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하려면

기자 2024. 2. 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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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부터 주식시장과 관련해 이런저런 대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전격적인 공매도 금지와 주식 양도차익 과세 기준 완화 등이 발표됐고, 내년 시행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상속세 기준 완화 등이 논의되고 있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주식시장 부양을 도모했던 과거 관치경제 시절의 무지막지한 증시지원책이 있기도 했지만, 단발성 정책을 넘어 요즘처럼 주식시장과 관련한 이슈들이 연이어 사회적 의제로 부각됐던 기억은 없다.

이런 논의들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최근 수년 사이 주식시장 등락에 이해관계가 노출된 국민은 급증했는데, 한국 증시의 성과는 신통치 않은 탓일 게다. 한국의 주식투자 인구는 2019년 말 618만명에서 2022년 말에는 1441만명까지 늘어났다. 한국 증시의 장기 성과는 매우 부진한데, 종합주가지수(코스피)는 최근 10년(2014년 2월8일~2024년 2월7일) 동안 36% 상승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각각 178%, 150% 오른 미국 S&P500지수, 일본 닛케이225지수와 비교하면 초라한 성과이고, 장기 정체에 빠져 있는 중국 상하이종합지수 상승률 38%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1400만명에 달하는 주식투자자들에게 어필하려는 의도가 없진 않겠지만, 정치가 다수 국민의 이해관계에 답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색안경을 끼고 볼 일은 아니다. 여러 정책 중 가장 반응이 뜨거운 것은 설 연휴 이후 구체적 내용이 발표될 예정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다. 주가가 기업의 자산 중 장부상으로 주주들에게 귀속되는 몫인 순자산가치를 하회하는, 즉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를 밑도는 종목들의 주가 부양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정책이 명하면 주가가 답할까? 정책 외끌이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7년 전으로 시간을 돌리면 기관투자가들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컸었다. 자본시장의 전문적 플레이어인 기관투자가들이 자신들에게 돈을 맡긴 고객 편에 서서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광범위하게 확산됐기 때문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했다.

주지하다시피 스튜어드십 코드는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한국 증시에서 기관투자가들이 가지고 있는 힘이 너무 약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은 1인1표의 정치적 평등주의가 작동하는 장이 아니라 1주1표라는 비례적 힘의 논리가 관철되는 곳이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힘을 발휘하려면 한국 기관투자가들이 의미 있는 수량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어느 나라나 기관투자가의 핵심은 주식형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인데,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가능한 한국 액티브 펀드의 시가총액 대비 점유율은 3%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의 강제 저축으로 커지고 있는 공적 연기금만이 주주권을 의미 있게 행사할 수 있는 기관투자가인데, 본질적으로 공무원 집단인 이들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데는 많은 제한이 있다.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는 ‘연금 사회주의’라는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중요한 일부 의사결정은 연기금 독자적으로 할 수 있겠지만, 큰 틀에서는 민간에서 주주권 행사 흐름을 주도하고 공적 연기금은 이를 추인하는 방향으로 전개돼야 스튜어드십 코드가 작동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민간 기관투자가들의 물적 토대가 너무도 취약했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서 저PBR 종목들이 주가 부양 계획을 내놓지 않으면 어떻게 이들을 강제할 수 있을까? 정책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다고 본다. 주가 부양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2014년 박근혜 정권은 ‘기업소득 환류세제’라는 정책을 도입했다. 기업에 쌓여 있는 부를 가계로 돌리기 위한 계획이었는데, 당기순이익의 일정 부분 이상을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이나 설비투자, 배당금 지급 등에 사용하지 않으면 징벌적 과세를 하는 법안이었다. 지키지 않을 경우 과세라는 페널티가 부과되는 법이었지만, 한시적으로 운용되다가 폐지됐다. 보수정부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 정책을 지속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약했다.

저PBR 종목군의 재평가를 골자로 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주주들의 힘이 필요하다. 주가 상승에 가장 강력한 이해관계를 가진 이들이 주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도쿄 증권거래소가 PBR 1배 미만 종목들의 주가 부양 계획을 밝히라고 요구했던 것처럼, 우리 정부의 정책은 일본의 경험을 벤치마크하고 있다. 일본은 주주행동주의를 통해 정책을 실현해나가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은 주주행동주의가 활성화되기 힘든 사회이다. 지연·학연 등으로 얽혀 있는 관계지향적 사회이기 때문에 지배주주 혹은 경영진과 척을 지는 주주행동주의에 대한 수용성이 약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외국 자본의 힘을 빌렸다. 아베 정권은 영미계 주주행동주의 펀드를 일본으로 끌어들이는 정책을 썼고, 일본에 연고가 없는 외국 자본은 일본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메기로 활동했다. 흡사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권이 급진적인 자본시장 개방을 통해 한국 증시에 들어온 외국인 투자가들의 힘으로 재벌개혁을 도모했던 것과 비슷한 효과를 보고 있다.

주주행동주의가 늘 선일 수만은 없다. 주식을 매도함으로써 언제든지 기업과의 관계를 끊을 수 있는 주주들의 이해관계는 단기주의적인 경향을 띠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주주 등쌀에 못 이겨 자발적으로 상장폐지를 선택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의 대기업을 대변하는 게이단렌은 아베 정권 때부터 활발해진 주주행동주의에 불편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요컨대 공짜는 없다. 지배적인 정서에 반하는 행동을 수용할 수 있어야 궁극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주주 이익을 중시하는 조항이 상법 개정안에 들어가는 정도의 변화가 나타나야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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