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가 좌우’ 파키스탄 총선에 민심 부글

손우성 기자 2024. 2. 8.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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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 임란 칸의 출마 막고
샤리프 전 총리를 총리 낙점
선거 당일 휴대전화도 불통
무장한 파키스탄 보안군이 총선일인 8일(현지시간) 펀자브주 물탄 시내의 한 투표소 앞에서 차량에 탑승한 채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AP연합뉴스

파키스탄 총선이 군부 개입과 정적 탄압, 통신 차단 등 각종 논란 속에 8일(현지시간) 치러졌다. 외신들은 파키스탄 정계를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군부가 일찌감치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가 이끄는 파키스탄무슬림연맹-나와즈(PML-N)를 파트너로 점찍었다는 점을 근거로 이미 승패가 결정된, 하나 마나 한 선거라고 평가절하했다.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군부를 향한 바닥 민심도 부글부글 끓는 모습이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파키스탄 전역에선 임기 5년의 연방 하원의원 266명과 펀자브주 등 4개주 지방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일제히 진행됐다. 이번 총선은 지난해 8월 하원 해산 후 헌법에 따라 90일 이내에 치러졌어야 했지만, 유권자 명부 작성과 선거구 조정 등의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지며 시작 전부터 진통을 겪었다.

특히 정부 위의 권력으로 불리는 군부가 샤리프 전 총리를 신임 총리로 낙점하고 노골적인 정적 제거 활동을 전개하며 논란이 됐다. 샤리프 전 총리의 가장 강력한 맞수로 꼽혔던 파키스탄정의운동(PTI) 소속 임란 칸 전 총리는 외교 정책 등에서 군부와 마찰을 빚다가 2022년 4월 의회 불신임으로 총리직에서 밀려난 뒤 최근 부패와 국가 기밀 누설, 불법 결혼 등의 혐의로 총 3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출마가 좌절됐다.

여기에 군부는 PTI가 정당법을 어겼다며 유세 기간 정당의 상징인 크리켓 배트를 홍보에 활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유명 크리켓 선수 출신인 칸 전 총리의 영향력을 막고, 문맹 유권자의 PTI 투표를 막으려는 조처였다.

군부 통제를 받는 파키스탄 정부는 선거 당일에도 “법과 질서 유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파키스탄 전역의 휴대전화 서비스를 중단했다. 알자지라 등은 칸 전 총리가 옥중에서 진행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투표 독려 캠페인을 막기 위한 꼼수라고 지적했다.

외신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총선이 치러진 만큼 샤리프 전 총리 집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샤리프 전 총리도 지난 6일 마지막 유세에서 “우리는 이미 승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군부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며 향후 파키스탄 정국은 시계 제로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BBC는 “파키스탄은 오랜 군사 통치와 독재로 한 번도 제때 임기를 마친 총리가 없는 국가”라며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번 선거는 전례 없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뉴욕타임스(NYT)도 “군부의 선거 개입은 예전보다 훨씬 더 가혹해졌다”고 지적했다. 펀자브주 라호르 거주민은 “우리는 이제 정치인을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비판받을 대상은 군부다”라고 말했다.

샤리프 전 총리의 앞날도 밝지만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과거 군부와 갈등을 겪으며 3차례나 총리직에서 축출당했는데, NYT는 “군부가 그를 계속 신임하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진단했다. 불안한 치안도 문제다. 알자지라는 “차기 정부는 치안 불안을 억제하고 힘겨운 경제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등의 엄청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하지만 무엇보다 군부와 밀거래를 했다는 비판과 이로 인한 정당성 훼손은 선거 이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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