의 장소에서 말이다.

전혜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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