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도 교육인데…” 교권 ‘사각지대’ 영양교사들의 한숨
학생 1400명에 교실배식…학부모 민원까지 영양교사 1명이 감당
과대학급에 영양교사 추가 배치 등 제도 보완 목소리 커져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반찬이 싱겁고 맛이 없다" "반마다 전기밥솥을 설치해달라"
복직을 앞두고 있던 30대 영양교사가 끝내 학교로 돌아오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고인이 생전 과도한 업무와 민원으로 고통을 호소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동료 교사들은 정부와 교육청의 무관심 속 열악한 근무환경에 내몰리고 있다는 호소를 쏟아냈다.
8일 교육계에 따르면, 질병 휴직 후 복직을 나흘 앞두고 있던 서울 양천구의 한 중학교 영양교사 A(33)씨가 지난달 29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휴직 전 업무 부담과 급식 관련 민원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지난해 3월 병가를 냈고, 같은해 5월부터 1년간 질병 휴직에 들어갔다. A씨는 한 달 가량 복직을 앞당겨 지난 1일부터 업무를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출근은 결국 불발됐다.
2021년 3월 임용된 A씨는 4년간 줄곧 양천구 소재 B중학교에서 근무했다. 4년 동안 A씨는 1400여 명 넘는 학생들의 급식을 책임졌다. 급식 인원이 많은 데도 식당이 없어 교실 배식을 했기에 급식 관련 민원 빈도가 더 높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학부모들의 민원은 맘카페는 물론 국민신문고에도 올라 왔다. "반찬이 너무 싱겁다", "음식이 맛이 없다" 등 불만부터 "급식이 식지 않도록 반마다 전기밥솥을 설치해달라"는 민원까지 A씨가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가 이어졌다.
전국교사노동조합(전교조)은 "A씨의 학교는 급식 민원이 많았다"면서 "영양교사 개인 신상에 대해 악의적으로 민원을 제기한 정황도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홈페이지에도 '급식 건의 게시판'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며 이러한 압박감이 A씨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측도 "아직 사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과대 학교에서 홀로 학생 급식을 책임지고 민원을 감당한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며 "아직도 학교 현장은 동료 교사를 잃는 참담한 현실에 놓여 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서울교육청은 "학부모 악성 민원에 대한 구체적 증거가 없어 교권침해로 보긴 어렵다"면서도 "설 연휴 이후 학교를 방문하는 등 추가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학생수 2000명인데 영양교사는 '1명'
영양교사들은 젊은 동료의 죽음이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학생 수와 상관없이 영양교사 1명으로 운영되는 학교가 많고, B학교처럼 식당이 없어 민원 해결에 한계가 있는 상황까지 모든 화살이 영양교사로 향한다는 것이다.
대한영양사협회 관계자는 "영양교사가 2명인 학교는 기숙학교가 아닌 이상 거의 없다"며 "학생수가 2000명이 넘는 서울·경기권의 과대학급에서도 영양교사는 1명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어 "영양교사 1인당 평균 업무시간은 11시간이 넘는다. 이마저도 정부에서 요구하는 기본적인 행정처리에 드는 시간"이라며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기본적인 영양사 업무와 행정업무를 모두 도맡는다. 식단과 레시피 작성부터 식재료 검수, 조리·배식 관리, 조리원 위생·안전교육과 더불어 재료 회계 정산, 조리실 종사자 지도 및 감독, 식재료 품의 및 입찰 업무까지 수행한다. 해마다 이뤄지는 안전점검과 운영평가도 영양교사가 책임진다.
급식 민원이 발생할 때마다 이를 해결하는 것도 영양교사의 몫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영양교사 권아무개씨는 "대량조리인 학교급식과 학생이 지향하는 맛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입맛에 안 맞으면 민원부터 제기하는 학부모들을 설득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고 호소했다.
"무슨 일 하는지 학교서도 몰라" 제도·인식 개선 '제자리'
영양교사들은 지속적으로 제도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내왔지만 여전히 '교권 사각지대'에 있다며 절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 영양교사는 A씨의 죽음을 추모하는 게시판에 "다음은 제 차례인가요"라며 참담함을 전했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영양교사도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학교 측에서도 잘 모른다. 아무리 힘들어도 누군가에게 털어놓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권씨는 "영양교사는 교육계에서 주류가 아니기에 늘 한계에 부딪힌다"며 "학교 급식도 교육의 일부다. 단순히 한 끼 식사를 때우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의 건강한 성장에 기여하는 교육이라고 인지해주길 바란다"고 간절함을 전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영양교사 극단 선택을 막기 위해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진다. 지난해 3월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6학급 이상 학교에 영양교사 2명 배치'를 골자로 '학교급식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법안은 1년째 계류중이다. 현행법은 과대학급 학교에 영양교사 2명 배치를 권고하고 있지만, 의무 사항은 아니다.
서 의원실 관계자는 "영양교사 업무과중은 교사 개인은 물론 학생의 건강권 침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며 "큰 학교나 1일 2식의 급식을 실시하는 경우 급식의 질이 달라지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시기 보건교사가 일정 규모 이상에서 2인 배치하는 것이 의무화된 것처럼 영양교사도 이런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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