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 비판을 되받는 황폐한 정치 언어

기자 2024. 2. 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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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가 갈수록 정신의 세력이 약화되어가는 이면에는 정치의 타락이 있다. 국민 모두를 위한 전략인 척 위장한 정치는 전술에서 편가르기와 합종연횡의 사술을 드러낸다. 정치학자 카를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도덕은 선악, 미학은 미추, 경제는 이해로 나누는 것처럼 정치는 적과 동지의 실존적 기준을 근거로 나눠진다고 했다. 적이란 한 집단의 존재 방식을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낯선 집단이며, 이러한 이질성은 인간 본성에 내재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피아의 정치 대립으로 내전 중이다. 총포만 없을 뿐, 정치가들은 물론 이를 바라보는 백성들은 깊은 내상을 입고 있다.

더욱이 내전에서 승리한 정치인들은 자신을 향한 비판마저도 총칼로 바라본다. 국민의 대표가 모인 국회가 결정한 법안을 거부하는 것은 민주공화제를 무력화한 것이다. 최근 9번에 걸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국민의 비판을 거부한 것과 다름이 없다. 권력을 승자의 전리품으로 인식하는 순간 국민에 대한 배반이 된다. 정관의 치를 이룬 당 태종은 이를 깨달았다. 자신을 비판한 위징을 간의대부로 발탁해 300번이나 간언하게 했다. 위징이 죽자 태종은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하게 할 수 있고, 고대 역사를 거울삼으면 천하의 흥망과 왕조 교체의 원인을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기의 득실을 분명하게 할 수 있다. … 위징이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거울 하나를 잃은 것이다!”(<정관정요>, 김원중 옮김)라고 탄식했다. 그는 정치의 힘은 비판에 의한 균형 잡힌 인식임을 알고 있었다.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정치가들이 득세함에 따라 정치 언어도 황폐해졌다. 비판을 되받는 살벌한 언어들이 난무한다. 진지구축·아성탈환·적전분열 같은 전쟁용어가 예광탄처럼 날아가고, 친북좌파·빨갱이·국가반역자 등 낙인어가 백린탄처럼 쏟아진다. 대화와 타협은 실종되고 상대를 박멸해야 하는 적으로만 규정한다. 상대방의 공감을 획득하는 언어의 기능이 마비되었다. 타자를 무시·증오하는 행태는 선전포고와 다름이 없다. 배제는 대인 정치의 길이 아니다. 정치의 묘수는 상대방을 아군으로 만드는 기술이다. 공화정의 로마가 지중해를 내해로 만들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패배한 적이라도 그 능력에 따라 시민권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원로원에 등용하기도 했다. 지금의 프랑스 땅인 갈리아를 제패한 카이사르는 피정복 부족장들에게 자기 가문의 이름과 로마 시민권을 주기도 했다. 그러한 개방성은 제국의 안정과 통합을 위해서였다.

사실 동양 전통에선 이분법적 구분 자체가 무의미했다. 동지는 선이며, 적은 악이란 논리 자체가 현실에선 통용되지 않는다. 적과 동지는 영원하지 않다. 선이 악이, 악이 선이 되는 예가 얼마나 많은가. 동양종교의 최고 가치인 지선(至善)은 선과 악을 넘어선 경지다. 현성들은 그 변화의 중심에 마음이 있음을 안다. 순자가 성악설을 주장했다곤 하지만 교육과 예로써 선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유교의 문명적 역할은 교육을 중시했다는 점이다. 교육은 알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음을 절실히 느끼는 과정이다. 과거 공중파 방송에서 노벨상 받은 사람들이 토론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아는 건 전 세계 지식의 0.1%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내 생각에 반대하는 상대방의 견해가 언젠가는 옳을 때가 있을 거라는 점을 인정하고 대화에 임해야 한다고 했다.

수천 년 동안 유지된 왕권을 무너뜨리고 공화제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인간의 지혜는 무지와 야만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와 자타의 평등을 확립했다. 공화주의는 이를 제도화한 것이다. 이 제도의 장점은 약간의 양보로 더욱 많은 것을 얻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화와 비판으로 부족함을 채움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비옥하게 할 수 있다. 연예인 못지않게 정치인들의 언설은 우리 삶을 메마르게 하거나 아니면 풍요롭게 한다. 정치는 큰마음에 의한 통합의 기술이다. 정치의 대목장이 서는 봄의 길목, 비처럼 쏟아질 언어가 백성들의 가슴을 희망으로 적셔주었으면 좋겠다.

원익선 교무 원광대 평화연구소

원익선 교무 원광대 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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