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들도 대통령 대담이 ‘약속 대련’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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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때의 일이다.
한 방송기자가 기획재정부 차관 인터뷰를 마치고 씩씩댔다.
윤석열 대통령의 한국방송(KBS) 신년 대담을 두고 관가에서도 뒷말이 많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달 14일 한국방송 일요진단에 출연해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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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때의 일이다. 한 방송기자가 기획재정부 차관 인터뷰를 마치고 씩씩댔다. 정부의 주요 정책 발표 내용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사전 질문지에 “가계 소득을 높일 방안은 무엇이 있느냐”는 물음을 넣었으나 기재부 쪽에서 이 질문을 없앴다는 거다. 당시 방송에 출연한 관료가 기재부 2차관 출신인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다.
고위 공직자의 방송 출연은 대부분 ‘약속 대련’이다. 방송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장점이 있겠으나, 미리 예상 질문과 답변을 조율하는 까닭에 긴장감과 생동감이 떨어진다. 요즘 유튜브 방송에선 원고를 만들되 실제 진행은 애드리브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 조회 수도 더 높아진다.
윤석열 대통령의 한국방송(KBS) 신년 대담을 두고 관가에서도 뒷말이 많다. 한 경제부처 관료는 “생방송 기자회견이 아니라 녹화 방송을 한 건 불편한 질문을 피하려는 목적 아닌가”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사전 조율이 없었다”고 강조했으나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관가에도 드물어 보인다.
근거가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달 14일 한국방송 일요진단에 출연해 인터뷰했다. 당시 작가 쪽에서 반 전 총장에게 ‘바람직한 영부인 상’에 관해 묻겠다고 했다고 한다. 국민들이 궁금해한다는 이유에서인데,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수수 논란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반 전 총장의 거부로 이 질문은 결국 방송에서 빠졌다. 관가에 잘 알려진 일화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의 신년 ‘녹화’ 대담이 국민이 바라는 질문을 속시원히 다뤘다고 생각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앞뒤 안 맞는 행보에 의아해하는 분위기도 있다. 김창기 국세청장은 8일 세종시 국세청 본부에서 언론을 상대로 국세청의 올해 업무 계획을 브리핑했다. 국세청장이 대국민 업무 계획 브리핑을 하는 건 역대 최초다. 원래는 국장급이 발표해왔다. 대국민 홍보를 강화하라는 용산 대통령실의 주문 때문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국민에게 민감한 세금을 징수하고 세무조사를 하는 국세청장이 대국민 정책 브리핑을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폐쇄적인 문화를 가진 까닭에 국세청 직원들은 대통령실의 이런 요구를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대통령도 대국민 소통에 솔선수범하지 않는데 불똥이 엉뚱한 데로 튀었다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김 청장은 이날 브리핑을 위해 사전 리허설까지 했다.
한국방송 기자들이 다른 언론사의 동료 기자들에게 “미안하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고 한다. 자괴감은 왜 기자들의 몫이어야 하는가. 대통령의 신년 대담이 정말 ‘약속 대련’ 아니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다시 묻고 싶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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