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타협 정치로 가려면 정당·시민·언론 제 역할해야[중도, 그들은 누구인가]
지역정당·비례확대 등 다양한 제안
중앙당 분권화·다당제 요구 분출
제도 개선 중요하지만 부작용 경계해야
정치가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수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숙제이다.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핵심 행위자인 정당, 대표를 선출하는 제도인 선거, 사안들이 공적으로 심의되고 결정되는 장소인 국회를 개혁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들이 백가쟁명으로 쏟아진 배경이다. 그중에서 정당 조직의 분권화를 정치개혁의 핵심으로 보는 주장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런 주장들은 중앙당과 지도부에 권력이 집중되고 당원과 지지층이 당리당략을 위해 동원되는 구조에서는 작은 차이가 과도하게 확대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구체적으로 지역정당 허용, 비례대표 의석 확대,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상임위원회 권한 강화 등 다양한 방안이 거론된다. 하지만 현상 타파를 위한 제도적 처방이 또 다른 문제를 낳는 경우도 많았다. 실제로 2000년대 초 정치개혁을 한다면서 지구당을 폐지했으나 되레 정당의 불투명성이 높아지고 당원의 정당 소속감이 낮아지는 등 역효과를 낳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결국 제도 개선뿐 아니라 정치 엘리트와 시민, 언론이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해야 바람직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중앙집중된 정당 권력 분산
지역정당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여의도 중심의 정치인 대신 지역 주민에게 맡겨야 당리당략에 매몰될 위험성이 줄어든다고 주장한다. 서울에 중앙당을 두고 5개 이상 광역시도에 지부를 두어야 하는 조건을 풀어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두고 그 지역 현안을 중심으로 다루는 정당을 허용하자는 것이다. 강우진 경북대 교수는 “선거운동 방식, 구호 등 하나부터 열까지 중앙당이 결정하는 지방자치는 지역 대표성이 없는 지방자치”라면서 “지역의 이해관계는 지역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지방선거 수준에서라도 지역정당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역정당은 국가적 차원의 거시적 안목보다 지역 이익을 위한 미시적 측면에 정책이 매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당 지도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공천 방식이 정치 양극화를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박경미 전북대 교수는 “공천권을 쥔 중앙당은 유권자들을 이슈로 끌어들이기 위해 인물 싸움을 하기보단 ‘전략공천’ ‘개혁공천’이라는 명분으로 현역 의원들을 쳐내는 등 극단적인 선전전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유권자들은 이를 극단적 대립 구도로 인지하고, 특히 양극단에 있는 유권자가 중심이 되어 치열한 대립 양상이 벌어진다”고 설명했다. 정당별 강성 지지층일지라도 지역 단위에서 의견을 교류하다 보면 타협점이나 새로운 대안을 찾을 가능성이 있는데 중앙당에 끌려다니다 보니 이런 가능성이 차단된다는 것이다.
비례 확대, 결선투표제 도입
총 300석 대비 47석으로 묶여 있는 비례 의석 확대는 꾸준히 제기되는 주장이다. 지역 기반이 약한 소수정당의 원내 진출을 쉽게 만듦으로써 다양한 의견이 대표되게 할 수 있다는 취지이다. 장승진 국민대 교수는 “지난 총선에서 준연동형 선거제도가 도입 취지를 달성하지 못한 이유는 비례 의석수 자체가 적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례 의석이 너무 적어 군소정당들이 지역구 선거에서의 불리함을 만회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재묵 한국외대 교수 역시 “비례 의석 비율을 늘려야 거대 정당도 일정 수준의 비례 의석 확보를 기대할 수 있어 위성정당을 만들려는 유인을 억제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이를 위해선 비례대표 공천 과정이 지금보다 투명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례대표 공천이 전문성과 다양성보다는 당권을 쥔 정치인에 대한 ‘충성심’ 위주로 이뤄지면 기대한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대선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협치 여건 조성에 효과가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다. 결선투표제는 과반 득표자가 없을 때 1위와 2위 후보만을 대상으로 2차 투표를 거쳐 50% 이상 지지를 얻은 후보를 승자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정재관 고려대 교수는 “대선 결선투표제는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거대 정당 후보자가 과반 득표를 위해 소수정당과 정치연합을 하도록 유인함으로써 주요 정당들이 이념과 정책을 기반으로 한 협치의 제도적 바탕으로 삼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반면 결선투표제가 도입되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이후 나타난 것처럼 인물 중심으로 급조된 선거용 정당이 난립할 것이란 우려가 있다.
국회 상임위 역할 확대
당 지도부가 아닌 상임위 중심으로 국회가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상임위 권한이 강화되면 의원들의 정책적 자율성과 독립성이 제고되면서 ‘당론’ 대립에 따른 파행을 줄일 수 있다는 취지이다. 서정건 경희대 교수는 “한국처럼 원내교섭단체 간 합의에 따라 국회를 운영하도록 하면 결국 중도정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는데 현재 그런 역할을 할 만한 정당이 부재한 상황”이라면서 “상임위를 강화하면 당론보다 의원 간 협상을 중심으로 정책을 결정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 국회는 초선 의원 비율이 높아 제대로 실현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21대 총선 당선자 300명 중 초선 의원은 151명(지역구 108명·비례대표 43명)으로 절반을 웃돌았다. 박준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처럼 초선 의원이 많은 의회는 당 지도부 권한이 세다 보니 의원 자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라면서 “이렇다 보니 충성의 대상이 의회가 아니라 당 대표나 대통령이 되고 결국 여야 간 협치가 어려워진다”라고 말했다. 상임위 권한이 너무 커지면 상임위원, 관련 부처, 이익단체의 3각 유착 구조가 강화돼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권정혁 기자 kjh05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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